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 사회주의>

-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초기 노동운동은 맑시즘과 아나코-생디칼리즘의 영향을 받음
- 프랑스: 맑스주의가 알려지기 전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가 이론 확립. 최후로는 블랑(조합주의)과 게드(집산주의) 등.
- 이태리: 1970년대 바쿠닌 이론(무정부주의)이 광범하게 퍼짐, 공산당 선언은 1891년에야 이태리어로 번역됨
- 스페인: 초기 생디칼리스트 전통이 강함

- 초기 강령: 연대 사상에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음
- 초기의 강력한 도전: 다양한 지역과 도농간 차이와 갈등. 뒤처진 사업화와 노동계급의 파편화 (∵ 소규모 생산단위와 지배적인 농촌부문. 종교의 영향. 맑스주의자,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적 현대화주의자 간의 갈등 등)

- 초기 연대 개념은 노동자의 단결, 국제주의, 우애, 연대 등 다양한 개념과 용어로 고전 맑스주의 사상을 취함 -> 그러나 노동계급의 단결을 초월하는 것으로 구현하지 못했고 공동체의 잠재적 동맹을 포함하지 못함 -> 20세기 후반까지 연대를 핵심 용어로 만들지 못함 -> 가톨릭 교회간의 역사적 분열을 초월하지도 못함


□ 근대 프랑스의 사회연대주의

- 프랑스의 연대 개념: 나폴레옹 민법전의 법적 전통 -> 푸리에, 르루, 꽁트, 뒤르케임의 사회철학
- 1789년 프랑스 혁명 ‘자유, 평등, 우애’의 공화주의 전통에서 중산층 정치인들이 ‘연대’ 사상을 발전시킴
- 1871년 파리꼬뮌 패배 후 도시 쁘띠 부르주아지의 권력 상승 -> 부르주아의 자유주의, 노동계급의 집산주의,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 등 모든 분야로부터 취사선택해 사회연대주의 solidarism를 주창

- 1895년 레옹 부르주아 수상으로 한 급진 사회주의 정당이 정부 구성 (부르주아는 이전 세대 부채에 대한 꽁트의 이론을 계승 발전한 사람이라고 1장에 간략히 소개됨)
- 부르주아의 사회철학은 다윈이즘(모든 생명체 간의 잔인한 투쟁), 자유주의(개인의 자유, 경쟁, 자아실현의 필요성), 파스퇴르(박테리아->박테리아와 균의 끈을 통해 인간은 서로 그리고 환경에 의존, 사회는 복잡한 유기체), 뒤르케임(사회에 대한 인간의 부채 이론 발전)과 집산주의(사회에 대한 개인의 부채는 의무에 상응해야하고, 개인의 에너지와 창조성은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이용돼야 함)를 절충적으로 혼합한 것
- 자신이 성공과 운의 창조자라는 자유주의 사상 배격하고 적극적인 공공사회정책 주장. 사회연대주의에서 연대란 사회에 뿌리를 둬야 하고 국가는 사회를 위한 도구로서 인민의 처분에 맡겨져야 한다.
- 확대된 사회개혁 강령 발전: 누진세, 상속과 재산에 대한 세금, 산재ㆍ실업ㆍ노령에 대한 사회보험 제안 -> 그러나 부르주아는 수상 1년 후 1896년 실각

- 레옹 부르주아와 사회연대주의자는 ‘연대’를 핵심개념으로 만들고, 그것을 복지정책 이데올로기에 통합시킨 최초의 사람들
- 프랑스 ‘사회연대주의’는 세속적 중산층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가톨릭 사회윤리에 대한 대안으로 발전시킨 이데올로기. 그러나 노동계급과 가톨릭에서의 집단 이데올로기보다 지속적이지 못함


□ 프랑스

- 1879년 프랑스 노동자당 POF
- 초기 강령: 짧고 맑스주의 수사가 거의 없어, 노동자의 단결이나 연대에 대한 언급 없음 -> 1차 대전 후까지 지속

