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격월간 <사람> 2012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엄마에게 쓰는 편지 11] 추위 속에서 돌아보는 사회적 권리(류은숙)

올 들어 제일 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 라디오에서는 추운 것이 낭만을 자극한다면서 젊을수록 겨울을 좋아한다고 떠들어대는데 나한테는 추위가 서러움으로 여겨져. 추운거리에서 종종걸음치는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따뜻한 집과 휴식, 또는 기쁜 만남이 기다리고 있어서 일거야. 하지만 귀가할 집도 휴식도 만남도 없다면 종종걸음칠 까닭이 없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발걸음으로 잔뜩 움츠려들기만 할거야.

엄마에게나 나에게나 겨울은 오랫동안 참 추웠어. 어느 겨울에는 온 식구가 연탄가스를 먹고 죽다 살아났지. 한밤중에 동생의 신음소리에 눈을 떴다는 엄마 덕분에 우리 모두 살아나긴 했지만, 한겨울에 밖으로 내동댕이쳐졌고 구역질을 한참 하다가 엄마가 떠온 동치미 국물을 한사발씩 억지로 마시고야 정신이 들었어. 악몽의 그날 밤 이후에는 구들장을 믿을 수 없어서 그해 겨울은 아예 불을 때지 않고 지냈지. 방안에는 겨울 내내 이불이 깔려 있었고 두껍고 무겁기만 한 그 이불속에 처음 몸을 집어넣으면 차가운 얼음조각 같았어. 한참을 웅크리고 있어야 체온과 더불어 이불속이 따뜻해졌지. 일하다 밤늦게 돌아온 엄마는 따뜻한 물로 발을 씻고 싶어 했지만 물을 데울 아궁이는 텅 비어 있었고 석유곤로에 물을 끓이기는 아까워했어. 그래서 나는 엄마 올 때쯤 옆집에 더운 물 한바가지를 얻으러 가곤 했는데, 그 집 아궁이도 시원치 않아서 아궁이에 얹어둔 큰 솥의 물은 늘 미지근한 수준이었어. 엄마는 지친 몸을 뜨거운 방바닥에 지지고 싶어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집은 쉬는 곳이 아니라 추위와 싸워야 하는 또다른 전쟁터 같았지.

어느날 인근 아파트로 수금을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엄마는 한숨을 쉬었어. 받지 못한 물품 대금에 대한 한숨만이 아니라 “그 집 여자는 말이지, 이 한겨울에 집안에서 속옷 같은 반팔만 입고 지내더라”고 말이야. 한겨울에 발품을 파느라 뒤꿈치가 갈라터지곤 했던 엄마에겐 발 씻을 더운 물도 없는데 레이스 나부끼는 반팔 차림의 그 여자가 엄마 눈에 어떻게 보였을지 어린 나에게도 충분히 그려졌어.

내가 겨울에 제일 싫어하는 일은 바깥에 있는 항아리에 김치를 꺼내러 나가는 일이었어. 항아리 뚜껑을 열고 고무줄로 꽁꽁 싸매둔 비닐입구를 풀고 김치 한포기를 꺼낸 후 다시 푸성귀로 위를 덮은 후 꽁꽁 여매는 동안 찬바람은 냉혹하게 멈출 줄을 몰랐거든. 그렇게 꺼낸 김치를 역시 냉동고와 다를 바 없는 부엌에서 썰다 보면 손가락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어.

한겨울 제일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은 수도꼭지였지. 비닐과 헌옷으로 칭칭 감아놓고 얼지 않도록 밤새 물이 졸졸 흐르도록 신경써야했어. 졸졸 흐르던 물줄기와 함께 수도가 얼어버린 아침이면 평소에 아까워서 쓰지 못하던 더운물을 펄펄 끓여서 수도꼭지에는 아낌없이 쏟아부어야 했어. 그렇게 해서 물이 다시 나올 때 쯤이면 옷에 튄 물방울이 조각 얼음으로 우수수 떨어지곤 했지.

수도가 어는 일보다 더 끔찍한 일은 하수도가 얼어붙는 일이었어. 우리집이 제일 꼭대기 였기 때문에 하수도가 얼어붙으면 아랫집에 물이 넘친다고 해서 아랫집 아주머니가 득달같이 달려 올라와 절대 물을 버리지 말라고 했어. 그래서 다 쓴 물을 받아서 산허리에 갖다 버려야 했어. 빨래라도 할라치면 열댓번은 왕복해야 물을 내다 버릴 수 있었고, 그 사이 빨랫줄의 빨래에는 고드름이 맺힌 채 동태처럼 굳어있었어. 그럴 때 하늘을 보면 석양 노을이 빨갛게 타오르는 것이 커다란 난로 속에 불타는 장작더미 같이 보였어.

