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헌법적 질문

의사결정에 관해서는 약한 지구적 공론장과 법적으로 (상대적으로) 강한 기본권 및 인권 사이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은, 민주적 시민 사회의 현존하는 강한 공론장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기술될 수 있다. 이 위험은, 우리가 보아왔듯이, 민주적 자기조직이라는 초국적 등가물이 없는 한에서 첨예할 뿐이다 This danger is, as we have seen, only acute as long as there are no transnational equivalents of democratic self-organization. 사실상 그러한 등가물은 없고, 확실히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해관계와 민주적 정당화를 피하는 소송 절차 proceedings that shun democratic justification”가 존재하며, 이 의미는 위험이 여전히 첨예하며 지구화의 부정적 변증법을 좋게 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주권 국가의 세계 안에서의, 그 사이에서의, 그리고 이를 넘어서는 민주주의 없이는, 지구적 연대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오랜 그림자 같이 근대화의 모든 길을 따르는 두 가지 포함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거의 상상할 수 없다 Without democracy within, between, and beyond the world of sovereign states, there will be no global solidarity, and a solution to both of the inclusion problems that follow every modernizing path like a long shadow is hardly conceivable. 그런 고로 지구 사회를 헌법 아래 놓는 전망을 확인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가 될 수 있으며, 그러한 전망은 단지 기본권과 약한 공론장을 가진 지구 공동체의 부분적인 자유를 능가한다. 이 문제를 다루는 데 대한 제1의 그리고 희망적인 단계는 약한 공론장에 대한 기술을 확대하여 이의 견해를 형성 중인 강한 공론으로 포함시키는 것이다 A first, hopeful step toward addressing this problem would be to extend the description of the weak public sphere to include a view of it as a strong public in the making.

이는 헛된 희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공론장이라는 개념 그 자체에 근거해 있다. 공론장은 결코 고정된 어떤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유연한 정치적 요소는 소통적 권력으로, 이는 소통적 권력을 행정적 권력으로 법률화하고 변형시키는 공식적인 의사결정에서 발견될 수 없다; 공론장의 진정한 소재는, “의사결정이 아니라 발견과 문제해결에 맞물려진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비조직적인 공론장”이라는 “권력에 의해 전복되지 않는 소통의 자발적 흐름”에 위치한다. its real locus is in the "spontaneous flow of communication unsubverted by power" of a "public sphere that is not geared toward decision making but toward discovery and problem-solving and that is in this sense non-organized." 소통적 권력은 기본적으로 - 맑스와 아렌트와 함께 - 정치적 행동을 통해 세계를 바꾸는 권력이다. 어떠한 공적 행동도 그와 같을 수 있다: 도발적인 규칙 위반, 대중적인 반란, 선전물, 선언, 의회 연설, 사건, 혹은 성토대회. 소통적 권력의 잠재력은 그것이 파괴적인 만큼 꼭 그만큼 생산적이다. 아렌트와 하버마스 모두가 소통적 권력의 위험을 강조한다. 공적 행동은 항상 억압과 폭력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공론장의 비도구적, 비조직적 무정부 요소는 특히 “제한되지 않는 소통의” 고유한 “수단”이며 the non-instrumental, disorganized anarchic element of the public sphere is a particularly unique "medium of unrestricted communication" (Habermas), 이는 또한 말과 행위로 이야기되고 표현될 수 있는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개방적일 수 있다. 그것은 출애굽으로부터 프랑스 혁명까지 해방을 위한 모든 투쟁의 수단이었다. 왜냐하면? 공적 소통의 권력은 궁극적으로 권력의 담지자에게 쓸모없기 때문인데, 권력의 담지자는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집행 간부 staffs of enforcement” (베버)를 갖고 싶어 할 뿐이다.

