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철학세미나 청강후기
글쓴이: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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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다들 책들을 열심히 읽어오시는 것에 살짝 놀라고, 이러다 나도 다 읽어와야 되는거 아냐? 라는 두려움이 마구 밀려들고 있습니다. -.-;;

하여간, 오늘 제가 물었던, 사람이 평등한가? 라는 질문 자체가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이고, '평등'은 무엇인지부터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과학기술 발달로 '사람'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이고, 또 사람이 아닌 생명이나 물질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제한없이 희생되어도 좋은가? 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
또한 '평등'이 '모든 사람이 똑같다'라는 의미가 아닌 이상에는, 그 의미가 무한히 다양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당췌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산술적 평등과 비례적 평등을 구분했으니...
기독교 사상도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해석되어 왔다는 생각도 들고.
다만, 페인이 당시의 시대상황에 맞게 기독교 사상에서 사람은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떠 창조한 것'로서 평등하다는, 단순하면서도 극히 추상적인 평등개념을 이끌어내고, 그에 터잡아 당시 새롭게 등장한 대의제적 민주주의를 적극 옹호하고, 사회보장의 권리를 주창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적어도 그와 같은 식의 해석이 무신론자나, 비기독교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진리이거나, 소위 자연법(모든 사람에게, 어느 시대에나 수긍될 수 있는 자연의 이치로서의 보편적이고 항구불변한 법)이 될 수 없다는 것과,
또한 대의제적 민주주의, 그리고 그것으로 부터 나온 사회권의 보장만으로 사람들의 평등이 진정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현대의 우리는 알게 된 것이죠.
'평등'의 개념을 현실에 비춰 끊임없이 물음으로써, 보다 더 진보된 평등을 실현해 갈 수 있고, 그만큼 평등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페인도 그렇게 했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덧붙여, 첫 세미나에서 저 외에 다른 분들도 '자연법'에 대해 궁금해 하셨던 것 같아, 간략히 정리된 설명을 첨부합니다. 소광희 외 2인 저, [철학의 제문제] 중 일부인데, 제가 옛날에 정말 좋아라했던 책이지만,,, 역시 다시 보기 전엔 기억이 안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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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적 규범으로서의 법은 그 강제력의 근원을 어디에서 얻는가? 이것은 법의 창설과 효력을 동시에 묻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법철학적 견해가 서로 엇갈리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자연법사상과 법실증주의가 대립한다.

  자연법(lex naturalis)의 이론적 전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나 이성은 시대․민족․문화․계급의 차이로부터 초월하여 영구불변하다는 것이다. 보편적 인간의 본성 및 거기에 내재하는 인간의 자연법이라는 사상은 고대 그리스가 창조한 위대한 사상 중의 하나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이 자연법사상은 그리스와 로마의 스토아학파에서 발전되었다. 스토아학파의 원칙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자연에 좇아서 사는 것’이었다. 클레안테스(331-233 B.C.)는 우리가 좇아서 살아야 할 자연은 공통한 자연이라 하였고, 크뤼시포스(281-208 B.C., 스토아학파의 제이의 건설자)에 의하면 그것은 특히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이라고 한다. 그들의 자연은 곧 로고스요 이성이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에 공통하는 것이었다. 스토아학파는 이 공통의 인간본성을 모든 민족․인종․시대에 공통하는 보편적 인간이성이라고 본 것이다. 이 인간이성은 필연적으로 공통한 사상을 낳는다. 모든 인간에 공통하는 이성은 ‘옳은 로고스’,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는 규범적 이성이므로, 그것이 만들어내는 사상은 공통한 인간적 평가기준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보편적 인간적 평가기준이 자연법의 기초이기 때문에 자연법은 처음부터 이성법이다. 자연법에 의해서 모든 인간은 자연과 이성에 따르는 권리를 가지며, 이것으로써 하나의 공동체의 성원, 동일한 세계국가의 시민이 된다. 로마의 스토아주의자 루푸스(B.C. 1세기 초)는 모든 인간의 공동의 조국은 우주라고 하였다. 하나의 우주국가의 시민으로서 동일한 이성적 자연법에 좇아서 사는 모든 인간은 따라서 평등하며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만민법’이기도 하다.
  자연법의 근저에는 코스모폴리탄적 인도주의적 이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로마가 제 민족을 시민으로 삼는 제국으로 된 뒤에 스토아학파에 의해서 전개되었다. 스토아학파의 이러한 사상은 키케로(106-43 B.C.), 세네카(514-565),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를 거쳐 [시민법대전]의 사상적 기초가 된 것이다. 자연법은 그리스도교의 신정법인 ‘영원의 법’과도 하등 모순이 되지 않았다.