- 좌파의 분열과 재조직화 이후 1905년 장 조레스가 국제노동자협회 프랑스지부 (SFIO) [프랑스 통합사회당] 결성
- 조레스는 베른슈타인(노동계급을 타계급에 병합시킴)도 카우츠키(정치적 동맹 형성을 무력화)도 비판함. 연대에 열중했지만 노동계급과 여타 계급간의 연대 사상으로 통합시키지 않음. 결집, 단결, 연대 등의 용어를 사용해 연대를 노동자 연대로 봤고, ‘프롤레타리아 이기주의’가 ‘인류애의 신성한 이기주의’라고 봄. 따라서 사회주의 외곽에서 도덕을 추구할 필요성이 없음
- 프랑스 통합사회당의 강령은 연대에 대한 고전 맑스주의 사상을 반영해, ‘노동자의 단결’과 ‘우애적 원조’ 등의 다양한 기능적 유사어로 표현. 연대는 국제적 노동자의 연대에 관한 것으로 산발적으로 적용 -> 그러나 1905~1913년 동안 독일 사민당보다 연대에 다소 친숙

- 1920년 프랑스 통합사회당은 투르 평의회에서 제3인터내셔널에 결합 결정 -> 프랑스 공산당 PCF 수립 -> 다른 나라와 달리 프랑스 공산당은 상당한 지지를 확보 -> 프랑스 통합사회당의 강력한 경쟁자
- 이에 따라 프랑스 통합사회당은 급진적이고 혁명적 수사 고수해, 1928년 프롤레타리아 독재 주장. 인류 우애의 당으로 선언하면서 연대 사상은 보다 포괄적이나, 강령에는 연대의 용어가 나타나지 않고 1920년대 동안 연대 사상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음

- 1930년대 프랑스 통합사회당 문서에서 연대 사상은 연대라는 용어와 여타 기능적 유사어 둘 다로 표현
- 1935년 레옹 블룸의 사회당에 대해 공산당의 지지 -> 1936년 블룸 정부의 선언에 연대가 등장: ‘현재 노동계급의 고통에 대한 연대’를 천명 -> 국제적 프롤레타리아이즘 또는 국제적 단결이라는 의미의 연대 개념을 초월 -> 그러나 블룸 정부는 1937년 실각

- 2차 세계대전 후 블룸은 평등, 정의, 연대를 사회주의의 가치로 강조: ‘인간은 평등감, 정의감, 인류연대감을 갖고 태어났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도덕의 체제이며, 거의 독트린만큼의 종교이다.’
- 전후 프랑스 통합사회당 강령은 사유재산과 계급의 철폐, 핵심 산업과 금융기관의 국유화를 주장하고(맑스주의) 생산증대를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조건으로 강조(생산력주의). 그러나 두 측면을 결합할 전략이 부재. 블룸 사상의 도입: 연대는 다함께 유지한다 keeping or staying together는 의미로 여러 번 적용 -> 계급연대보다는 폭넓지만, 스칸디나비아 사민주의보다는 협소함
- 1946년 강령에서 연대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통합사회당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연대를 핵심 개념으로 만들지 않음 -> 1962년 기본 강령은 1946년 급진적 강령 언어를 해체. 그러나 수사에 불과할지라도 혁명에 대한 헌신을 반복
- 전후 공산주의자는 상당한 특권을 누림. 1945년 선거부터 1975년까지 거의 30년간 프랑스 공산당은 프랑스 통합사회당보다 큼

- 1968년 사회주의자들을 재조직해 프랑스 사회당 PS으로 재창당 -> 1971년 당수로 프랑수아 미테랑을 선출: 미테랑은 실용적 정치인이었지만 급진적인 사회주의 수사를 적용하는 명인
- 1972년 강령: 정통 맑스주의 수사의 위반. 그러나 자본주의와의 절교,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급진사상 보존 -> 프랑스 공산당과의 공통강령 수립에 성공 -> 연대의 역할에는 큰 변화가 없음

- 1981년 대선에서 미테랑: 사회주의 정치가 평화, 고용, 자유, 프랑스 4가지 주요 주제에 기반해야 한다. 사회정의도 필수적. 이기주의와 싸울 필요성 선포. 사회를 보다 정의롭고 인간을 보다 연대적으로 만들 야망을 선포. 연대주의 사회: 사회보장과 복지의 증진 -> 하지만 연대가 당의 기본 가치로 고양되지 않음
- 이후 미테랑은 연대를 자기 수사의 핵심 개념으로 삼고, 다양한 연설에서 끈질기게 적용
- 1988년 대선에서 미테랑 승리: 사회보장과 복지국가의 미래에 대한 정치담론에서 다시 한번 연대를 중요한 개념으로 만듦 -> 프랑스인에 보내는 편지: 연대는 ‘많이 가진 사람으로부터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로’ 수직적 재분배를 포함해야 한다