공적 권력은 “정말로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소유되지 않는다”고 아렌트가 썼는데, 왜냐하면 그 권력은 “함께 행동하는 남성들 사이에서 발생하고 남성들이 해산하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이다. 소통적 정치 행동은 - 모든 추론적 활동 discursive activities, 심미적 도발 aesthetic provocations, 과학적 발견, 혹은 설득력 있는 주장 같이 - “예기치 않으며”, “헤아릴 수 없으며”, “예측할 수 없다”: 이는 - 아렌트가 실존적으로 강화한 것처럼 -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무한한 일”로 “이 세계”를 잠식해 들어가는 “사건”이다 an "event" that - as Arendt intensifies it existentially - breaks into "the world" with "infinite improbability." 이러한 맥락에서 아렌트가 가끔 인용하는 예수의 말 -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루가의 복음서 23장 34절) - 은,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유에 대한, 그리고 특히 인간의 자유에 내재한 권력에 대한 비상한 이해”를 진정으로 계시한다. 이러한 통찰에서 지배를 비판하는 추진력은 - 당시 그곳에서 폐쇄된 과거를 용서하고 공개하는 것을 언급하면서 - “인간 행동의 예측불가능성”으로부터 나온다 The thrust of the critique of domination in this insight - referring there and then to the forgiving, to the opening of a closed past - arises from the "unpredictability of human action"; 왜냐하면 그것은 또한 지배자와 비밀 경찰의 수뇌부, 또는 행정 권력의 관리자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바르게” (버크) 행동하는 사람들은 - 좋든 나쁘든 - 그들이 하는 바를 모를 뿐만 아니라, 비폭력적이고 엄밀하게는 그 이유 때문에 모든 폭정에 위협적인 권력을 행동으로 “현실화하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바를 지배자와 비밀 경찰 또한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말과 행동은 오직 도구적인 집행 가능성 (베버)이 아니라 소통적인 “타당성 주장” (하버마스)으로 향할 때만, 스스로를 “공적 생활” (아렌트) 권력에 연동시킨다 Words and deeds link themselves up to the power of "public life" (Arendt), therefore, only when they orient themselves not toward instrumental opportunities for enforcement (Weber), but toward communicative "validity claims" (Habermas): [“타당성 주장”이란-번역자주]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아온 경우, 말이 공허하지 않고 행동이 잔인하지 않은 경우, 말이 의도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드러내는 데 사용되며, 행동이 폭력을 행사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데 사용되는 경우.”

물론 폭군과 전체주의적 권력 장치는 항상 공적 연설과 행동이라는 권력을 억압하고 파괴하지만, 결코 그 권력으로 나아가거나 내부로부터 지배할 수 없다 Tyrants and the totalitarian machinery of power can of course always suppress and destroy the power of public speech and action, but they can never make their way into it and rule it from the inside. 도구적 이해관계를 공적으로 주장하기 위해서, 심지어 가장 노련하고 정치적으로 정통한 직업 정치인조차도 “설득력 있는 이유를 동원할 수 있는 언어로 그들의 이해관계를 제기”해야만 한다. 추론적으로 “유동적인” 소통 권력은 정말로 오직 타당성 주장에 대한 예비교육을 통해 성취되기 때문에, 그것은 확실히 수사적으로 “조작될” 수 있지만 “공적으로 구매”되거나 “공적으로 협박”될 수 없다 Because it is really only achieved through an orientation to validity claims, discursively "fluid" communicative power certainly can be rhetorically "manipulated," but it cannot be "publicly bought" or "publicly blackmailed". 심지어 수사적 조작조차 어떤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그 한계는 아니라고 말할 가능성, 설득력 있는 비판의 가능성에 있다 The limit consists in the possibility of saying no, the possibility of a convincing critique of its persuasiveness. 공적 의견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처럼 ‘조작될’ 수 없다.” “제조” (아렌트)는 공적 의견을 파괴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공적 의견은 매체와 법전을 통해 자동적으로 이상화되어 폐쇄된 기능적 체계처럼 운영될 수 없으며, 그 체계는 이해를 향해 맞추어진 행동 양식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The "manufacturing" (Arendt) would destroy it, since it cannot be steered like autopoetically closed functional systems through media and codes, which are foreign to the type of acting in concert that is oriented to understanding. 그러나 관료주의적으로 집행되는 권력이 추론적 수용이라는 소통적 권력을 파괴할지라도, 장기적으로는 그 자신의 정치적 제도라는 살아있는 기질을 그것과 함께 파괴한다 in the long run it destroys along with it the living substrate of its own political institutions: "모든 정치적 제도는 권력의 표명이며 구현이다; 인민들의 살아있는 권력이 정치적 제도를 지지하기를 멈추자마자, 정치적 제도는 경직되며 부식한다.“ 이는 또한 유럽 연합과 지구 사회의 정치 체계에 전면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지구적 소통 공동체는 단순히 이상적인 담론 공동체가 아닌데, 이상적인 담론 공동체란 보편적 진리 주장 및 타당성 주장에 대한 예비교육을 통해 가장 작은 학술 기구에서 이미 지적으로 구성된다 an ideal community of discourse that is already epistemically constituted in the smallest academic institution through the orientation to universal truth claims and validity claims. 둘째, 그것은 또한 단순히 법적 공동체가 아닌데, 법적 공동체란 지역적으로 제기된, 지구적인 법적 주장을 통해 이미 법적으로 구성된다 a legal community that is already legally constituted through locally raised, globla legal claims. 셋째, 그리고 무엇보다 특히 and not least of all, 그것은 또한 소통적 접근성에 의해 기술적으로 구성된 현실적인 공동체다. 솔직히 말하면, 문서 없이 도시 공화국은 없다; 인쇄 없이 근대 국가 헌법은 없다; 그리고 전자 매체 없이 초국적 인간의 그리고 사해동포적 권리는 없다 ― 그것들은 호소, 주장, “노래”, “의례적 선언” (루만), 오직 말 (홉스)과 더욱 유사할 것이다 they would be more like appeals, claims, "songs" and "ceremonial declarations" (Luhmann), and only words (Hobbes). 오직 지구적 소통의 기술적 매체가 이용 가능할 때만이, 이상적인 소통 공동체는 진정으로 모든 인간 존재의 현실적인 소통 공동체로 바뀌기 시작한다. 맑스가 19세기 중엽 썼던 것처럼, “기선”, “전자 전신”, “철도”가 소통을 위해 이용될 때, 인권, 민주주의, 지구적 연대는 “역사적 운동”의 “유령 specter”으로부터 오직 도래한다.

