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인권에 기반한 접근을 요청한다(A Call for Human Rights-Based Approach to Humanitarian Assistance for Haiti, IJDH 등, 2010년 1월 15일)

몇 년 전 어느 뒤풀이 자리였다. 사학과 대학원생이 자리를 같이했다. 마침 논문을 쓰던 때라 석사 논문 주제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아이티 혁명에 대해 쓰려고요.” 순간 모두들 멈칫 했다. “사학과에서 왜 아이티 혁명에 대해 써요?”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모두들 동의의 눈빛을 보냈다.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아이티(IT) 혁명, 즉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혁명이었던 것이다. 순간 눈치 빠른 한 명이 “아, 아이티!, 프랑스 혁명 때 노예혁명을 일으켜서 독립한 나라, 그거 말하는 거죠?”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이 “아아, 그래서 사학과 논문 주제였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아이티(Haiti)는 모르는 존재였고, 아이티(IT)는 핸드폰으로 모두의 손안에 있었다.

그런 아이티가 새해 초, 모두의 눈 안에 들어왔다. 그러나 처참한 비극과 고통을 안고 날아들었다. 누가 얼마를 냈다더라 식의 재난보도의 전형적인 기사유형에 짜증이 나면서 난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믿을만한 구호단체에 기부를 하는 일 말고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읽던 것들을 제쳐놓고 아이티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당신들에 대해 알고 싶어요”, “당신들이 이렇게 오랜 세월 어떤 식으로 고통 받는 줄 지금껏 몰랐어요”라는 말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알았으니 앞으로는 잊지 않고 죽 관심을 가질게요.”라고 약속해야 할 것 같았다.

위 사진:국내난민에 관한 유엔지도원칙이 소개된 홈페이지 (www.idpguidingprinciples.org)

출간 직후 사놓고 책장에 모셔두었던, 아이티 혁명에 대한 기록(『블랙자코뱅, 투생 루베르튀르와 아이티 혁명』시엘 아르 제임스 지음/우태정 옮김/필맥/2007)을 빼어들었다. ‘자유, 평등, 우애’라는 인권의 원칙이 서구 백인의 성공 뒤에 나머지 세계와 인종에게 낙숫물처럼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당대에 흑인 노예 혁명 속에 이미 담겨 있었다는 기록이다.

19세기 최초의 노예 해방 혁명으로 독립한 나라가 아이티이다. 2004년은 아이티 독립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식민주의자들은 가장 풍요하고 이득이 되는 식민지 아이티에 대한 탐욕을 놓지 않았고, 독립 후에도 주인행세를 하는 자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그 야욕은 계속됐다. 그 결과는 정치적 불안과 지독한 가난이었다. 허리케인과 지진 등 연이은 재난은 이런 인재와 겹쳐져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

한 후배는 아이티의 전직 대통령 아리스티드(네 번이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으나 쿠데타와 미국의 개입으로 번번이 물러나야 했다. 그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아주 엇갈린다.)가 지은 책을 권했다. 제목부터가 가슴에 와 닿았다. 『가난한 휴머니즘,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지음/이두부 옮김/이후/2007)였다.

“글조차 쓸 수 없는 아이티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이 기록들을 쓰게”되었다는 편지글에는 아이티 사람들의 가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오랜 식민지 착취와 노예제의 상처 위에서 국제금융기구와 신자유주의로 인해 자생력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정치혼란을 야기하여 이익을 챙긴 세력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조용하지만 굵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제 3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아이티 사람들의 연대의 힘과 희망을 강조한다. 특히나 필자가 지켜본 아이티 아이들, 가사노예로 시달리고 거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교육과 친교활동을 통해 얼마나 놀라운 인간역량을 보여주는지를 통해 그 희망을 얘기한다.

“우리들이 분노와 좌절, 자포자기를 폭력으로 분출하는 것보다 평화를 위해 결집하도록 해 주십시오. 체념하면서 죽는 방법과 폭력적 폭발을 통해 죽는 방법, 이 두 가지 죽음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집단적 결집이 바로 제 3의 길입니다. 이것은 인간 에너지의 어쩔 수 없는 집중입니다. 우리에게 돈은 충분하지 않지만, 사람만은 충분합니다.”(‘나는 주스가 더 좋아요’ 중에서)

“우리는 평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뱃속에 평화가 없다면, 머릿속에도 평화는 없다.” 아이티 같은 나라의 경우,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만 주고 그들을 말하지 못하게 놓아둔다면, 그것은 위선적인 일입니다. 같은 이유로 그들에게 단지 말만 들려준다면, 그것은 선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제적 참여가 없는 정치적 참여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뱃속 평화와 머릿속 평화’ 중에서)

“아이티 정부가 국제기구의 지시를 계속 따른다면 우리는 전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프로그램에 따라 그저 여기에서 저기로 맴돌 뿐,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반면 민중들에게 전략을 구하는 시민사회 사이에서 아이티의 조직들을 본다는 것은 한밤중에 촛불을 만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절망의 암흑에서 만난 희망! 우린 대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대안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를 굶주림에서 꺼내어 ‘존엄한 가난’으로 이끌 것이라 봅니다.”(‘우리는 존엄한 가난을 원한다’ 중에서)