- 프랑스 사회당 최근 핵심 문서들은 연대에 관한 주류 사민주의적 수사를 채택함
“주류 사민주의적 연대 개념”
- 1959년 독일사민당 바트 고데스베르그 강령 이후의 핵심 내용들
- 국유화 폐기 및 시장경제 수용이라는 맥락 속에서
- 연대의 목적은 사회주의 아닌 개혁
- 집단 지향성 해체 및 개인(의 자유) 도입
- 연대의 포괄성은 노동계급보다 훨씬 광범위 - 2001년 정관은 당의 목적이 자유, 평등, 남성과 여성의 존엄성, 복지, 책임성과 연대라고 선언
- 2000년대의 도전: 급진적 정책, 집단주의, 증가하는 개인주의와 연대의 화해, ‘타인’을 상대로 국가의 연대를 요구하는 외국인 혐오증과 광의의 연대 문제 -> 그러나 프랑스 사회당은 효과적인 답을 가지지 못하고 2002년 대선과 총선에서 패배 -> 그러나 프랑스 공산당의 몰락으로 인해 프랑스 사회당이 좌파의 지배적인 정당이 됨

- 연대라는 개념의 탄생지였던 프랑스에서 연대라는 용어가 늦게 확립된 이유
1. 프랑스 통합사회당/사회당의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수사의 오랜 전통이 정치적 수사에서의 변화를 지체시킴
2. 노동계급에 더 굳건히 기반하고 있는 공산주의 라이벌의 존재


□ 이태리

- 1892년 이태리 사회주의당[사회당] PSI
- 초기 강령: 짧지만 당의 역할에 대한 이론적 고려. 사회가 노동자와 자본가 두 계급으로 분화됐다고 묘사. 농민에 대한 언급 없음. 노동계급의 정당이 되길 희망. 임금, 노동조건과 노동시간의 즉각 개혁 주장

- 이태리 산업혁명(1898~1907)은 노동자의 수 증가 -> 1895년 및 1900년 선거에서 이태리 사회당의 진전
- 1차 대전 이후 이태리 사회당은 1919년 새 강령 승인: 레닌주의 방법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수립하는 혁명 정당임을 다시금 선언 -> 1919년 선거에서 1/3 의석 확보 -> 그러나 제3인터내셔널과의 갈등 후, 이태리 사회당은 쪼개져 1921년 이태리 공산당 PCI 수립
- 1922년 무솔리니 정권 이전까지 연대 개념을 발전시키지 않음

- 전후 이태리 사회당은 이태리 공산당의 주니어 파트너로 축소
- 이태리 사회당은 급진적 정치적 표현으로 독일 및 북유럽 사민당과 자신을 구분. 소련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와 강력한 반성직주의 그리고 공산당과의 연대 (그리고 종속) -> 이태리 사회당은 이태리 공산당과의 관계 속에서 독립적인 강령을 발전시킬 수 없었고, 전쟁 말 강령에서 ‘프롤레타리아 정당의 국제적 연대’를 간략히 언급
- 1947년 기독교 민주당과의 전후 연정에서 내쫓긴 후 장기간의 정치적 고립이 시작
- 1955년 이태리 사회당 지도자 넨니는 정치 전략 변화에 착수해 기독교 민주주의자들과 협력 ->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 비난 -> 1957년 의회: ‘자본주의 지배를 부수고 사회주의의 길로 나아가는 민족들’과의 연대를 확인했지만, 동시에 ‘사회주의자의 우애적 정신 속에서 판단하고 비판할 권리를 보존해야 한다’고 천명 -> 1961년 반나토 입장 폐기(기독교 민주당과의 연합에서 걸림돌 제거) -> 1963년 기독교 민주당과 연정 시작
- 이태리 사회당은 연대의 개념을 확대함으로써 우파를 동반하려 하지 않고, 강령은 맑스주의 언어에 둘러싸여 광의의 연대 개념을 발전시키지 못함

- 1970년대와 1980년대 이태리 사회당은 기독교 민주당과 계속적인 연정 파트너
- 1978년 새 강령: 주류적 유럽 사민주의 사상과 언어에 기반 -> 이태리 공산당과 기독교 민주당과 경쟁을 시작 -> 의회에 개혁 프로그램 채택 주장: 공적 재정의 회복, 탈집중화, 공공계획과 고용창출을 위한 개입
- 그러나 이태리 사회당은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에 대한 급진적 수사는 보존함: ‘다양한 국가의 민족들간의 강력한 연대의 필요성’ -> 그러나 국제관계 영역 밖에서는 연대 개념을 전혀 사용하지 않음