인권을 지구적으로 구현하고 약한 공론장에 점점 더 공명하는 것이 진정으로 가능하게 된 것은, 20세기 중엽 이래 전자 매체와 항공 교통에서의 기술 혁명 때문이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비행기 승객의 수는 1970년 이래 빠르게 증가했다: 1975년 2억 명으로부터 1993년 5억 명까지. 정치적 공론장이 “주목하는 반경”이 방대하게 커졌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주목하는 것이 확대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Even if the vastly enlarged "radius of attention" by the political public sphere still guarantees no enlargement of actual attention, 최근 몇 십 년 동안 인권 침해가 가장 빠르게 그리고 가장 종합적으로 전 세계로 보고되었다는 것은 진실이다. 결과적으로 매우 빈번하게, 확고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인권을 보호하고 개입한 적이 이전에는 결코 없었다.

대중 매체의 냉소적이고 선택적이며 냉철한 응시 없이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문화적으로 낯선 곳의 인권 침해에 대한 분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심지어 전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국가와 집단이 국제사면위원회의 요주의목록에 등록되는 것이 그렇게 불편한 이유인데, 왜냐하면 이는 소비자 불매운동과 투자 금지조치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 매체에 대한 보수적인 문화 비평은 특히 TV에 관해 제기되면서, 인권의 적극적 효과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정보의 평등화에 의해서도 약화되는데, 정보의 평등화 없이는 인권의 적극적 효과의 의미가 반감될 것이다 The conservative cultural criticism of the mass media, which gets particularly worked up about television, is counteracted not only by the positive effects of human rights, but also by the egalitarianization of information without which those positive effects would not even be half as significant. 원칙적으로 모든 인간 존재는 “어떠한 사회 계급이든 상관없이” “OECD 세계의 어느 지점에서도,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정보를 가질” 수 있다. In principle, every human being, "in any social class whatsoever" can, "at any spot in the OECD-world, have nearly all information at his or her disposal." 교육과 정보가 여전히 중심부 (OECD 세계)와 주변부 (제3세계)의 구별에 종속되는 반면, 전자 매체를 통한 소통적 접근성은 이러한 경계를 뚫고 지나간다. 모든 전문적 기능의 소통으로부터 배제된 과잉 인구조차 - 상대적으로 거의 예외 없이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 favelas(빈민가) 지붕 위의 TV 안테나에 의한 지구적 소통 망과 연결되어 있다. 대량 전달 체계는 진정으로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유일한 기능적 체계다. 그것 없이 불행한 사람들은 붕괴 가능성조차 대표하지 않을 것이다 Without it, the unfortunate would not even represent a potential for disruption.  찰스 샌더스 퍼스 Charles Sanders Peirce가 반사실적 과학 공동체 모델 the model of a counterfactual scientific community에 따라 19세기에 개괄했던 이상적인 소통 공동체는, 소통 기술을 매개로 한 모든 개별 인간 존재의 접근성에 오늘날 실질적으로 관련된다 has its actual correlate today in the accessibility of every single human being via communications technology.

물론 지금까지 지구적 소통 공동체는 오직 수동적인 TV 시청자의 status negativus(소극적 지위)에서만 (거의) 전적으로 실현되어 온다. 그리고 모든 새로운 소통 기술이 접근성의 정도를 증가시킨 것도 아니다. 인터넷조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접근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즉 방대한 양의 정보 망으로부터 여전히 고립되어 있는 자 사이의 균열을 깊게 만든다. 아프리카에는 때때로 라디오, TV, 전기 없이 그럭저럭 지내야 하는, 그리고 밤에는 문자 그대로 어둠 속에서 지내는 대도시조차 존재한다. 덧붙여, TV가 금지된 근본주의 체제조차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는 지역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어찌 되었든, 컴퓨터에 의한 네크워킹 가능성을 전파하는 대중 매체가 없다면, 비판적 거리를 두고 지구적 경기자의 세계까지 확대되는, 지구적 시민 사회의 징후는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At any rate, there would be hardly any sign of a global civil society, which expands in critical distance to the world of global players, if there were no electronic media of dissemination with their computer-supported possibilities of networking. 미카엘 전 Michael Zürn이 감상적이지 않게 강조한 것처럼, 지금까지 “새로운 정보 소통 기술의 지구적 전파”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서 예언했듯이, 개인과 대립하는 국가가 아니라, 국가와 대립하는 개인”을 강화해 온다. 그것들로 인해서, 공적으로 행동하는 전문가, 언론인, 개별 저항자, NGO 그리고 가물거리는 많은 색깔을 띠는 연속적인 사회 운동의, 국경을 초월하는 새로운 시민사회는, 대안을 볼 수 있게 만들고, 가지지 못한 자들과 배제된 자들의 상황에 관한 공론을 효과적으로 격분시킬 수 있게 된다.

