<2장> 정치학: 맑스로부터 베른슈타인까지의 연대
□ 라살레
- 연대를 1850년대 저작의 주제로 삼음
- 조합주의자와 인간의 연대를 구분. 조합주의자의 연대는 인간의 연대로 보편화되어야 함
□ 맑스의 두 가지 연대
1.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계급의 연대 (단결, 형제애 등의 용어로 묘사됨)
2. 공산주의에서의 연대 (공동사회 개념으로 묘사)
-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에서 연대는 독일 이데올로기의 한 문장에만 언급됨. 여기서 연대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에 필수적인 것으로만 이야기됨
- 맑스의 저작에서는 형제애와 우애의 감정에 대한 언급이 계속 등장했으나,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는 형제와 형제애라는 단어 없이 투쟁 자체가 단결을 창조한다고 선포함. ‘투쟁의 진정한 결실은 직접적인 성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단결이 끊임없이 확대되는 데 있다.’
- 맑스는 연대 사상을 몇 개의 다른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했지만 연대라는 용어 그 자체는 맑스의 용어사전에 통합된 부분으로 굳건하게 수립돼 있지 않음
- 진정한 공동체의 감정은 미래에만 존재할 수 있고, 노동계급의 일상의 투쟁은 그 자체로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 그러나 미래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진정한 공동체라는 이론적 개념과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형제가 되는 감정간의 관계는 전혀 명확치 않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형제가 됨으로써 갖는 규범적 감정과 노동자의 단결에서의 도구적 이익간의 관계도 분명하지 않다.
- 일반적으로 맑스는 규범적이고 정서적인 측면보다는 노동자 단결의 도구적 성격을 더 강조했다. 레닌주의 전통은 이런 도구주의를 더 발전시켰고, 베른슈타인의 전통은 규범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을 더 면밀히 했다.
- 연대에 대한 맑스의 이론적 기여: 첫째, 사회구조와 연대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 둘째, 연대는 정치적 실천의 특수한 형태의 결과
=> 여전히 명확치 않은 것은 형제애와 연대 사이의 구분 혹은 관계이다. 슈타이나는 앞서 연대라는 용어의 선배로서 우애와 형제애를 들었다. 그렇다면 형제애와 연대는 같은 범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범주로 보아야 하는가? 만약 같은 범주로 본다면 형제애나 단결을 맑스의 고전적 연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범주로 본다면, 즉 연대를 형제애에서 진화한 개념으로 본다면, 맑스의 형제애는 연대 이전의 개념으로 보아야 하겠다. 그렇다면 맑스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진정한 연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 카우츠키의 2가지 연대
1. 함께 됨의 감정을 의미하는 일반적 개념
2.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공통된 이익을 인식할 때 발전되는 공동체의 감정
- 카우츠키는 맑스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연대의 사상을 포괄적으로 정교화함
- 맑시즘에 대한 카우츠키의 해석이 연대에 끼친 2가지 혁신적 방식: 첫째, 맑시즘 속에 연대라는 용어의 채택. 둘째, 연대의 개념을 확장해 노동계급 외곽 집단을 포함
- 카우츠키의 관심은 노동계급과 여타 계급간의 관계가 보다 적극적인 관계가 될 수 있는 방법임. 그러나 카우츠키는 맑시즘을 과학으로 보았기 때문에 연대에 윤리적 요소를 도입할 수 없었음
=> 카우츠키의 연대 개념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소속감으로 읽힌다. 그 소속감의 주체가 노동자 계급이든 아니면 여타 계급이든.
□ 베른슈타인의 3가지 사회주의 윤리
1. 평등 사상
2. 공동사회 사상 또는 연대
3. 자유 또는 자율성
- 맑스는 평등을 사회주의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멸적인 태도로 말한 반면, 베른슈타인은 평등이 핵심적인 사회주의 사상이라고 주장
- 동료 노동자와 연합하고 노조에 노동자의 힘을 모아 노동자들이 고용주에 대한 의존성을 자발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때 연대는 발전됨
- 베른슈타인의 연대: 한데 속한다는 감정. 따라서 노동운동 내에서 가장 강력한 지적 요인은 연대
- 베른슈타인의 자유는 인류의 이상. 하지만 노동자에게, 개인의 자율성을 희생하고 집단행동에 몰두하는 것은 물질적 획득과 상대적 자유의 증가로 귀결
- 베른슈타인은 평등, 연대, 자유의 개념을 사회주의 담론에 통합시킨 최초의 사람. 그는 연대의 윤리적 측면을 강조했지만, 개인의 자유에 대해 연대의 상대적 중요성을 어떻게 위치 지을 것인지는 불명료
- 베른슈타인은 가치와 연대와 개인성 간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뒤르케임에 가까움. 거의 같은 시기 스웨덴 사민주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도 사회주의 담론에 도덕적 윤리적 사고를 도입함
=> 사실상 맑스와 베른슈타인의 논리 전개 방식은 매우 상이하지만, 맑스의 형제애나 베른슈타인의 연대 모두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본질상 동일하다. 그렇다면 맑스는 왜 형제애란 개념을 사용했고, 베른슈타인은 왜 연대란 개념을 사용했는가? 이는 맑스와 베른슈타인이 처했던 시대 상황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닌가? 즉, 맑스의 형제애와 베른슈타인의 연대의 내용적 차이점은 크지 않다고 볼 수는 없는가?
