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

□ 초기 노동당 강령
- 1900년 노동대표위원회로 출발하여 1906년 노동당으로 개정
- 연대 사상은 영국 노동운동, 특히 노동조합운동에서 강력해, 강력한 집단지향성으로 특징화되며 집단적 능력을 개별 노동자의 자유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봄. 단결은 핵심 가치가 됐고, 파업은 연대를 행사하는 기회. 대륙의 노동조합이 파편화된 것과 달리, 1920년대부터 영국의 노동조합평의회는 산업노동계급을 단결시킴
- 그러나 초기 노동당은 맑시스트 언어와는 매우 다른 실용주의적 언어를 사용해, 초기 선거 공약과 핵심문서들에서는 연대 사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들 문서의 언어는 매우 구체적이며 현실적이고, 이데올로기, 가치 또는 정서적 개념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이 구체적인 개혁을 주장함
- 1910년 선거 공약은 ‘단결할 때’이며 ‘고통받는 이들은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결합해야 한다’고 선언함. 이는 연대 사상과 관련되지만, 단 하나의 언급임. 1910년부터 강령의 호소는 인민, 국가 또는 모든 시민을 겨냥했음
- 왜 영국에 맑스주의의 영향이 없었는가? 자유주의 헤게모니와 의회 제도의 정당성 같은 이데올로기적 요인들이 아마도 맑스주의 발전에 더 영향력있는 방해요소였을 것

□ 좌파로의 발걸음

- 1차 대전 전에 노동당 선거 강령은 가치를 표현하는 언어를 갖지 않음
- 1918년 새로운 정관 4절: ‘생산수단의 공통 소유와 대중행정과 각 산업과 서비스에 대한 통제를 최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체제’를 요구
- 1918년 강령 ‘노동당과 새로운 사회질서’는 산업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공적 소유권, 그리고 사회개혁을 주장하고, 동시에 사회정의, 자유 같은 이데올로기적 개념을 도입
- 1923년 강령 ‘국가에 대한 노동당의 호소’는 ‘모든 시민’에 대해 ‘올바름과 정의를 위해 관대하고 용기있는 입장을 취하고 … 오직 자유와 안전과 더 행복한 삶을 원하는 모든 곳의 투쟁하는 인민에 대한 우정과 선의를 손에 쥐고’를 호소 -> 우정과 선의는 사민주의 연대 사상의 기능적 유사어이지만,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포함하고 더 나은 사회라는 보편적 목적을 지향함

- 1924년 및 1931년 선거 공약은 형제애, 단결 또는 서로를 지지할 필요성 같이 고전적 사민주의 연대 개념을 신중하게 언급함. 이런 용어들은 연대로 변형되거나 대체되지 않고, 단지 사라짐
- 람세이 맥도날드는 1924년 정부에 들어가 최초의 노동당 수상이 되지만 곧바로 선거에서 패함. 1929년 다시 수상이 되었지만 자유주의자 및 보수주의자와 연정을 구성함. 이후 노동당은 2차 대전 후까지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그러는 동안 정강에는 연대 사상의 용어로 아무 것도 첨가되지 않음

□ 전후 강령

- 강령의 언어는 실용주의적이지만, 급진적 개혁과 핵심 산업의 국유화와 경제계획이 지속될 것을 계속 주장
- 1945년 선거 공약: ‘노동당의 구성원은 영국민과 마찬가지로 실용적인 정신의 남성과 여성이다.’ -> 실용주의와 사회개혁에 대한 광범한 열망으로 45년 선거에서 대승
- 전후 노동당의 강령은 생산력주의에 고취: 복지국가가 발전되려면 더 많이 생산하고 수출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기업은 장려돼야 함
- 1948년 국민보건서비스와 국가보험의 도입은 연대 사상을 표현함: ‘모든 사람은 지속적인 사회경제적 진보를 성취하기 위해 진정한 동료애로 함께 일해야 한다.’ -> 그러나 영국 노동당은 연대 개념을 회피함

- 노동당 정부는 경제 상승에 실패해 1951년 선거에서 패하고, 50년대 선거에서 반복해서 패함
- 휴 게이츠켈은 국가 통제에 대한 강조를 줄임. 크로슬랜드는 사회주의의 윤리적 측면에 몰두하고 평등을 주장하나, 연대에 열중하지 않음
- 그러나 사회정의, 공정한 분배, 평화, 기회의 평등이 강령의 수사에 자주 적용. 1959년 공약은 ‘우리 사회주의의 윤리’에 관한 장을 포함
- 해롤드 윌슨은 파업의 수를 줄이려고 시도하면서, 가끔씩 인류의 형제애, 공동체의 확대, 응집력있게 활동하기를 언급 -> 1964년 정부 복귀 -> 1970년 패배 -> 1974년 재집권, 그러나 곧 급진적인 선거 공약과 국유화와 부의 재분배에 대한 약속 폐기 -> 1979년 선거 패배(대처 집권)

- 1970년 강령: 노동당의 목표는 ‘강하고, 정의롭고, 인정많은 사회창조’ 선언. 그러나 연대 사상은 논의되지 않고 강령은 연대라는 용어에 영향받지 않음
- 1979년 선거: 정의와 공정함, 개인의 자유 보충, 작업장에서 노동자의 영향력 증대, 여성의 동등한 권리, 더큰 사회경제적 평등
- 1983년 선거: 공적 투자와 소비의 대규모 확대, 일방적 핵군축, 핵심산업의 재국유화, 보수적 노동입법 철폐, 더큰 평등과 기회의 평등의 반복 <- 제랄드 카우프만, ‘역사에서 가장 긴 자살노트’
- 1983년 선거 강령에서 유일하게 연대가 언급됨: ‘전세계의 빈민과 억압받는 사람들과의 연대’ 언급 -> 그러나 이어진 강령에서는 연대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우연히 적용된 듯
- 닐 키녹 하의 1987년과 1992년 선거 공약은 노동자의 영향, 계획, 군축에 관한 급진적 제안이 포함되지 않았고, 연대 개념도 다시 등장하지 않음. 노동조합의 역할은 점차 축소, 공적 소유의 폐기. 정의, 공정, 개인의 자유가 이데올로기적 핵심 개념으로 보존

