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마실 때마다 “넌 어디서 왔니?”란 광고 대사가 떠오른다. 요즘은 더 자주 떠올리게 됐다. 포클레인이 점령하고 있다는 수원지 어디에서 이 물은 온 것일까? 찬거리를 살 때면 보통과 유기농 사이에서 갈등하다 묻게 된다. 이 유기농 식품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4대강 사업에 떠밀렸다는 유기농단지 농부들은 지금 어쩌고 있을까? 동료들과 모꼬지 다녀오다 들렸던 한 폭 동양화 같았던 그 나루터는? 거기도 4대강 사업에 날아간다는데 그곳엔 어떤 봄이 왔을까? 마시고 씻고 헹구며 종일 대하는 물에게 ‘네가 온 곳엔 별일 없니?’라고 안부를 물어야 한다. 구정물 같은 과정을 통해 맑은 물을 내뿜겠다는 엉터리 사업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 사진:남한강 이호대교에서 보면 좌측의 준설 공간은 흙탕물로 인해 혼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출처 <4대강 삽질을 막는 사람들>


강과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척결 대상으로 도마 위에서 다뤄졌다는 뉴스가 보태진다. ‘맨 날 반대만 하는 사람들’ 또는 ‘좌파’라 하는데 ‘맨 날 삽질만 하는 사람들, 일상용어사전에 좌파라는 단어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생각은 어디서 왔니?’라고 묻고 싶다. ‘강 좀 내버려두라’는 요구에 ‘홍보강화’로 맞서겠다는 생각에는 ‘홍보로는 맑은 물을 마실 수 없고 생명을 살릴 수 없다’는 생각이 굳어질 뿐이다.

‘사람․물․생명’을 위해 활동하는 국제단체인 ‘강’(International Rivers)의 홈페이지에는 ‘살아있는 강을 위한 입장’이란 글이 있다.

“강은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신비이고 은유이며, 수 세대를 통해 자신을 완성해온 과정을 가진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어떤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우리의 풍경을 형성해왔다. 강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우리를 먹여 살린다. 강은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먹을 것, 우리가 마시는 것, 우리가 춤출 곳을 결정한다. 우리는 강에 대해 노래와 얘기와 시를 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 강에 간다. 강은 명상의 장소, 경축을 위한 장소를 준다.”

위 사진:신륵사 정자에서 바라본 남한강 공사 현장. 몽환적인 물안개조차 공사장을 가릴 수 없나보다. 사진출처 <4대강 삽질을 막는 사람들>


“강은 생명을 지원하고 생명을 나르며, 무엇보다도 모든 살아있는 것에 맑은 물을 공급함으로써 생명을 가능하게 한다.”

“강은 석양과 마찬가지로 성별, 민족 또는 계급을 차별하지 않는다.”

“강은 인류의 집합적 영혼 속에 누벼져 있다. 우리는 강의 노래가 부드러운 소나타이건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이건 간에, 강의 속도와 힘을 느끼러 강에 간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강의 물결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면, 어떤 것에건 완전히 절망할 일이 없다”고 말한 적 있다. 우리는 편안함, 영혼의 쇄신, 명상, 고독을 찾아 강가에 간다. 우리는 강에 가서 생명의 지속성을 느끼고 안다.”

“강의 본질은 그것이 흐른다는 것이다. 저수지의 본질은 그것이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동원한 홍보전문가와 토목, 환경, 그 어떤 전문가를 불러내서 설명한다고 해도 이러한 강의 본질에 어긋나는 방법을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 읽어 볼 인권문헌은 쿠리티바선언이다. 댐 공사로 대표되는, 강을 대상화한 거대 토목공사로 생명과 생존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이 1997년 브라질 쿠리티바에 모여 만든 선언문이다. 이후 해마다 3월 14일을 ‘댐에 반대하고 강․물․생명을 위한 국제행동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 선언을 ‘4대강 사업의 영향을 받는 우리의 생명권과 생존권을 확인하는 선언’으로 제목을 바꿔도 오늘 우리 상황에 꼭 들어맞을 듯하다.

댐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생명권과 생존권을 확인하는 쿠리티바(Curitiba) 선언(1997년 3월 14일)

20개국에서 와서 브라질의 쿠리티바에 모인 우리는, 댐의 영향을 받고 파괴적인 댐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조직을 대표하는 사람들로서, 댐으로 고통받아온 상실의 경험과 그로 인해 직면한 위협의 경험을 공유했다. 우리의 경험이 반영하는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및 환경적 현실은 다양하지만, 우리의 투쟁은 하나이다.