단지 부분적인 “지구적인 입헌적 법” (다니엘 터러)이 약한 공론장을 가진 권리로 축소되고 경성법과 연성법 사이에서, 도덕적 주장과 법적 의무 사이에서 발달하면서, 더 이상 대형 은행, 국제적 법무법인 및 군사 기구에 의해 배타적으로 고용되지 않는 법률가, 의사, 경영인, 과학자의 “지구적 전문 계급” (마가리타 베르틸슨)의 성장에 기반하여 스스로를 부양하며, 자기 자신의 “어리석게 구획된 좁은 시각” (군터 토이브너), “자동적인 전문가주의의 맹점” (폴 스트리튼)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The merely partial "global constitutional law" (Daniel Thürer), reduced to rights with a weak public sphere, and which is developing between hard law and soft law, between moral claim and legal obligation, can support itself on a growing "global professional class" (Margaritta Bertilson) of lawyers, doctors, managers, and scientists, who are no longer exclusively employed by large banks, international law firms, and military apparatuses and have begun to overcome their own "foolish compartmentalized narrowing of vision" (Gunther Teubner), the "blind spot of auto-professionalism" (Paul Streeten). “지구적 전문 계급”의 출현은 기회의 산물이나 단지 상부구조 현상이 아니라, 지구 사회의 이중 구조에 기반해 있는데, 지구 사회에서는 행정 권력과 금융 자본의 목적이성적 [zweckrational(목적이성적)]인 기능적 매체의 지구화가 법, 과학, 교육, 의료, 예술 및 대중 매체에서 특별한 “가치장” (베버), “전문직” (파슨즈) 및 “전문가 문화” (하버마스)를 이해하는 소통적 매체의 동시적 지구화를 동반하고 그에 의해 지연된다 The emergence of the "global professional class" is not a product of chance, nor is it a mere superstructural phenomena, but is grounded in the dualistic structure of a global society in which the globalization of the purposive-rational [zweckrational] functional media of administrative power and monetary capital are accompanied and impeded by the simultaneous globalization of the communicative media of understanding for the differentiated "value spheres" (Weber), "professions" (Parsons), and "cultures of experts" (Habermas) in law, science, education, medicine, art, and the mass media. 전자적 장 (인터넷)에서는, 사스키아 사슨 Saskia Sassen이 강조하듯이, 지금 주요한 두 행위자, 즉 사업 부문과 시민 사회가 있으며, 이들은 점점 더 빈번하게 서로를 밀친다 they push against each other more and more frequently. 소통 기술에서의 모든 혁신에 따라, 약한 공론장의 영향은 커진다.

