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모집없이 이미 성원이 차있는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어서 공지에 내보낼 수가 없었네요. 그래도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알려드리면 나중에라도 필요한 정보가 될까하여 현재 하고 있는 공부 내용을 소개합니다.


1. 일터 괴롭힘 세미나

흔히 '직장 내 괴롭힘'이란 번역되는 것을 저희는 '일터 괴롭힘'이라 명명하고 2014년 초부터 1년 이상 공부를 해왔습니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 진행되고 있고요. 조만간 연구보고서를 발간하면, 다양한 자리에서 여러분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가질 계획입니다.


2. 감정의 정치학 세미나

2015년 5월 7일부터 10회 계획으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도입: 감정에서 다룰 개념과 세미나 주제의식: 감정을 심리()시키지 않고 정치적 국면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2) 고통에 대하여

3-4) 혐오(disgusthate로 나누어)에 대하여

5-6) 수치심과 죄책감에 대하여

7) 공감과 감정이입에 대하여

8-10) 초청강사와 종합토론

  

세미나의 주제의식: 혐오문화를 넘어서는 감정의 공부

우리가 함께 연구함으로써 깊이 알고자 하는 감정들과 그에 기반을 둔 감정의 정치학:

 

혐오/증오(Hate), 역겨움(Disgust), 죄책감(Guilt), 수치심(Shame), 고통(Pain), 공감(sympathy) 혹은 감정이입(empathy)

 

인종, 종교, 젠더, 연령, 장애, 성적 지향 등을 근거로 특정 개인 또는 집단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는 공격적 언어행위를 혐오발언(hate speech)이라고 한다. 혐오발언은 선동, 모욕, 위협, 조롱의 성격을 띤다. 한국에서도 이주민, 여성, 성적 소수자, 특정 지역 시민들 등을 향한 혐오발언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 및 기존 규범질서에 대한 제한 없는 비판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특히 존중되어야 할 것으로 간주되던 표현의 자유가 일베, 보수주의적 기독교 단체, 극우 성향의 시민단체 등에서 행하는 파렴치한 혐오발언의 현실에 직면해 자유민주주의 원칙의 심각한 오용 내지는 침해의 원인이 될 위험에 빠진 것이다.

 

혐오발언을 표현의 자유에 입각해 내버려둘 것인가 아니면 인권침해로 보고 규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서구에서 자유주의자들과 공동체주의자들 (혹은 문화적 정체성 존중론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논쟁이 있어왔다. 서구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표현에는 관용을 베풀 수 없다고 보고 규제하는 쪽으로 법을 제정해 왔다. 재일한국인과의 오랜 갈등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도 최근 혐오발언/범죄와 관련해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모로오카 야스코, 2013 혐오발언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논쟁의 역사는 한국에서 향후 본격화될 (위험이 있는) 혐오발언/범죄 문제에 중요한 참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혐오발언 및 혐오범죄의 문제를 법적 · 제도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만으로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혐오발언이나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에서 볼 때 혐오/증오(Hate)나 역겨움(Disgust), 죄책감(Guilt), 수치심(Shame), 고통(Pain) 등 다양한 감정 혹은 정동(affect)과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감정들은 책임과 피해 등에서 구체적 개인들을 호명할 뿐 아니라, 감정의 사회적 속성과 그로 인한 정치적 효과 및 결과에 대해 주목하게 만든다. ‘단순한혐오의 감정과 타인에게 명백하게 상처와 피해를 주는 혐오행위가 구별될 수 없음을 확인시킨다.

 