“당신께 우리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바로 지금도 우리는 아이티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땀 흘려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념 덕에 도전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신념, 이 확신이야말로 우리가 전 세계에 드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수출품이 아닐까 합니다. 이 신념을 나눠 가지도록 당신께도 초대장을 보냅니다. 저와 당신은 함께, 같은 손의 손가락처럼 이 새로운 세기에 더 인간다운 세계를 만들라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당신에게 보내는 아이티의 특별한 초대장’ 중에서)

책장을 덮고 나니 “여기 사람이 있어요”라는 외침이 생생히 들려온다. “우리도 여기 있어요”라는 화답이 절실한 때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아이티 참사 직후 ‘아이티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한 연구소’(Institute for Justice and Democracy in Haiti) 등 6개 인권단체가 내놓은 긴급성명이다. 아이티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인권에 기초한 접근이 필수임을 강조하고 있다. 당장 급한 지원금과 구호대를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장기적인 관심과 연대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지도 당장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쓰나미처럼 몰려왔다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관심으론 아이티의 고통이 오래 계속될 터이다. 앞서 인용한 아리스티드의 편지글에서는 “결국 이 작은 행성에 사는 우리 모두는 똑같은 물에서 함께 헤엄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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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인권에 기반한 접근을 요청한다

아이티의 정의를 위해 일하는 인권단체들로서 우리는 기부국 정부, 국제조직, 민간단체들에게 재난에 처한 아이티의 필요에 부응함에 있어 국제인권의 원칙을 지킬 것을 촉구한다.

지진에 대한 빠른 대응은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대응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은 아이티 사람들의 인간 존엄성과 인권을 대가로 해서는 안 된다. 기부자들(국제조직, 민간단체)이 모든 아이티인의 권리증진을 위해서나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할 아이티 정부의 역량을 만드는 방식으로 기금을 사용하지 못한 일이 너무 흔했다. 역사적으로 아이티에서는 분배의 모든 단계에서 당사자들의 의사결정 참여, 기부자들과 집행 기구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없었다. 아이티의 회복과정은 여러 해가 걸릴 것이고 그러하기에 이 과정을 이끄는 분명한 인권 원칙이 더욱 중요하다. 과거의 비상사태에 대한 대응 속에서 아이티가 경험한 것은 조정되지 않고 예측가능성 없는 원조와 깨진 약속이었고, 이것들은 더 큰 고통을 야기했다.

기부자들은 과거의 교훈에서 배워야 하고, 이번 일을 아이티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기 위해 권리에 기반한 방식으로 원조를 집행하기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기부자들(국제기구, 민간단체 등)에게 촉구한다.

○ 인도주의적 원조의 계획, 집행, 평가의 모든 단계에서 인권을 존중하고 ‘국내난민에 관한 유엔지도원칙’(www.idpguidingprinciples.org)을 따르라.
○ 투명성, 책임성, 역량 발전, 참여, 비차별의 목적을 보장하는 권리에 기반한 접근법을 채택하라.
○ 장기 계획을 세우고, 모든 아이티 인민에게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정부를 가진 더 강한 아이티 건설에 초점을 둬서 모든 지원을 아이티 정부와 조정할 것을 보장하라.

비상사태의 대처에서 인권을 존중하라
우리는 기부국 정부(국제기구, 민간단체들)에 촉구하는 바는 원조 노력을 조정할 것과 인권의 원칙에 따라 모든 원조를 계획하고 집행하고 모니터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욕구 평가는 또한 위기가 인권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대응을 조정하는데 있어서, 국제사회는 원조가 지진 이전에 있었던 소외나 인권침해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보장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여성에 대한 폭력이 증가됐다는 보고를 보건대, 임시 위생시설은 여성에게 프라이버시와 안전을 제공해야 한다. 배분 프로그램은 음식과 물의 부족이 여성과 아동에게 불균등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또한 고려해야만 한다. 아이티의 빈민 대다수에게는 자기 땅에 대한 공식적인 권리가 대개 없기 때문에 단기간의 전략에서도 땅에 대한 권리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이번 비상사태 동안에, 모든 국제 행위자들은 집을 떠나 피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국내 난민에 관한 유엔 지도 원칙’을 사용해야 한다. 이 지도원칙은 모든 국면에서 국내 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관련 행위자들을 이끄는 국제원칙으로 삼기 위한 것이다. 국제 인도주의법과 인권법, 그리고 유사한 난민법에 기반한 이 지도원칙은 비차별, 보호에 대한 권리, 인도주의적 원조, 아동․장애인 및 기타 약소자에 대한 특별보호, 실종된 가족이 어찌됐고 어디쯤에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구할 권리 등을 포함하여 국내 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국제 기부자들은 자신들의 협력자인 비영리 조직들이 마찬가지로 인권원칙을 구제 프로젝트에 도입하고 원조 노력을 조정할 것을 보장해야 한다.