오늘날 시민 사회는 이미 지구적 “인권 문화” (로티)라는 생활세계의 광범한 기반에 반하여 움직인다. 그러나 이 문화는 - 듀이의 족적을 따르면서 로티가 한 것처럼 - 교육수사학적으로 팽창하는, 자유로운 미국의 대학 문화로 to the pedagogical-rhetorical expansion of the liberal, American university culture 축소되지 않을 것이다. 확실하게도, 초국적 시민 사회의 출현에 대한 교육 및 과학 체계의 중요성은 거의 저평가될 수 없다. 시장 경제와 결합하여, 교육 체계는 선택의 배제 효과 (4장을 보라) 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 변증법적 대응책에서 - 후기인습적이고 반사적인 수준의 보편주의적 가치 교육과 도덕적 감수성에 대한 산파역도 맡는다 In combination with the market economy, the educational system not only reinforces the exclusionary effects of selection (see chapter 4), but also is - in a dialectical countermove - the midwife for a postconventional and reflexive level of universalist value orientations and moral sensitivity. 이는 정기적으로, 상당한 비중의 연령 집단이 교육 체계의 영역을 관통하는 모든 경우인 듯 보이는데, 그 영역은 과학과 유사하며 전문대와 종합대의 관대하고 사해동포적인 사회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That regularly appears to be the case wherever a considerable percentage of an age cohort pass through the areas of the educational system that are close to the sciences and are exposed to the permissive and cosmopolitan social milieu of colleges and universities. 1960년대의 학생 소요는 최초의 지구적 저항 운동으로서 팽창하는 교육 정책과 보편주의적 가치에 대한 지구화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새로운 인권 문화는 단지 교육, 가치 일반화, 그리고 “박애”가 아니라, “… 법 [Recht(법)]”에 관한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초국적 저항”에 상응하는 것은 1945년 이래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초국적 법 형성 new forms of transnational legal formation”으로, 이를 통해 문화적 상구부조는 사회적 토대와 연동된다. 이 과정에서, 인권 문화는 “규범적인 공동 기반”을 형성하는데, 이 기반에서 지구 사회의 “상이한 법적 문화”는 입법적 상술과 법적 구체화의 문턱 아래서 합의에 이른다 the "different legal cultures" of the global society reach an agreement below the threshold of legislative elaboration and legal concretization. 입법적 상술과 법적 구체화 없이, “실정법으로부터 점점 더 견고해지는 구조 fabric that is gradually becoming more solid out of positive law”는, 우리가 보아왔듯이, 도덕과 법 사이의 회색 영역에 빠진다. 그러나 공론장이라는 입헌적 약점 때문에 호소의 정치에 국한해서 스스로를 생각하는 시민 사회의 경우, 도덕과 법 사이의 어떤 것으로서 (형평성, 결정성, 법적 독트린, 시행가능성, 명백성 등등이 관련되는 한) 차라리 재앙적인 인권의 모호성은 거의 이상적인 온상이다 But for a civil society that, because of the constitutional weaknesses of its public sphere, considers itself limited to the politics of the appeal, this rather disastrous legal ambiguity of human rights (as far as equality, determinacy, legal doctrine, enforceability, unambiguity, and so forth, are concerned) as something between morality and law is a nearly ideal breeding ground. NGO의 언어는, 국민국가와 정부 대표의 공식 언어를 반대하기 때문에, 여전히 도덕적이지만 이미 사법적인 “인권의 언어”이다 The language of NGOs, which opposes the official language of nation-states and their government representatives, is the still moral, but already juridical "language of human rights"; 그런 식으로 그것은 여전히 도덕적으로는 NGO의 공적 고객에게 그리고 법적으로는 전문 정치인의 귀에 이해될 수 있다 as such it remains intelligible for both the public clientele of NGOs as moral and for the administerd ears of the career politician as legal. 지구적 인권은 민주적 합법화를 위한 위치구분자로서 기능을 하면서 (3장을 보라), - 철저하게 상극인 - 도덕적 법적 이중인격을 기초로 하여, 형성 중인 강한 공론장을 엄밀하게 구성한다 In their function as a placeholder for democratic legitimation (see chapter 3), global human rights constitute a strong public-sphere-in-the-making precisely on the basis of their - deeply ambivalent - moral-legal double character.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다 This is "not nothing" (헤겔). 지난 10년간, “수천 개의 NGO, 시민단체, 인권구상 및 환경구상”은 성공적으로 “지역적, 국민적, 초국적 수준에서 구체적인 주제와 관련된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어넣어” 왔다. 시민 사회 행위자의 수, 지식, 영향력은 인터넷을 통한 값싼 소통 덕택에 막대하게 증가했다. 법학기구와 인권기구는 국가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국제형사재판소 (ICC) 및 지뢰금지 협약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유엔, 특히 유엔개발계획 (UNDP)에서, NGO는 지금 자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특히 공론에 효과적인 인권감시회와 국제사면위원회의 서면진술은 제네바 인권위원회의 훨씬 덜 믿음직스럽지만 공식적인 국가 보고서에 대한 “그림자 보고서 shadow reports”로서 부가되어 왔다.

브라질에서 수천 명의 노숙 아동을 살해한 자에 맞서 생겨난 (앞에서 언급된) 성공적인 공적 절규는 용감한 브라질 언론인, 해방 신학자와 가톨릭 교회, 국제사면위원회, UNICEF 활동가, 그리고 국제적인 인쇄 및 TV 매체와의 협력을 통해 성취되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외국 TV 및 언론 보도는, 노숙소년소녀국민운동과 같이 새롭게 만들어진 지역 운동과 함께, 브라질 공론장을 결집하고, 여행객들이 리오에 머물지 않도록 하고, 의회의 조사위원회 형성을 주도하는 등등에 성공했다. 범인들은 확실히 그들 나라의 부패한 법으로부터 이익을 얻었으나, 단지 명목상 상징적인 헌법의 법 조문은 “[또한] 그 말에 따라 취해질 수 있다 can [also] be taken at its word.” 국가는 처벌받지 않은 대량 학살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은 대량 학살은 브라질 헌법과 브라질 형법의 본문과 모순된다. 이번 사건 및 다른 사건에서 전문 법학자가 선례가 될 만한 소송을 끝까지 해 내려는 시도는 넓은 공론장에 의해 지지를 받기 때문에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약한 공론장은, 적어도 그 시점에서, 강해진다. 권리를 가진 약한 공론장 A weak public-with-rights은 지구적, 지역적, 그리고 국민적 공론장을 연동시키면서, 그러한 집중적 캠페인의 수적 증가와 함께 점진적으로 강해진다. “급진적 개혁주의” (하버마스)는 단계적으로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목적으로 법의 자구에 집착할 수 있다: “규범적 본문, 특히 헌법은 불성실한 의도로 제정될 수 있지만, 불처벌로는 결국 제정될 수 없다 Normative texts, particularly constitutions, can be established with insincere intentions, but ultimately not with impunity. 그것들은 역류할 수 있다 They can strike back.”

