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모 현실적 문제와 몇 가지 방향들
인권연구소에서 미술활동이라 것.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가?
첫째, 소모임 말 그대로.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약간의 짬을 내어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한데,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실제 짬을 내어 활동하는 데 인색하다. 프로그램이 없어서? 소모임에서 누가누구를 위해 프로그램을 준비한단 말인가? 프로그램을 만드는 순간 소모임이 아니라 이건 사업이 된다. 이 순간 주체가 객체를 대상화하게 된다.
하지만 자발적 참여와 이를 바탕으로 한 흐름이 없는데 마냥 기다리기도 뭐하다. 이럴 때 어떤 ‘독재’가 리드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 기존의 미인모 모임이 힘들 정도로 타이트했나? 아닌데~. 그럼 문제는 참여자들의 무성의인가? 혹자들은 모임이 재미없음이 원인이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누가 누구를 위해 준비해야 할 사업은 아니다. 그리되면 누군가에게 재미없는 모임이 될 것이다.
일단 초기 재미없음을 인내할 자발적 참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인가 ‘알참’을 자기로부터 이끄러내려는 노력이 가미가 되야 한다. 스스로 수가락질을 하지 않고 입만 벌리거나 오라고 오라고 해서 오는 사람들은 올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미인모의 해답은 참여자들이 ‘스스로’ 즐거운 놀이를 만들어 나가는 모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회원가입하고 안온다고 닥닥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오면 오는대로 안오면 안오는대로.
둘째, 미술 혹은 예술에서 ‘인권’(인간)의 개념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아마도 인권이란 표현보다 인간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근대적 인간’이란 개념에 근대적 인권 개념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인권에서 미술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찬찬히 천착해봐야 할 것 같다.
예술과 인권은 근대적 인간을 매개로 묶울 수 있다. 근대적 인간이라 함은 일인일표의 정치주체이자 시장에서의 거래주체로서 계약자, 그리고 신과 대등한 신성한 존재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근대헌법의 주권자이다. 인권이 근대성이 추구하는 인간다움의 이상을 품은 도덕률이라면, 그리고 예술이 인간의 삶 그 자체이자 표현양식이라면 근대적 인간을 매개로 우리는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과 인권을 찾는 작업은 어떻게 가능할까 ? 크게 두가지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다,
하나가 인간 혹은 인간사회에서 예술활동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다. 역으로 예술활동 속에서 인간과 사회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를 공부하는 것이다. 그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예술을 인권운동의 맥락으로 끌여들여 미술의 의미와 당위를 도출해내는 작업이다.
인권에서 말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은 어떤 것이고 인간다움을 보장해주는 인권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이러한 사회와 여기서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것들을 보장받아고 즐겨야 인간다움을 향유했다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 들 속에 예술활동의 위상은 ? 이상의 질문들을 시작으로 인권운동과 연계된 미술론의 의미를 더듬어 보는 것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른 하나에서 언급한 당위와 목적으로 이론이나 논거 등의 방법론적 차원에서 논의이다. 인권과 미술을 엮어 볼 수 있는 방법론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는가?
- 상상을 발휘해 본다면 인권 혹은 인간을 주제로한 미술사를 펼쳐 봄으로써 인권미술의 줄거리를 찾아내고 그의 사회적 예술사적 의미를 찾아보는것(인권미술사학): 인간을 조명하는 미술의 발자취 및 미술가들의 작품을 발굴해 인권담론을 예술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 인간존재에서 아름다움의 존재와 그 표현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통해 인간사회에서 미술이 가지는 의미를 살피는 것(미학): 예술과 인간을 근원적 연결을 위해서는 철학이라는 방법론이 필요할 것이다.
- 문화와 사회적 삶의 한 형태로 미술과 예술을 파악해보는 것(예술사회학) 이런 방법론들이 있지 않을까? 예술을 사회에 펼침으로서 인간이 구성하는 사회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어떠한 당위를 가져야 하는지 등등을 찾아볼 수 있을 듯 하다.
(본격 연구가도 아니고 문헌을 통한 심화학습이 없는 관계로 아이디어가 진전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