우리의 투쟁은 하나이다. 왜냐하면 어디에서나 댐은 사람들을 고향에서 몰아내고, 풍요한 농토와 숲과 고귀한 장소들을 수장시키고, 어장과 맑은 물의 공급을 파괴하고, 우리의 공동체를 사회적 및 문화적으로 해체시키고 경제적 궁핍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투쟁은 하나이다. 왜냐하면 어디에서나, 댐 건설자들이 약속하는 경제적․사회적 혜택과 댐 건설 이후 발생한 현실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댐은 거의 언제나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소모하며, 이점은 환경적․사회적 비용을 포함시키기 전에도 그렇다. 댐은 약속했던 것보다 더 적은 전기와 물 공급을 낳았다. 댐은 더 심하게 파괴적인 홍수를 만들었다. 댐은 대지주와 기업농 회사와 투기꾼들을 이롭게 했다. 댐은 소농, 농촌 노동자, 어부, 원주민과 전통적 지역사회들을 제거했다.

우리의 투쟁은 하나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슷한 강력 이익세력에 맞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국제적 대부자들, 같은 다자적 및 쌍무적 원조신용기구들, 같은 댐 건설과 장비 회사들, 같은 공학 컨설턴트와 환경 컨설턴트, 많은 보조금을 받고 많은 에너지를 쓰는 산업에 관련된 같은 기업들에 맞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투쟁은 하나이다. 왜냐하면 어디에서나 댐으로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은 의사결정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대신에 결정은 기술 관료들, 정치꾼들, 사업 엘리트들이 하고, 이들은 댐 건설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증대시킨다.

우리의 공동 투쟁으로 우리는 확신한다. 파괴적인 댐의 시대를 끝내는 것이 필수적이며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또한 에너지 공급과 맑은 물을 유지하는 대안적인 방식, 공정하고 지속가능하며 효과적인 방식을 수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가능하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진짜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진짜 민주주의란 정치권력의 분산과 지역 사회의 권한강화와 더불어 에너지와 물 정책의 개발과 이행에서 대중 참여와 투명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우리는 토지에 대한 공정한 접근을 포함하는 조치들을 통해 불평등을 줄여야만 한다. 우리는 또한 주장한다. 자신들의 물과 땅과 숲과 기타 자원을 통제하고 유지할 지역사회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 건강한 환경에 대한 모든 사람의 권리를 주장한다.

우리는 인간과 자연이 더 이상 시장 논리로 전락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야만 한다. 시장 논리에서 유일한 가치는 상품가치이고 유일한 목적은 이윤이다.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사람․지역․국가들 간의 공정하고 정당한 관계에 기초한 사회로 나아가야만 한다.

경험을 공유하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12가지 사항에 합의하였다:



10. 현대 과학과 전통 지식의 기여를 둘 다 이용하는, 지속가능하고 적절한 기술과 운영방식의 이용을 고무시키는 에너지와 맑은 물 정책이 수행돼야 한다. 이런 정책은 또한 낭비와 과소비를 막고, 기본적 필요인 에너지와 맑은 물에 대한 공정한 접근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11. 세계의 많은 곳에서 다국적 기구들이 국가들에 강요하는 민영화과정은 사회적, 경제적 및 정치적 배제와 불의를 증대시키고 있다. 우리는 국가 통제 하에 있는 에너지와 물 부문에서의 부패, 비효율 등 문제의 해결책이 민영화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에너지와 물 기관에 대한 민주적이고 효과적인 대중 통제와 규제이고, 그럼으로써 이들 기관은 사람들의 필요와 바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전기와 물을 제공하게 된다.

12. 오랫동안, 우리는 우리의 점증하는 힘을 보였다. 우리는 댐 현장과 사무실을 점거했고, 우리의 마을과 도시를 행진했고, 위협과 폭력과 익사할 지경에 직면해서도 우리의 땅을 떠나기를 거부했다. 우리는 댐 산업의 부패와 거짓말과 거짓 약속의 가면을 벗겼다. 국가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우리는 연대했다. 파괴적인 개발 프로젝트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환경 파괴를 끝내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 했다.

우리는 강하고 다양하며 단결돼 있고, 우리의 대의는 정당하다.



생명을 위한 물, 죽음을 위한 물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