엄마는 이런 궁상맞은 소리를 왜 자꾸 늘어놓냐고 하겠네. 창피하다고 말이야. 지금은 실내의 김치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고 온수가 나오는 보일러가 있으니까 된 거 아니냐고 말이야. 하지만 기억을 냉동시켜서 내버리기보다는 기억을 해동시켜 자꾸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할 때가 더 많아. 사람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은 누구나 겪는 고통의 경험에서 나오는 거라고 했어. 추위에 오그라드는 손발의 고통은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고통이고 냉대에 오그라드는 마음의 아픔 또한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기에 사람은 서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런 공통의 경험과 느낌에서 끌어낸 것이 오늘날 인권의 목록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어. 그런 인권의 목록 중에서는 ‘사회적’ 권리란 이름이 붙은 게 있어. 내가 앞전에 쓴 글들 중에서 ‘사회’라는 말의 뜻을 얘기한 적이 있어. ‘사회’란 우리 모든 사람들이 서로 연을 맺었다는 뜻이고, ‘사회적 권리’라 함은 연을 맺은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요구하고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어. 추위로 인한 고통이 공통된 것이라고 여기는 사회는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바람막이가 되려는 노력을 할 의무가 있어.

내가 추운 날의 기억을 자꾸 해동시키게 되는 것은 추위로 인한 고통을 ‘사회적’으로 느끼지 않는 일이 자꾸 벌어지기 때문이야. 개인적으론 추위를 벗어났더라도 사회적으로 여전히 춥다면 나도 추운 것이라고 말하는 게 인권이거든.

연말이면 산동네에 연탄을 날라주는 봉사활동이 대서특필되곤 해. 연탄 가루가 묻은 얼굴이 화장한 얼굴보다 더 예쁘다는 말과 함께 유명 연예인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말이야. 나도 연탄을 나르는 그 사람들의 마음이 예쁘다고 생각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야. 연탄은 참 위험하고 성가신 연료야. 연탄가스도 무섭지만 새벽이고 한밤중이고 때맞춰 갈지 않으면 잘 꺼지지. 다시 불을 붙이려면 독한 가스와 연기를 감수해야 하고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순간은 너무 짧아. 산동네에서 연탄을 쓰는 사람들 중에는 노약자나 홀로 사는 가구가 많다는 데 그런 연탄을 건사하며 겨울을 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곤 해. 연탄을 나르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연탄이 아닌 다른 대체 연료를 제공하자는 기획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궁금해지곤 해. 매년 변함없이 연탄 나르기 봉사만 계속된다면, 그런 봉사활동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연탄을 때야하는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들기도 해.

연탄 나르기를 지켜보자니 또 해동되는 기억이 있어. 산동네에 살면 연탄 배달을 꺼려해서 배달료를 더 높이 부르곤 했어. 엄마는 그 배달료를 아끼려고 연탄가게에서 집게를 빌려서 자식들에게 직접 나르게 했지. 동생들은 창피하다고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나 혼자 겨울내 쓸 연탄을 날라야 했어. 무거운 것은 둘째 치고 연탄집게를 양손에 들고 나르다 보면 학교 친구들과 자꾸 부딪치게 되는 게 그게 참 창피했어. 연탄을 다 나른 후 얼굴에 묻은 검댕이는 문질러 지웠지만 마음에 묻은 검댕이는 잘 지워지지 않았어. 그 검댕이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 ‘가난은 창피한 것’이라는 생각이었어. 왜 창피했을까? 가난하다는 것 말고 나의 다른 점은 돌아봐주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이랑 친구들이 날 따돌리고 멀리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거야. 나름 단련을 해서 마음에 근육을 만들고 나서는 그게 창피한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지만 쉽게 당당해지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야. 체념과 두려움이란 나 혼자 만드는 병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 만드는 병이니까 말이야.