그리고 그것들은 역류하고 있다. 1999년 세계무역기구 (WTO) 시애틀 대회 준비기간에, 미국에서 극히 이질적인 집단 수백 명의 무지개 연립은 성공적으로 민주당과 클린턴 행정부가 노동 기준과 환경 현안을 의제에 올리도록 강제했다. 시위대의 주제는 - 개발도상국에 대한 부채 탕감, AIDS와의 싸움, 지구 기후, 기타 등등 - WTO, G8/G7, 기타 모임의 정기적인 의제로 채택되어 왔으나, 주요 논제가 아니라 역시 부수적인 논제였다. 2000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프라하 대회 이전에, 난생 처음으로, 세계은행 총재 제임스 울펀슨이 NGO와 충분히 만나, 부패 문제, 다국적 기업에 대한 통제 및 지역 발전 프로젝트를 토의했다. 시애틀과 이어진 국제 대회에서의 저항과 폭력 분쟁은 지구적인 혼돈의 시대에 모든 나라에 흩어진 가두 시위대를 통일시켰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개별 활동가를 매우 진지한 민주주의적 목적을 가지고 결집시켰다. 미카엘 바이어스에 따르면, 시애틀 시위대 다수는 “교육받고 학식있는 인민들로, 경제적 지구화의 일부 효과에 관해 우려할 뿐”이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여가 시간이 있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은퇴한 전문직”이었다. 시애틀의 사람들이나 브렌트 스파와 나이지리아의 쉘 사에 맞선 사람들 같은 저항 행동으로 인해 적어도 다국적 회사와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국제 기구가 “다른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바이어스가 그들에게서 본 것은 일종의 “정부, 다국적기업 및 WTO뿐만 아니라, 부서지기 쉬우나 강력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훈련하고자 하는, 도처의 개인들에 대한 경종으로서, 그러한 민주주의는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하고 있다.” 물론 모든 NGO가 순수하게 민주적인 목적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국제상공회의소, 전미총포협회, 큐 클럭스 클랜 the Ku Klux Klan, 마피아, 그리고 지구적으로 운영되는 다른 폭력단 및 테러 집단 또한 NGO다. 게다가 그들의 국내 구조는 - 그린피스와 마찬가지로 - 종종 그렇게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NGO는 또 입헌적 대표체도 아니고 국가 권력의 기관도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형성 중인 강한 공론의 조직적 핵심이다.

법의 수취인으로 구성된 전 세계 인민들이 난생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지구적으로 “적극적 active”이고 “합법화하는 legitimating 인민들” (자유로운 결사 기구에 의해 대표되는)로 표현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천천히 발전하는 초국적 ‘인민들’의 전위”. 물론 이 “전위” 그 자체는 오직 약한 의미에서만 민주적으로 합법화된다. 그것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선출되지 않으며 오직 반사실적 counterfactual이고 옹호적 advocatory인 의미에서만 지구적 ‘인민들’을 “대표한다”: “그들의 약속 their engagement을 통해서 그리고 토의의 개방 the openness of discuss을 통해서.” 약속과 개방은 민주적 합법화를 위한 유일한 기준으로 권리를 가진 약한 공론장에 존재한다:

1. 약속을 통해서, NGO, 자력구제 집단, 행동 위원회, 풀뿌리 단체, 교회, 국제 연맹 international unions, 여성주의자, 단일현안 운동, 시민의 저항, 학술 연합, 전문직 네트워크, 국경없는 의사회, 인권단체, 그린피스, 사면위원회, 적십자 등등은 권리를 가진 약한 공론장 내에서 동일한 입헌적 기능을 실현하는데, 이러한 약한 공론장은 의사 결정의 권위를 가진 정치 정당의 강한 공론장에 이미 존재한다 fulfill the same constitutional fuction within a weak public sphere-with-rights that political parties already have in a strong public sphere-with-decision-making authority. 그들은 “인민들의 의지를 형성하는 데 참여한다.” (독일기본법, 21조 1절 1호) 오늘날 정당 체계에서 정당들이 “과두정치로 입장을 굳혀 오고” 초국적 자본과 국제 정부 기구가 (거의) 지구 사회 내의 민주적 합법화 없이 의사결정의 과두정치를 설립하면 할수록, 비자본주의적 NGO의 부분적인 민주적 합법화가 점점 더 강해진다; “부분적인 합법화”는 여기서 독일기본법의 21조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2. 유기적 통합 articulation의 사회적 정치적 중핵과 성장하는 “저항의 전위들”을 합법화하는 제2의, 준헌법적 기준은 포함적 개방으로, 다양한 형태의 소통적 권력 집행으로부터 나온다 The second, quasi-constitutional criteria of legitimation of a social and political core of articulation and growing "protest avant-garde," which arises from the varied forms of communicative execution of power, is its inclusive openness. 그들이 누구를 배제하고, 목소리를 억압하고, 전문가 조직을 날조하기 시작할 때, 그러면 그들은, 사람들이 종종 관찰한 것처럼, 사회 운동과 함께 그리고 혁명에서, 불행하게도, 이미 그들 자신을 배제하고, 퇴보하는 자기파괴적인 “공론장의 구조적 변형” (하버마스)을 시작해 버린다 When they begin to exclude anybody, to suppress voices, to concoct organizations of specialists, then they have already excluded themselves and begun a degenerating, self-destructiv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 (Habermas), as one often observes, unfortunately, with social movements and in revolutions. 지구적 대립이라는 새로운 시민사회 문화의 합법화는 약하지만, 입증 가능한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The legitimation of the new civil-society culture of global opposition is weak, but not without verifiable criteria: “Voi G8, Noi 6,000,000,000.” (당신들이 G8이면, 우리는 6백만이다) 형성 중인 강한 공론이 호소의 정치, “영구적 소요 permanent unrest”, “방해하는 현실적 (그리고 비민주적) 지구 권력 obstructing actual (and undemocratic) global power [Herrschaft(지배)]”에만 국한되는 한, 토의의 개방은, 약속의 진정성과 함께, 심지어 스스로를 표현하길 원할 수 없거나 (아직)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옹호하는 식으로) 말하기 위한 필요 충분한 기준이다.

(권리는 있되, 의사결정의 권위가 없는) 약한 공론장의 세기는, 의심할 바 없이, “제3의, 시민적, 민주적 사건 a third, civil and democratic moment”과 함께, 시장의 지구화와 공인된 정치 활동무대 the official political arenas - “정치 부서의 명령 imperatives of political administration”과 “시장의 이윤 원칙” - 에 엄밀하게 놓여있다. 군터 토이브너가 제시한 흥미로운 제안은, 체계와 생활세계의 하버마스적 구분이 지구 사회의 헌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이브너는 체계적, 목적이성적 “조직화 장 organizational sphere” (이윤과 행정 권력에 의해 운영되는 공식 기구)과 소통적 생활세계의 “자발적 장 spontaneous sphere” (연구, 교육, 인터넷, 대중 매체, 법, 예술, 건강 체계, 기타 등등의 자율적 체제)을 구분한다. 소통적인 “자발적 장”은 한편으로 법, 국가, 관료적이고 경제적인 지구적 기구와 체계의 명령에 의한 부단한 “식민화”로 위협 받는다; 다른 한편으로 - 그리고 이는 지구화로부터 얻은 소통적 이득이다 - 엄밀하게 지구화의 결과로서, 그것은 국민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장 안의 “속박 embedded” (폴라니, 샤프 Scharpf)뿐만 아니라 국가의 “온정주의적 의사결정” (토이브너)으로부터도 해방됐다.

자유 속에서 이러한 이득은 어떻게 헌법의 형태로 바뀌어질 수 있을까? 기본권을 통해서, 이는 확실히 국가에 맞선 권리로 이해되지만, 단순히 국가의 행정 권력과 지구화된 (혹은 지역화된: 유럽의, 기타 등등의) 정치 권력에 구속력 있는 법을 부과하거나 입법부의 간섭에 한계를 긋는 것이 아니다 Through basic rights, which are certainly conceived as rights against the state, but do not merely imposed binding law on the administrative power of the state and the globalized (or regionalized: European, etc.) political powers or draw the limits of legislative interference; 왜냐하면 기본권은 “이윤원칙…의 명령 imperatives of the … profit-principle”에 맞서 그리고 (지구적 망으로 연결된) 자본과 자본의 조직적 권력으로부터 고립된 개인 또한 -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제3자 효과 [Drittwirkung(제3자 효력)] 독트린이라는 의미에서 - 보호해야 한다. 덧붙여, 기본권의 보호는 (세계) 시민 혼자만의 권리로 국한되어선 안 되지만, 그것 외에 “자발적 장”의 소통적 완전함을 보장해야 한다. In addition, theprotection of basic rights must not be confined to the rights of the solitary (world) citizen, but must guarantee over and above that the communicative integrity of "spontaneous spheres." 그렇기 때문에, 기본권은 개인적 권리일 뿐만 아니라 “담론의 권리 discourse rights”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권의 보호가 또한 적용되는 경우는 The protection of basic rights, therefore, also applies to

1. 시민 사회 내의 공론에 대한 공적 자기이해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때이며, 그것이 요구하는 경우는, 특히 the legal guarantee of the public self-understanding of a public within civil society, and it demands, in particular
2. 매우 근대적이고 매우 전문화된 소통적 권력의 원천을 보호하는 때이고, 그 원천은 국내적으로 합리화된, 이해에 관한 많은 “자율적 체제”로부터 소통적 권력으로 흐른다: 과학적 심미적, 법적, 치료학적, 기타 등등 the protection of the highly modern and highly specialized sources of its communicative power, which flow into it from the many internally rationalized "autonomous regimes" of understanding: scientific aesthetic, legal, therapeutic, etc.