  이러한 자연법사상은 르네상스의 과학발흥과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붕괴되는 듯하였으나, 17세기에 스토아철학이 부활하고 계몽주의가 대두됨에 따라 다시 위세를 회복하게 되었다. 몽테스키외(1968-1755)는 [법의 정신](174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법이란 가장 넓은 의미로는 사물의 본성에서 이끌어내어지는 필연적 관계를 말한다. 개개의 이성적 존재는 그들이 만든 법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그러나 그들이 만들지 않은 법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존재하기 이전에는 그들은 가능적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가능적 관계 즉 가능적 법을 가지고 있었다. 실정법이 존재하기 이전에는 가능적 법관계가 존재했었다. 실정법이 명령하고 금지하는 일 이외에는 법도 불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교설하는 것은 마치 누군가가 원을 그리기 전에는 모든 반경이 같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는 자연법에 대한 훌륭한 변호이다.
  자연법사상이 절정에 달한 것은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에 있어서였다. 미국 13주가 영국의 국왕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선언한 것(1776)과, 프랑스혁명(1789)의 기초가 된 것은 바로 자연법사상이었으며, 거기에 의거해서 미합중국 헌법은 ‘자명한 진리’로서의 인간의 평등권과 자유를 규정하였고, 프랑스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제2조는 “모든 정치적 결합의 목적은 인간의 자연스럽고 양도불가능한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다. 이러한 권리란 자유․재산․안전이며 압제에 대한 저항이다”라고 적고 있다.

  자연법사상에 대한 비판 내지 반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울피아누스(170-228)는 자연법은 인류에게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새를 포함해서 땅 위와 바다 속에서 사는 모든 동물에 공통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보다 결정적으로 자연법론에 치명상을 입힌 것은 나폴레옹에 의한 피정복을 청산하고 봉건주의로 복귀하려는 프로이센의 반동과, 합리주의를 공격함으로써 프랑스혁명의 흔적을 씻어버리려는 독일 낭만주의가 낳은 소위 역사법학파-역사주의에 입각한 법이론학파-였다. 역사주의란 ‘진리와 가치는 시대의 딸’이라는 정식을 모토로 하여 진리․법․윤리 내지 사상 일반을 특정한 역사적 시대, 특정한 문화적․민족적․지역적 집단의 산물이라고 보는 가치상대주의적 입장을 말한다. 이 학파의 개척자의 한 사람인 헤르더(1744-1803)는 그 적인 계몽철학의 이성예배를 배격하고 민족의 본능, 제국민의 민족정신의 무의식적 활동, 특히 소위 ‘원시시가’에 나타나 있는 그 활동을 찬미하였다. 역사주의가 프랑스혁명과 계몽주의의 합리주의에 가한 비난은 그것이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는 것이었다. 합리주의는 인간에 공통하는 성질(이성)만을 강조할 뿐 인간의 차별상은 보지 못한다. 민족의 인간적 특질은 그 역사 속에서 표현되는 감추어진 비이성적인 힘이다. 이것이 독일을 중심으로 한 역사주의의 기본입장이며, 그것은 현재까지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역사주의의 노선에서 순수법학과 자연주의적 법실증주의를 주장함으로써 자연법론을 결정적으로 배격한 것은 비엔나학파 출신의 켈젠(1881-1973)이다. 그는 논리적 견지에서 존재로부터 당위를 도출할 수는 없다고 역설한다. 자연법론은 자연법칙과 도덕적․법률적 법칙을 혼동하고 있다. 즉, 자연법칙은 “A이면 B이다”라고 기술되는데 반하여, 도덕적․법률적 원칙은 “A이면 B이어야 한다”고 술정된다. 전자는 기술적(직설적)이고, 후자는 규범적(명령적)이다. 규범적 명제는 기술적 명제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켈젠은 과거의 위대한 법학자들 중에서 자연법을 주장한 사람들은 사실은 자기가 하고자 한 일-진보의 이상이든 반동이나 전제의 이상이든-이 ‘자연적’이고 ‘이성적’인 것임을 증명하려고 한 데 불과하다고 단정한다.

  자연법론 측은 법의 기원과 효력을 자연(=이성)에서 근원하는 정의에 있다고 본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법은 ‘정당하기 때문에 법’이다. 그러나 법실증주의 측에서는 법은 ‘명령되었기 때문에 법’이다. 후자에 있어서는 법의 기원은 법제정자의 힘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법은 시대적 민족적 정신에서 기원한다고 본다.

  키케로, [국가론]을 보면, 자연법사상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플라톤을 모방하여 대화편으로 되어 있음).
  “참된 법은 자연과 조화된 바른 이성을 말하는 것일세. 그것은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불변하며 영구적일세. 그것은 명령으로써 의무에 복종하도록 하고 금지로써 악행을 피하도록 하지. 그리고 그것은 그 명령과 금령을 - 악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효과도 갖지 못하지만 - 선인에 대하여 과할 때는 헛됨이 없지. 이 법을 변경하려고 하는 것은 죄악이며, 또 이 법의 어느 부분을 폐기해서도 안 되며, 더욱이 그 전부를 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우리는 원로원이나 민회에 의해서도 그 법의 의무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그 법을 설명할 사람이나 해석할 사람도 우리들 자신 외의 다른 데서 구할 필요가 없네. 그리고 로마와 아테나이에 상이한 법이 있지 않을 것이요, 또 현재와 장래에 상이한 법이 있지 않을 것이며, 오직 하나의 영구불변할 법이 모든 국민과 모든 시대를 통해서 유효할 것이요, 그리고 우리들 전부의 위에는 오직 하나의 주인, 오직 하나의 지배자, 즉 신이 있을 뿐이네. 왜냐하면 신은 이 법의 정립자, 공포자, 그리고 그것을 실시하는 재판관이기 때문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