사회적 권리란 진짜 창피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달리하는 데서 시작해. 가난한 개인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나와 똑같이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의 고통을 내버려두는 사회가 가난한 것이고, 그런 가난한 사회가 창피하다는 생각이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개인의 가난을 열심히 손가락질 하지만 사회의 가난한 노력을 꾸짖는 일에는 게으를 때가 더 많은 것 같아. 또 사회적 권리란 누구나 당당하게 얼굴을 내밀 수 있는 것을 말해. 구석에 숨거나 처박히도록 내몰리지 않고 자기를 밝히고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말해. 가령 옷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입기도 하지만 사람들 앞에 나타나기 위해 입는 것이쟎아.

사회적 권리 중에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휴식처와 집에 대한 권리야. 줄여서 주거권이라고 말해.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아픈 사람에게 치료를 행해야 한다는 말에는 고개를 조금 끄덕이는 사람들도 주거권이 권리라는 말에는 고개를 가차없이 내젓곤해. 우리 사회에서 집이란 곧 재산이고, 수완 좋은 사람들의 투자가치이고, 남들과 경쟁하여 그 가치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끌어 올려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런 집은 열심히 저축하고 대출받고 투자 정보 찾아 열심히 뛰어서 구하는 것이지, 집에 대한 인권이란 말이 안된다는 거야. 여기에 사회적 권리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가 있어. 사회적 권리라는 이름으로 요구하는 내용물이 즉각 눈앞에 나타나고 손에 쥐어지지 않으면 아예 권리자체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주거권이란 이름으로 당장 번듯한 집이 주어지지 않으면 주거권이란 권리 자체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고 무시해버리는 거지.

몇 년 전 복지시설을 나온 두 사람이 사무실을 찾은 적이 있었어. 거의 감금하다시피 해놓고 강제노동을 시킨 복지시설이었는데, 인권단체들이 그런 인권유린을 폭로해서 더 이상 그곳에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나올 수가 있었거든. 하지만 복지시설을 나온 이후 그들이 살아갈 길은 막막했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주민등록이 말소됐으면 부활시키고 자격이 되면 사회복지수급을 받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 뿐이었어. 그런데 대개가 조건이 되지 않았고 뿔뿔이 흩어졌지. 날은 춥고 오갈 데가 없으니 그 중 한 사람이 무슨 도움을 얻을까해서 다른 동료의 손을 이끌고 인권단체를 찾아온 것이었어. 하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뾰족한 일은 없었어. 그 중 한 사람이 “여기서 밥을 주길 해, 잠자리를 주길 해? 왜 이런데로 끌고 온거야?”라며 인도한 사람에게 성을 냈고, “역전에 있는 급식소에나 가자. 거기가면 밥이라도 주지”하고 가버렸어. 그들이 성을 내는 것도 당연했고 입만 열면 사회적 권리를 얘기하는 우리로선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어.

현실이 이렇다 보니 권리 얘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흔히 은행의 자동출납기를 생각해. 번호를 띡띡 누르면 현금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진짜 권리라고 한다면 띡띡 눌렀을 때 뭐가 당장 튀어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니까 주거권이라고 하면 집이 툭 튀어나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인권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당장 집이 툭 튀어나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럼 인권을 가지고 도대체 뭘 하자는 걸까?

인권, 특히 사회적 권리는 국가나 이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행동할 의무를 요구하는 권리야. 가령 주거권이란 인권은 당장 집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주거권을 향한 행동들을 요구하는 거야. ‘걸어간다’ 혹은 ‘다가간다’고 말할 때 그런 행동에는 목적하는 방향이 있는 것처럼 주거권을 향한 행동이란 사람이면 누구나 사람다운 주거에 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처신하는 모든 것을 말해.

행동할 의무라 할 때, 일단 뒷걸음치는 행동은 안돼. 지금의 조건보다 더 나쁜 곳으로, 형편을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내모는 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안된다는 것이야. 집 없는 설움을 겪는 이들의 대표격은 거리 노숙인이라 할 수 있지. 하늘을 지붕 삼아 냉대를 바닥삼아 살아가야 하니까 말이야. 그런데 올해 철도공사에서는 서울역에서마저 노숙인을 내쫓는 조치를 선택했어.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역사에 모여드는 것은 그나마 바람을 피할 뿐 아니라 동료들을 만나고 살아남기 위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야. 어느 학자의 말마따나 노숙인들은 역전에서 살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갈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야. 그런데 철도공사에서는 노숙인을 내쫓는 일을 하라고 특수인력을 고용했고 쫓겨난 사람들은 당연히 갈 곳이 없어서 근처를 배회하거나 지하도나 공원 등 더 차가운 곳으로 갈 수 있었을 뿐이야. 시에서 임시 거처로 쓰겠다고 물색하는 곳은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진다고 결사반대한다는 이유로 쉽게 확보되지 않고 있다고 해. 그러니까 노숙인들은 더 나은 대안이나 선택지가 없는 가운데서 더 나쁜 상황으로 내몰린 거야. 그런 조치를 결정한 공공당국이나 그런 조치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주거권을 향한 행동이 아니라 뒷걸음치는 행동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