인권에 기반한 접근을 채택하라
우리는 기부국 정부(국제 기구, 민간단체)에게 원조의 모든 형태에 인권에 기반한 접근을 채택할 것을 촉구한다. 이 접근법은 투명성, 책임성, 참여, 비차별, 역량발전을 요구한다. 권리 소유자로서 아이티 인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아이티 인민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아이티 인민이 자신들의 나라를 재건설하고 발전시키는데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부자들은 또한 ‘원조 효과성에 관한 파리 선언’(The Paris Declaration on Aid Effectiveness, 2005년 3월 2일 제2차 고위급 회담에서 승인됐다. 100명 이상의 장관들과 기관장들이 자국과 조직들이 원조 목적의 조화, 조정 및 모니터 가능한 지표들로 결과를 운영할 것을 약속했다) 의 원칙들을 따라야만 한다.

투명성은 정부의 활동에서나 기부자의 활동에서나 필수적이다. 투명성은 사회 모든 부문의 아이티인들이 접근가능한 방식으로 구조, 회복 및 재건 전략의 개발 및 집행의 모든 국면에 관한 정보의 시기적절한 발행을 요구한다. 기부국 정부와 기부를 받는 조직들은 정부의 기부와 사적인 기부의 양, 그 기부금이 사용된 프로젝트에 대한 공적인 보고를 조정해야만 한다. 투명성의 부족은 정치적 안정에 유해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난 10월, 네 번의 폭풍이 아이티를 황폐화시킨 후에 상원은 아이티에 대한 원조에서 1억9천7백만 불의 사용에 투명성이 결여됐다는 이유로 아이티의 수상을 탄핵할 것을 투표했다.

인권에 기반한 접근에서 기부국 정부, 국제기구, 집행하는 민간단체들은 아이티 인민에게 설명 책임을 져야 한다. 기부자와 국제기구는 아이티 정부와 더불어 자신들이 계획한 지원에 대해 공동의 인권 평가를 취해야 한다. 이는 권리에 대한 접근을 증진하고 일단 재정적 이전이 발생한 것에 대해 진전된 평가를 수행하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보장하기 위함이다. 책임성은 또한 원조를 받는 지역사회가 문제점을 알리고 구제에 접근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요구한다. 국제사회는 원조 배분에서의 부패나 남용을 보고하기 위한 국내 콜센터 설치를 고려해야 한다.

인권에 기반한 접근은 지역사회, 시민사회, 약소자, 역시 지진의 영향을 받은 농촌 인구 및 여성을 포함하여 아이티 사회의 전 범위에서 높은 수준의 참여를 요구한다. 이러한 참여는 프로그램 수혜자와 마지못해 접촉하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으며 능동적이며 자유롭고 의미 있는 것이어야 한다. 참여는 구조, 회복, 재건 전략의 개발 과정, 초기 욕구 평가에서부터 계획, 집행, 평가까지 각 단계에서 있어야 한다.

인권에 기반한 접근에서 기본적인 비차별은 아이티의 가장 가난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원조와 역량강화에서 우선성을 둘 것을 요구한다. 의식적인 접근과 포함이 요구된다.

궁극적으로 모든 국제 행위자들은 모든 아이티인의 인권을 실현할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아이티 정부의 역량을 발전시키는데 초점을 둬야 한다. 과거에 기부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흔히 이와 대조적인 발전구조와 인도주의 구조를 만들었다. 따라서 기본권을 증진시키고 이번 지진과 같은 비극에 대응할 수 있는 아이티 정부의 역량을 약화시켰다. 미국 정부는 국내 기관을 통해 아이티에 대한 비상 구제를 조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부국 정부와 민간단체들은 아이티 정부로 하여금 구조, 회복, 재건의 전 단계에서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더 큰 규모에서 이런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원조 노력의 모든 단계에서 기부자들은 아이티 정부와 손잡고 일해야만 한다. 모든 노력은 아이티 정부에 의해 조정되고 아이티 정부와 더불어 해야 한다.

비상사태와 발전 원조를 위한 충분한 기금을 보장하라
비상 지원이 당장 오늘 필요한 동시에 기부자들은 아이티에 대한 원조에서 강력하고 자급적인 국가 건설, 모든 이에게 인권을 보장할 역량 건설을 목적으로 장기 전망을 채택해야 한다.

비상 원조가 기부자들이 이미 전달하기로 약속했던 발전 원조를 대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기금은 구조와 재건 노력을 위해 긴급하게 요구된다. 하지만 아이티의 장기 발전을 위한 기부 사회의 헌신 없이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기부자들은 발전 기금을 제공하기로 한 자신들의 과거의 약속을 수행해야만 한다. 지난 해 기부자들은 발전 원조에 7억6천만 불 이상을 약속했으나 그 대부분을 아이티는 아직도 받지 못했다. 아이티 정부는 예산의 제약 속에서 아이티 인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런 기부자들의 약속에 의존하고 있다. 기부국들은 약속을 이행해야 하고 그 기금의 지불이 아이티 정부가 우선순위로 정한 것과 일치되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티인의 일상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아이티 인민은 자국을 재건하기 위해 작년 4월에 약속됐던 장기간 원조와 이번 주에 약속된 비상 원조 둘 다를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