- 1981년 이태리 사회당 지도자 베티노 크락시는 ‘이태리 쇄신을 위한 사회주의자의 쇄신’이란 구호에 착수 -> 의회의 긴 연설에서 여타 사민주의 정당과 유사한 방식으로 단 한번 연대 언급: 현대사회에서 주변화 과정에 맞설 집단적 연대의 필요성에 대하여 -> 그러나 가톨릭교도를 끌기 위해 반성직자 정책을 약화하는 데 별 관심이 없었고, 연대 개념을 핵심개념으로 발전시키지 않음 -> 1983년 크락시 수상 -> 정치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1992년 이태리 사회당 해체
- 이태리 공산당은 1991년 이태리 좌익민주당으로 당명 개칭 -> 연대에 관한사민주의 담론 수립

- 이태리 사회당은 맑스주의에 가까운 강령적 이데올로기를 가졌고, 수사 면에서는 유럽 사민당 좌파 쪽에 있었으나, 정치적 실천 면에서는 사민주의 우파에 가까웠음. 맑스주의 연대 사상을 현대 사민주의 개념으로 변형시키지 못했고, 연대, 정의, 평등에 관한 포괄적 담론도 개발하지 못했고, 종교와의 관계를 재정의하지도 못함 <- 그 이유는 이태리 공산당의 지배적인 지위, 현대 사민주의 연대 개념의 집단적 성격조차 꺼림, 당의 지속적인 기술주의적 지향성


□ 스페인

- 1879년 스페인 사회주의당[사회노동당] (PSOE)
- 초기 강령: 계급 철폐, 광산 송 등의 국유화, 보편적 참정권 및 여타 민주적 권리 요구. 단결, 연대 또는 여타 유사한 사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음
- 당 설립자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의 목적: 노동계급 조직의 창조. 따라서 타 계급과의 동맹이라는 생각을 거부 -> 지식인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했고, 지적 이데올로기적 전통이 약함
=> 노동계급 조직의 창조는 고전적 맑스주의 연대 사상인 노동계급의 단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 1888년 평의회에서 여타 유럽 노동계급 정당의 경로를 따름. 맑스주의자의 영향이 더 분명해지고, 상세하고 구체적인 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 승인 -> 이때 국제적인 노동자의 단결, 더 강력한 결집력의 필요성, 성공적이기 위한 당의 투쟁을 위한 단결 등 맑스주의 연대 사상이 발견됨

- 1923~1929년 스페인 사회노동당은 프리모 데 리베라 군사독재에 비난, 협력, 참여 사이에 동요. 그러나 이어진 제2공화국 동안 가장 강력한 당이 되어 1931~1936년 연정에 참여
- 1938년 프랑코 승리 이전까지 연대 개념을 발전시키지 않음

- 스페인 사회노동당은 프랑코 치하(~1975년)에서 맑스주의적 전통을 유지했으나, 1976년에서야 스스로를 맑스주의 계급정당이라 선언 -> 그러나 1977년 선거 패배, 스페인 중앙민주당이 정권 획득 -> 이후 펠리페 곤잘레스 지도 아래 새로운 방향 설정
- 1973년 1차 오일 위기 후 실업 증가 -> 1979년 2차 오일 쇼크 후 공공부채 증가 -> 개혁의 필요성 -> 1979년 강령은 우파로의 결정적 발걸음: 민주주의 공공화의 필요성. 사회주의에 대해 함구. 산업과 경제활동의 국유화 폐기. 경제구조 현대화 및 유럽통합. 반면 경제계획은 여전히 중심역할. 금융체제는 국유화. 근본 원칙은 정의롭고, 평등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여야 하며, 이런 사회에서 시민들이 자기운명의 진정한 주역이어야 한다고 선언. 실업에 대한 투쟁, 사회개혁, 지역자율성 증대, 라틴아메리카와 관계 증진 주장
- 새로운 선거에서의 패배 후 당은 ‘육체노동자이건 정신노동자이건 모든 억압받는 사람’을 다뤄야 하며, 당은 노동자의 당으로부터 ‘인민의 당’으로 변형돼야 한다는 결론 -> 1981년 강령은 ‘스페인의 바트 고데스베르그 강령’: 금융부문 국유화 사상 폐지. 시장의 긍정. 연대를 더 강력하게 강조: 연대는 고용증대의 필요성, 재정개혁 도입과 사회서비스 증진을 위해 필요. 그리고 자유와 국가 주권을 위해 투쟁하는 민족들과의 연대 선언. 다양한 지역의 민족들간의 연대 강조 -> 그러나 연대는 아직 기본 가치나 원칙의 역할로 고양되지 않음