기본권 - 국가에 맞선 소극적 권리 [Abwehrrechte(방어의 권리)]에 의해 실시되는, 그러나 자유에 대한 사적 경제의 잠식 및 소통적 하부구조의 보호를 포함하는 데까지 팽창한다는 의미에서 (독일연방헌법재판소, 하버마스, 그리고 루만을 따라) 여전히 후기자유주의적인 - 의 관점에서 지구 사회의 법률화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다양한 수준에서 도입될 수 있으며 (그리고 현존하는 것들 - 지방적으로, 국민적으로, 지역적으로, 그리고 지구적으로 분절된; 기능적으로 혹은 부문적으로 구별된 - 과 연결될 수 있으며) 그러나 당분간은 권리를 가진 약한 공론장의 입헌적 구조를 초월하여 나아가지는 않는다 This idea of a juridification of global society in terms of basic rights - put in place by negative rights against the state [Abwehrrechte], but still post-liberal (along with the German Federal Constitutional Court, Habermas, and Luhmann) in the sense of expanding to include private economic encroachments of freedom and the protection of communicative infrastructures - could be introduced at various levels (and connected to existing ones - locally, nationally, regionally, and globally segmented; functionally or sectorally differentiated) but does not for the time being extend beyond the constitutional structure of a weak public-sphere-with-rights.

(토이브너가 긍정적 관점에서 모든 반지구화 근본주의자를 위해 열거할 수 있었던) 지구화의 이득을 자유 속에서 보존하고 확대하는 데 필요한 기본권의 보호를 제도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요청되는 것은, 우리가 보아왔던 것처럼, 기본권에 대해 민주적으로 합법화된 입법적 상술이다 what is required, as we have seen, is their democratically legitimated legislative elaboration. 시민 사회의 소통적 권력은 법의 수취인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행정적 권력으로 개조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토이브너가 쓴 것처럼, 소통적 권력은 “기본권적 요소”의, 민주적 헌법의, 그리고 “절차적 조직적 규범”의 후기 국가적, 지구적, 지역적, 혹은 부문적 등가물을 요구한다. 오직 그때에만 “자발적 장과 조직화 장 사이의 상호 감독”이 규범적으로 보호될 수 있으며, 그러한 상호 감독의 “증가” 없이는 공적인 자기이해라는 “민주적 가능성”은 해방되고, “증가되며”, 또한 효과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조직화 장과 자발적 장에 대한 상호 통제의 모든 증가와 강화는 - 한편에선 강제적인 그리고 시행 가능한 법으로부터 다른 편에선 민주적 심의와 의사결정까지, 이것 없이 “규범적 헌법” (뢰벤슈타인)은 없다 - 공론장과 대중적 주권의 문제해결 절차와 의사결정 절차를 구조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민주적인 “법의 구성” (켈젠 Kelsen)은 강한 공론장에 의해 오직 아래로부터 합법화될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한,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은 호소의 정치를 통해 비민주적인 지구적 권위 [Herrschaft(지배)]에 점진적으로 “대항하는 것” (뮐러)이며, 이러한 사회적 투쟁은 주로 강한 공론장의 지구적, 지역적, 국민적, 부문적 현실화와 관련된다. 호소와 투쟁은 희망을 잃은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지구적 법의 모든 수취인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효과적으로 대표되기 위해 지구적 법전을 상술하는 과정에 착수하는 싸움에서, 그것들은 민주적 자치의 위치구분자를 사용함으로써 스스로를 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Appeal and struggle are not hopeless since, in fighting to get the process of elaborating the global legal code to include the egalitarian participation and effective representation of all of the addressees of global law, they can support themselves by using the placeholder of democratic autonomy: 지구 사회 내에서 이미 합법화된 인권 틀거리. 이러한 투쟁의 결과는 예언될 수 없으나, 투쟁의 목표는 1978년의  입헌적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이고, 그 프로젝트는 민주적 연대의 자기 입헌제도화를 통해 맹목적인 입헌적 진화에 대한 혁명적 교정에 놓여 있다 The results of this struggle cannot be predicted, but its goal is the completion of the constitutional project of 1978, which consists in the revolutionary correction of a blind constitutional evolution through the self-constitutionalization of democratic solidar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