□ 아들러의 오스트로-맑시즘
- 계급 착취, 계급 형성, 계급간 모순되는 이해, 착취에 기반한 분화와 분열로 특징되는 사회는 연대가 결여되어 있음.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대는 공통 이해에 대한 인식에 기반함. 그러나 아들러의 연대 사상은 맑시즘을 넘어서지 않음
□ 레닌과 루카치
- 레닌 자신은 연대에 몰두하지 않았고, 연대 개념은 레닌의 이론서에 나타나지 않음. 레닌의 관심은 노동계급을 단결시키기 위한 올바른 ‘강령’이었음. 연대 사상과 결합된 규범적 측면에 대해 레닌은 관심이 없었음
- 레닌주의자인 게오르그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레닌주의 연대사상을 발전시킴. 개인은 개인의 자유를 삼가야 할 뿐 아니라, 공산당의 집단의지에 자신을 복종시켜야 함. 진정한 연대와 진정한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희생해야 함
-> 이 논리의 문제는 ‘무엇이 일시적인가?’란 질문임
□ 그람시의 연대 사상
- 튜린에서의 노동자 패배: 농민과의 연대를 발전시키지 못한 튜린 노동계급의 무능력이 원인
- 그람시의 문화와 문화적 헤게모니 개념에 대한 추론에 연대 개념은 포함돼 있음
- 노동계급은 타 사회집단과의 유대를 창조해야 하고 헤게모니를 쥔 자본주의 태도 및 가치와는 다른 태도와 가치에 기반한 대안 문화를 발전시켜야 함. 가장 기초적인 변화는 경제적이고 협동적인 연대의 정서를 구체화하는 것
-> 더 넓은 사회적 및 정치적 동맹 속에서 모든 구성원들 간의 이해 interests에 대한 연대 의식성의 발전. 그러나 경제적 문제에 한정됨
->-> 협동주의 집단을 초월해 여타 사회집단의 이해 속에도 마찬가지 의식성을 창조
- 그람시는 문화, 도덕적 이해, 심리에 대한 강조로써 맑스주의 이론을 풍부화. 여타 레닌주의보다 더 자주 연대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 연대 사상을 자기 저작 속에 포함시키지 않음
- 마오의 저서에서는 단결이 중심 개념임. 연대라는 용어는 중국 공산당과 타국의 노동계급 정당과의 관계, 혹은 진보적 우호적인 국가들과의 관계에 사용됨
□ 무정부주의의 연대 개념
- 바쿠닌은 연대의 개념을 이론과 전략에 통합. 연대는 모든 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자신을 타인과 결합시키고 공동체를 창조하는 개인 속에서 발견되는 자질: 프롤레타리아는 ‘인류애 기준의 운반자’이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도하는 원칙은 연대
- 전체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에 의한 하나. 전세계의 노동자를 단결시키려는 방법 중 하나는 진정한 우애적 연대를 수립하는 것
- 크로포트킨은 연대를 사회통합의 기초이자 도덕 사상으로 기술
- 그러나 아나키스트는 정치권력을 얻는 데 실패함
□ 사회주의 연대 개념
=> 사회주의 연대 개념이 오직 노동계급만을 포함한다고 해서 슈타이나는 포괄성의 측면에서 제한적이라고 했는데, 과연 제한적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고전사회학의 포괄성은 계급의 구분을 두지는 않지만 일국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경을 초월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주의 연대 개념이 오히려 더 포괄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 레닌주의 연대 개념에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분파만이 포함된다고 슈타이나는 보고 있는데, 이 또한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분명 레닌(주의)는 혁명의 과정에서 전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전위만으로 혁명이 성공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또한 사회주의 혁명 성공 이후 여러 소수민족들을 소비에트 연방에 포함시키기 위해 레닌은 유연성을 발휘한 것으로 안다. 따라서 레닌주의 연대가 포괄성이란 측면에서 매우 협소하다는 결론은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