- 1982년 선거에서의 승리로 14년간 정권 차지: 공공기업의 민영화 과정 시작. EU 회원국 준비. 긴축전략 선택. 공적 지출 삭감. 산업합리화와 대량해고. 실업 증가. 사회보장 축소. 화자와 노인 급여 삭감. 교육, 공공행정, 지역주의 등에서의 적극적인 개혁 정책 이행
- 1986년 강령은 유연성의 필요와 세계경재의 빠른 변화에 대한 적응 강조. 사회연대주의의 결집 속에서 생활양식의 다양성에 기반 -> 연대는 아직 기본 원칙들 중에 언급되지 않음
- 1989년 선거 강령: 연대, 완전고용, 사회정의, 평화, 민주주의 강조. 모든 시민으로의 연대의 확장이 최종목적. 사회보장체제 개혁, 최소연금과 공적연금의 증대가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선언. 연대는 자연보호를 포괄하지만, 여성의 상황에는 적용되지 않음 -> 그러나 완전히 발전된 연대의 언어

- 1996년 강령: 개인의 책임성 개념 도입 -> 2000년 강령: 훨씬 개인의 개념에 주의를 기울임 -> 그러나 선거에서는 모두 패배 -> 프랑스 및 북구 정당과 마찬가지 딜레마: 모더니즘,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책임에 대한 강조, 유연성, 중간기관에 대한 강조와 집단적 연대 및 공적 책임과의 결합

- 스페인 사회노동당은 강력한 공산당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음 -> 전통적 사회주의 정당에서 유연성과 민영화에 더 관심을 갖는 정당으로 ‘급속히’ 변화. 재분배와 평등의 수사는 낮아짐 -> 이런 변화 과정에 연대의 언어가 도입됨


<예비 결론: 세 부류의 연대 담론>

□ 첫 번째 유형: 연대 개념의 지속적인 사민주의화
- 스칸디나비아 사민주의적 수사에서 연대의 조기 출현. 특히 노르웨이와 덴마크에서 연대 사상의 개념은 일찍 그리고 지속적으로 강령에서 강조
- 스칸디나비아 사민당보다 독일 사민당은 연대 개념의 확장과 현대화에 뒤쳐짐. 반면 최초로 연대, 정의, 자유를 사민주의 강령에 굳건히 통합시킴

□ 두 번째 유형: 연대 개념의 실종
- 영국 노동당의 경우 맑스주의 및 사민주의 연대 사상 둘 다 소수의 당 강령에 희미하게 반영되고, 연대라는 용어는 백여 년 이상 실종
-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와 노동당에 미친 맑스주의 영향력의 부재, 그리고 영국 사회주의에 끼친 초기 기독교의 영향이 이유

□ 세 번째 유형: 연대 개념의 뒤늦은 도입
- 프랑스의 경우 레옹 블룸이 1930년대 연대, 정의, 평등을 베른슈타인 식으로 논했지만, 강령에는 가끔씩만 언급됨. 1981년 대선 이후 미테랑에 의해 연대 개념이 도입됨
- 스페인의 경우는 1981년 이후까지 사민주의 연대 사상을 도입하지 않았고, 이태리의 경우 현대적 연대 언어를 전혀 채택하지 않았음


=> 정당이란 (그것이 비록 소수 정당이라 하더라도) 일정정도 정치권력화하고 제도화한 표시다. 따라서 정당의 강령을 중심으로 연대 개념의 역사를 분석하는 것은 ‘민중의 연대 개념(?)’을 추적하려는 우리의 목적과는 다분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다시 말해, 유럽 좌파 정당들은 계속된 선거 패배에 맞선 집권 전략의 일환으로 ‘연대’를 핵심적으로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중의 연대 개념(?)’은 선거에서의 집권으로 목적이 제한되지 않기 때문에, 보다 희망적인 역사를 담고 있지 않을까?

=> 유럽 정당들은, 시간적으로 이르든 뒤늦든, 결국 현대 사민주의적인 연대 개념을 채택했다. 여기서 유럽 정당들이 현대 사민주의 연대 개념을 채택한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떤 가치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닌가? 우리만의 연대 개념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유럽 정당 강령에서 연대 개념의 변화는 어떤 시사점을 던지는가?

=> 지금까지 고전 사회학, 사회주의, 기독교에서의 연대 개념과 유럽 정치에서 연대 개념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에게 ‘연대’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연대라고 부를 수 있는가? 특히 인권의 관점에서 연대를 바라볼 때 무엇에 유념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