꼭 거리 노숙인이 아닐지라도 불안하고 위험하고 불편한 주거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아. 그런데 도시재개발이란 게 그런 주거조건을 살만한 것으로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살던 사람들을 내몰고 때빼고 광내는 식으로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뒷걸음치지 않을 행동의 의무가 있다면, 적어도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는 살던 곳에서 계속 살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의무가 있어. 미관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어찌 보일지 몰라도 연탄불과 더운물을 서로 빌려주고 급할 때 외상질 수 있는 구멍가게가 있는 삶의 공간이라면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될 의무가 있어. 그리고 대안이란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것만이 아니라 사는 사람에게 최적일 수 있는 조건으로 고쳐가며 살 수 있도록 힘을 합하는 방법도 있어.

사람들의 눈높이는 다 다르니까 주거권을 만족시키기 위한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는 의견들도 물론 있어. 하긴 한겨울에 반팔을 입고 지낼 수 있는 주거환경을 모든 사람에게 당장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그건 바람직하지도 않을거야. 한겨울에 반팔을 입고 지낸다는 건 사치이지 기본적인 권리라 할 수는 없어. 눈높이가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맞추고 합의할 수 있는 기본선은 있어.

유엔에는 주거권을 전담하는 위원회가 있는데 거기서 내놓은 주거권의 기준들은 엄마와 내가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야.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감당할 만한 가격의 주거여야 하고, 접근이 쉬워야 하고, 사람이 살만한 조건이어야 하고, 생계활동 지역과 가까워야 하고, 사회통념에 적합해야 한다는 거야. 각 항목은 더 상세하게 정해질 수도 있어. 가령 ‘사람이 살만한 조건’이란 수돗물을 사용할 수 있는지, 화장실이 있는지, 월 평균 중간층 소득과 비교해 임차료가 얼마나 되는지,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살 수 있는지 등이 포함돼. 이런 기준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매일매일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아가는 게 주거권을 향해 행동할 의무야.

지금까지 말한 모든 행동할 의무의 기본이 되는 것은 ‘차별하지 말 것’이야. 주거가 없거나 불안한 주거 상태에 처한 사람들 편을 들면 더 들어야지, 초라한 주거를 이유로 사람들을 체념하게 하고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말이야. 앞에서도 말했지만 창피해야 할 것은 초라한 주거나 그런 주거에 거주하는 개인이 아니라는 것, 그걸 내버려두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거나 오히려 못살게 구는 행동을 취하는 사회가 부끄러워할 일이라는 것이 사회권을 향한 행동의 지침이 되는 생각이야.

먼 외국에 주거권에 대해 재판을 하고 명판결을 내놓은 판사가 있어. 그 판사는 판결문에서 뭐라고 했냐 하면, “노숙인들이 … 몸을 누일 자리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정처 없이 헤맬 때 노숙인의 존엄성만 훼손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행위로 인해 이런 사람들의 처지가 나아지지 않고 더 악화된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다 함께 비참해진다.”고 했어.

주거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매년 동짓날에 서울역에 모여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를 열고 있어. 벌써 십 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하루에 한 명 꼴로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 추모제는 계속되겠지. 그런 겨울 한가운데 얼마 전에는 <거리와 쪽방에서 살아가기 안내서>가 나왔다는 뉴스를 봤어. 길거리와 쪽방에서 겨울을 나야 할 사람들의 ‘살아남기’를 위한 정보를 담았다고 해. 이 뉴스를 보는 순간 한파가 몰려오는 것 같았어. 살아남기를 넘어서서 같이 잘살기를 위한 안내서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이것이 엄마가 궁상맞다고 여길 추위의 기억을 해동시켜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까닭이야. 서로의 기억을 해동시켜 맞대다 보면 그것이 공통의 경험이란 걸 알 수 있고, 지금 추운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되고, 그 고통을 향해 나아가는 행동의 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찬바람이 불어넣어주는 교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