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 우리 시대 읽기와 인권 감수성 키우기>

 

공동기획: 우리신학연구소, 인권연구소 ‘창’, 예수살이공동체

 

때: 2009년 3월 3일(화)부터 매주 화요일 10주 동안저녁 7시

 

곳: 예수살이공동체(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426-14;지하철 2호선, 6호선, 합정역 하차, 8번과 9번 출구를 나와 뒤돌아서 망원동 월드컵 경기장 방면으로 5분정도 걸어갑니다. 알파문구와 서울정형외과, 오토바이 판매점을 지나 세븐일레븐 편의점 맞은편 조광 부동상과 화장품 도매점 사이의 좌측 골목으로 들어오셔서 1분만 올라오시면 오른쪽의 첫번째 단독주택입니다. 목각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전화번호는 02-3144-2144입니다.)

 

강사: 엄기호(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닥쳐라 세계화> 저자)


취지:


영화를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지금 나오고 있는 우리 시대를 읽는 책이나 개념들이 지나치게 어려워서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다릅니다. 영화는 보다 더 감각적으로 우리 시대가 흘러가는 경향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쉽게 해줍니다. 이 강좌는 혼돈에 찬 이 시대에 보다 더 친숙한 방식으로 우리 시대가 흘러가는 경향과 그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가지 인권의 쟁점들을 영화를 통해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이 강좌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은 비인간들 혹은 비시민들의 인권입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작동방식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비시민으로 잘라내고 있는‘지를 ‘근대’, ‘국가’, ‘정체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만약 우리 인간 내부가 이미 인간과 쓰레기, 인간과 실험체,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환원되는 것 등으로 갈라져 있다면 인권이라는 말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금의 정치가 어떻게 인권을 스스로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지를 살펴보며 이런 불가능성속에서 인권의 자리는 어디인가를 되물어보는 것이 이번 강좌의 목적입니다.

 

 

선정영화들


1. 필라델피아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해고를 당한 한 엘리트가 자기의 존엄을 찾기 위해 법정투쟁을 벌리는 영화.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장소에 대한 권리가 박탈당한 자들의 권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장소에 자신의 얼굴을 들 고 정주하며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인도주의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여러 가지 편의들이 이들을 인간으로 살게끔 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물로서 살아가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토론해 봅니다.

2. 안토니오 이야기
아버지가 이주노동을 간 사이 스스로의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한 아이가 다시 이주노동을 가기 위해 자기 집에 잠시 머무르게 된 외삼촌으로부터 강간을 당하는 이주노동이 만들어내는 근대 정상가족의 뒤틀림에 대한 이야기.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더 이상 근대 핵가족이라는 것이 유지될 수 없는 노동의 세계의 변화와, 그 변화에도 불구하고 허물로 존재하는 근대 핵가족 사이의 뒤틀림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뀌어야하는 것이 가족인지 아니면 노동의 세계인지, 아니면 양쪽 모두인지를 토론해 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친밀성의 구조변화와 상품화에 대해서 토론해 봅니다.

3. 뻔뻔한 닉과 제인
금융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의 사기행각을 고발한 블랙 코미디입니다. 가상의 돈이 현실의 경제를 집어 삼키고, 공학이라는 이름의 다단계 사기술을 정교하게 한 것이 신자유주의입니다. 엔론사건에 기반을 둔 이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숫자에 의존하는 경제와 삶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살펴보며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운동방식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4. 월E
쓰레기가 넘쳐나자 인간들은 쓰레기를 치우는 로봇만을 지구에 남겨놓은 채 우주로 여행을 떠납니다. 지구의 쓰레기가 다 처리되면 돌아오겠다고 생각을 하고 때때로 탐사로봇을 돌려보냅니다. 지구에서 생명체가 발견되자 재생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지구는 이미 쓰레기로 뒤덮혀 있습니다. 근대체제는 쓰레기를 양산하는 체제입니다. 인간들중에서도 어떤 집단을 잘라내서 쓰레기로 취급하는 것이 근대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쓰레기가 된 삶’을 중심으로 하여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필연적으로 쓰레기를 생산하는지를 알아보고 우리는 무엇을 쓰레기로 취급하는지, 그리고 그 쓰레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5. 디어 평양
조총련계인 아버지의 평양방문을 북한을 찬성하지 않는 한 독립영화인이 기록한 영화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에 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난민도 아니고 국민도 아닌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속’일까요? 아니면 ‘소속’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이 경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배워야하는 것일까요? 서경석의 ‘난민과 국민 사이’를 중심으로 해서 디어평양을 같이 토론해봅니다.

6. 콘스탄트 가드너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운 초국적 제약회사와 그 제약회사와 결탁한 국가를 고발한 영화입니다. 인간을 살리기 위해서 약을 만들지만 그 약을 만들기 위해서 다른 어떤 인간들은 실험체와 전락합니다. 인간이라는 종은이처럼 우리 시대에 이미 살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과 그 인간들을 위해 희생되어야하는 인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우리 시대 전체가 이미 아우슈비츠화한 것입니다. 생명권력(생체권력)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과연 실험실화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수용소화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같이 토론해 봅니다.

7. 노맨스랜드/호텔 르완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더불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종족주의의 부활입니다. 서구식의 국민국가/민족국가의 틀에 맞지 않는 정치적인 지리에 의해서 비서구권에서는 끊임없이 종족분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국가는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틀에 맞지 않는 정치가, 국가로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서 투쟁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새로운 종족주의의 부활’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정체성의 정치’의 의미와 한계를 같이 짚어봅니다.

8. 페르세폴리스
이란혁명을 겪으면서 서구와 이란을 오고가며 여성이 살아가는 고단한 삶에 대한 애니메이션.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한편에서는 반제국주의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억압된 삶이 강요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방인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으로서의 삶이 제한당하는 이슬람 출신의 여성들이 처한 딜레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언제나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굴레와 인권의 보편성 사이에서 그 딜레마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여성의 자리가 무엇이며, 그 자리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해방의 잠재력과 상상력이 나오는지에 대해 토론해 봅니다.

9. 증오
프랑스의 교외지역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 아이들의 증오를 그린 영화입니다. 한국과는 달리 서구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모여사는 교외 지역은 이미 국가의 통제력도 미치지 않는 근대 체제의 구멍이 되어 버렸습니다. 국가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은 이미 ‘쓰레기’로 버려졌다는 이야기이기도합니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쓰레기를 끊임없이 만드는 체제라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 쓰레기들이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키는 체제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그 어떤 정치적 대의에도 걸려들지 않는 이들의 반란과 진보운동은 어떻게 연대해야하는 것일까요?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 그리스의 12월 봉기 등을 사례를 가지고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운동과 진보정치의 연관관계를 생각해 봅니다.

10. 반딧불의 묘/엘라 계곡에서
전쟁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의 삶을 비참하고 곤궁하게 합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비난은 가끔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국의 보통 국민들이 어떤 피해를 입고 처참한 상태에 내몰리는지, 그리고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은 또 어떠한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가해국의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참상은 말해져서는 안되는 것인지, 참전한 군인들의 참상은 말해져서는 안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며 ‘국가의 경계’를 넘어 반전을 사고하는 법을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