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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운동’의 시작 브론즈빌 흑인 인권, 예술로 말하다
2. 이야기가 있는 공공예술

2008년 11월 17일 (월) 신화준
   
예술을 논할 때 ‘공동체 예술(커뮤니티 아트·community art)’을 빼놓을 수 없다. 시카고 공공미술그룹(www.cpag.net)의 멤버인 올리비아 구드 일리노이 주립대 교수는 이민자의 도시인 시카고의 커뮤니티 아트의 역사가 100년 이상 진행됐다고 말한다. 또 지역 공동체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예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커뮤니티 아트가 ‘새 장르 공공예술(New Genre Public Art)’로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예술의 출발지이자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시카고의 공공예술 작업이 지역 공동체와 주민들의 의지속에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시카고 커뮤니티 아트의 대표적 사례인 흑인들이 시작한 벽화운동을 통해 우리의 공동체 예술 운동의 방향성을 살펴본다.


   
▲ 시카고 브론즈빌에 자리잡은 ‘타임 투 유니트(time to unite)’. 흑인 작가 저스틴 더반 등이 1976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흑인 공동체의 환경을 개선해 보자는 차원에서 나온 산물이다. 시카고/신화준

70년대 콜라주 형식 작품 등장 사회적 평등 등 개선 요구

주민요청으로 재개발지역서 벽화 중심 공원조성 계획도

도내 역 ‘낙서문화’ 사라져… 미 문화유산 보존과 대조적



시카고시 남쪽의 브론즈빌. 대표적인 시카고의 흑인 거주지역이면서 ‘블랙 아트 무브먼트(흑인 미술 운동·black art movement)’의 원천인 ‘벽화 운동(mural art)’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내전 후 흑인의 자율성은 점차 높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흑인 거주지 제한규정이 해제되면서 대이주가 시작됐는데, 남부지역에서는 시카고와 같은 북부지역으로 이주가 많았다.

그러나 암묵적인 흑인과 백인간 주거지 분리주의는 여전해서 70~80년대 브론즈빌은 시카고에서 대거 이주한 흑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되었다. 이러한 주거지 분리주의 정책은 흑인 문화 보존에 좋은 조건이 됐다. 브론즈빌은 블루스와 재즈가 흥성했으며 동시에 흑인 벽화운동도 활발히 진행됐다.

70년대 벽화운동은 작가와 거주민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나가며 이곳을 벽화운동의 메카로 만들었다. 브론즈빌 곳곳의 벽화들은 ‘과연 미국은 평등한 사회인가’를 묻고 있는 사회적 의식의 작품에서 주민들의 일상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주목할 만한 작품은 ‘타임 투 유니트(time to unite·사진)이다.

흑인 벽화운동의 어머니로 불리는 저스틴 더반 등이 1976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흑인 공동체의 환경을 개선해보자는 차원에서 나온 산물이다.

미국인(african-american)으로서 스스로 사회적 환경 개선을 해보자는 의지의 표현이자 한편 미 정부의 흑인 인권 개선책을 요구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작품은 시카고 벽화의 전형적인 특징이 보인다. 하나의 디자인이 아니라 콜라주 형식의 여러 디자인이 복합된 그림이다. 그림 속 각종 형상들도 아프리칸 패턴, 아프리카 사람을 상징하며 결국 아프리칸 흑인의 뿌리 찾기 위한 노력의 산물로 풀이된다. 이 작품은 제작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함께 술과 담배, 심지어 마리화나까지 피우며 즐겁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가지고 있다.

유명작가들의 인권과 같은 거창한 테마가 아니라 재즈 연주자들의 모습, 흑인 노동자 가정 등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일상의 삶이 고스란히 반영돼 더욱 현실적이고 실감이 난다.

또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벽화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벽화가 그려진 장소는 끊어진 철도의 축대벽면으로 주변은 한창 재개발 중으로 당연한 ‘철거 대상’이지만 주민들의 요청으로 인해 개발계획이 벽화를 중심으로 공원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변경됐다.

도내에도 시카고의 타임 투 유니트처럼 공동체에 의해 만들어져 ‘이야기’를 간직한 공공미술 작품이 존재했었다.

바로 대학생들의 MT 메카의 관문인 강촌역이다. 강촌역은 돌더미가 철로에 떨어지는 낙석 사고를 막기 위해 1995년 설치한 피암터널의 50개 콘크리트 기둥마다 10여년에 걸쳐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의 각양 각색의 낙서들이 빼곡하게 자리잡으며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젊은이들의 탈출구이자 해방구인 강촌역을 상징하는 하나의 명물로서 ‘낙서’가 하나의 예술품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6월 코레일 수도권 북부지사가 한국관광공사와 공동으로 대합실과 승강장 등 역사 내·외부 전체를 거리 벽화로 조성하는 ‘그래피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오랜 시간 걸쳐 완성된 역사의 상징은 사라지고 있다.

강촌역의 상징 ‘낙서 문화’가 사라진데 이어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되면 연간 최대 180만명이 타고 내리던 강촌역은 70여년의 추억을 간직한 채 역사의 뒤편에 자리잡게 된다. 경춘선 복선전철이 완공되면 강촌역이 북한강 가에서 구곡폭포 가는 길의 산속으로 이설돼 현재의 강촌역은 더이상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개발이 진행되더라도 오히려 공동체의 ‘이야기’가 담긴 문화 유산을 보존하려는 시카고의 경우와는 대조적이다.

단순한 ‘낙서’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주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존중의 벽(wall of spirit)’이라 불리며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는 시카고의 벽화운동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카고/신화준 hwajune@kado.net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