□ 토니 블레어의 신 노동당

- 블레어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준 두 유형의 사회이론은 앤서니 기든스의 사민주의로의 제3의 길 & 아미타이 에치오니의 공동체주의적 사상. 맥킨타이어와 왈처같은 또 다른 공동체주의자들도 영향을 끼침. 특히 연대라는 면에서 공동체주의 사상은 가장 영향력이 컸음
- 블레어는 개인이 서로 사회적으로 상호의존하는 공동체주의 사상에 몰두: 공통의 가치와 제도가 사람들을 한데 엮고 공동체의 감정을 창조. 이런 공동체는 계급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 기초한다. 공동체는 윤리적 가치를 표현하고, 개인의 권리와 그에 부응하는 의무와 책임의 균형을 의미
- 블레어는 연대라는 용어를 언급했지만, 포섭과 배제에 유념함. 그의 공동체주의는 우정과 연대라기보다는 보답으로서 기여의 의무에 기반

- 좌파와의 격렬한 논쟁 후 노동당 정관 4절 변화해, 공적 소유에 대한 요구가 빠지고, 공동체주의적 가치를 더 강조함: 노동당은 민주적 사회주의 정당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 소수가 아닌 다수의 수중에 권력, 부, 기회를 두는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해, 우리가 누리는 권리는 져야 할 의무를 반영하며, 함께 자유롭게 연대, 관용, 존중의 정신으로 살아간다. -> 관습적인 사민주의와 공동체주의적 가치, 그리고 시장의 언어의 혼합을 표시
- 이중 일부 측면만 1997년 선거 강령에 반영. 정의, 평등한 권리 또는 평등한 기회 같은 전통적인 노동당의 개념은 강령에서 보이지 않지만, 공정한 세금의 맥락에서 공정은 남아있다. 공동체에 대한 열중은 공약에 반영되지 않았고, 연대 개념은 신강령에서 배제됐으나, ‘책임’과 같은 공동체주의적 언어가 자주 언급됨
- 1997년 선거 승리: 공공 소유와 핵심 산업 통제에 대한 노동당의 오랜 요구 폐기 -> 2001년 선거 압승으로 권한 쇄신: 블레어 개인적 수사와 선거 공약의 언어가 여전히 불일치. 연대의 개념은 전혀 없고, 언급된 가치는 ‘정의’와 ‘기회의 평등’
- 블레어의 공동체주의적 수사는 대중적으로 효과적으로 이용됐지만, 노동당의 이데올로기로 제도화되지는 않음

□ 결론: 연대도 아니고 개인도 아닌?

- 강력한 노동조합의 영향력과 공적 소유에 대한 강령의 강조라는 점에서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사민주의와 다름 (영국 노동당의 경우 공적 소유는 1997년 선거 때 폐기됐으나, 독일 사민당의 경우 1959년 바트 고데스베르그 강령에서 폐기됨). 또한 영국 노동당은 맑스주의 연대 사상이나 사민주의 연대 사상을 제도화하지 않음
- 2003년 당의 5가지 가치: 사회정의, 강력한 공동체와 강력한 가치, 고된 노동에 대한 보상, 품위, 책임이 동반되는 권리 -> 노동당은 공동체주의, 자유주의, 사민주의요소의 합성
- 그러나 자유주의의 강력한 전통 속에서 노동당 강령에 개인에 대한 언급 또한 많지 않음: 1945년 강령: ‘보통 사람의 자유’, 1987년 강령: ‘모든 개인의 자유를’, 2001년 강령: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도 배제되지 않도록’ 이것이 전부

- 연대가 영국 사회주의 혹은 사민주의 이데올로기에 주입되지 않은 5가지 이유
1. 토니의 정치이론 연구: 노동계급 운동이 정치권력을 추구하자, 우애에 대한 강조가 사라지고, 연대의 기능적 유사어도 노동당의 정치 언어에 통합되지 않음
2. 자유주의의 지배적인 영향력: 연대의 집단적 성격은 자유주의와 충돌
3. 맑스주의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지 않아, 맑스주의 개념의 점진적 변화로부터 연대 개념이 발전되지 못함. 반면 당의 좌파는 강령에서 도 오랫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가짐
4. 영국 노동운동에서의 기독교의 영향력: 영국의 기독교인은 사회주의를 찾았고, 노동당의 반성직자 전통의 출현을 방지.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맑스주의자가 아니어서 노동계급 연대보다 포괄적인 연대 개념을 발전시켰으나, 핵심 개념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함
5. 닐 키녹과 블레어가 1980년 후반 및 1990년 초에 강령의 내용과 언어를 갱신했을 때, 강령의 집필자들은 이전의 집필자보다 가치가 결여된 양식을 취함. 또한 연대라는 수사의 도입보다는 더 깊이 사민주의 언어를 쇄신할 필요성을 느낌

- 노동당의 계속된 문제는 노동계급과 중산층 둘 다를 포괄할 수 있는 강력의 개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은 공동체주의 이데올로기로 지배적인 자유주의 정치적 헤게모니에 적응하려 하는 동시에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대응하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