감정의 정치학’, 즉 감정이 정치적으로 중요하게 고려·분석되어야 할 행위 및 효과라는 관점이 유효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감정은 개인의 내부에 있는 것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일 뿐 아니라 특정 이데올로기의 맥락과 언어 전략 안에서 생성되고 변화하고 확산되면서 내부로 들어오는 것이기도 하다. 왜 특정 시기에 특정 감정이 전 사회적으로 의미심장한 확산을 경험하는가, 하는 것은 바로 감정의 이러한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의 형성-발현 구조와 상관이 있다. 즉 혐오발언이나 범죄로 이어지는 혐오감정은 우연히 발생하거나, 원래부터 어떤 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호들의 유통방식, 기호들의 의미화 등 보다 복잡하고 구조적인 체계를 통해 생성되고 자리 잡고 확산되면서 집단적 힘을 얻는다. 감정은 외부에서 내부로 스며들고, 다시 내부에서 외부로 발산되고, 또 새로운 감정은 이전의 감정 경험에 입각해 실행되고 해석되며 효과를 얻는다. 즉 감정은 개인의 역사 뿐 아니라 사회의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정치학이나 정치철학, 법학의 범주에서 표현의 자유표현 자유의 규제냐를 검토하는 것은 실제로 혐오발언/범죄가 어떤 감정에 토대를 두고 행해지는지, 그러한 감정은 어떤 기호학적, 사회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통해 집단/사회적 힘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탐색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실질적 변화는 이뤄내지 못한 채 추상적인 차원에 머물 확률이 높다. 혐오발언/범죄를 행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러한 행위를 저지하는 방어벽이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고, 방어벽이 쉽게 무너진다는 것은 그러한 행위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심지어는 교묘한 기호학적 왜곡을 통해 장려되는) 사회문화적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제기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 시민의 도덕적 태도일 것이다. 서구에서는 도덕성과 관련해 죄책감과 수치심을 지속적으로 주목해왔다.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 유교권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은 매우 컸으니 주로 수치심이 그 중심에 있었다. 한 개인을 도덕적으로 함양하는데 죄책감이 더 유효한가 수치심이 더 유효한가를 두고 심리학이나 철학 등에서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내고 있지만, ‘혐오와 같은 지극히 부정적이고 타인 파괴적인 감정의 확산을 사회문화적·정치적 관점에서 막겠다고 할 때 이 두 감정은 모두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법이나 관습적 규범 등 초자아superego’의 명령에 입각한) 죄책감과 (스스로 설정한 바람직한 자기 모습인 이상적 자아/자기ideal ego/self’에서 출발하는) 수치심은 현실적으로 도덕심 함양에 상호보완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즉 꼭 필요한 법 제정을 통해 죄책감을 활성화시키는 한편 바람직한 이상적 자아를 올바르게 세우고, 그 이상적 자아를 향한 반성적 삶의 지속적 실천을 고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으니, 실제로 수치심의 경우 혐오행위가 용인되는 현실은 매우 모순되고 부적절한 사례를 제공한다. 한국사회에서 수치심이 가장 빈번하게 호명되는 성폭력의 경우를 보자.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즉 법적으로 피해자의 신분을 획득하기 위해 성폭력 당시, 그리고 이후 극도의 수치심을 느꼈어야만 한다. 그러나 도덕성 함양에서 가르치는 내용에 따르면 이 경우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사람은 당연히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가해자다. 그런데 실제로 가해자가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법이 그/녀를 가해자로 지명하고 그에 대한 처벌을 가할 때, 즉 죄책감을 강요할 때다. 죄책감을 (강제적으로라도) 인정하고 난 이후 그/녀는 가족, 친지, 직장동료, 친구 등 중요한 준거인이나 외부인이 이제 그/녀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질문하는 과정에서 수치심을 느낀다 (대부분은 그 이후에도 느끼지 않지만). 이것은 아마 거의 모든 혐오행위에 있어서 가해자가 수치심과 맺는 관계일 것이다. 깊은 자기반성으로 이끄는 수치심의 발로 없이, 다분히 형식적인 법/행정적 차원에서 관리, 처리되는 죄책감에 입각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판단하는 태도, 더 이상의 도덕적 고민은 결코 하지 않는 이러한 태도는 인권 감수성의 차원에서 볼 때도 치명적이다. 이러한 사회/심리적 태도는 가부장제, 인종차별주의, 성적 시민권 침해, 이주민 차별주의 등 부정적 이데올로기가 자본과 함께 전 존재영역을 지배하는 당대 현실이 용인하고 부추기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만큼 치명적이고 그만큼 심각하다. 가해자가 느끼도록 강제되는 수치심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확장시킬 것인가는 감정의 교육이 주목해야 할 주요주제다.

 

한국사회가 진정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가 되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거의 탄식에 이르는 지금, 부끄러움 즉 수치심의 회복은 혐오발언/범죄를 막기 위해서 뿐 아니라 시민의 도덕성을 회복하고 소통에 입각한 상호의존적 함께의 삶을 조금이라도 가능케 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도덕심 함양 교육에서 강조하는 세 요소, 즉 수치심과 죄책감, 그리고 공감 혹은 감정이입 능력의 올바른 함양이나 조절은 자본과 (오인된) 사적 이익의 유일 원칙하에 침몰하는 사회를 구제하기 위한 필연적 과제다. 그리고 공감 혹은 감정이입의 능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유교에서 47정 이론이 측은지심에서 출발한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환기할 필요가 있다. 타인/피해자의 고통을 가능한 가까이, 즉 덜 매개되고 더 직접적인 상태로 느낄 수 있을 때 그/녀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모든 폭력의 피해로 남겨지는 고통의 감정 또한 좀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고문을 비롯한 고통의 이해는 폭력/문화 비판이나 폭력 연구의 핵심 의제 중 하나였다. 이제 고통의 존재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접속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능성에 좀 더 집중함으로써 폭력적 상황에 저항하는 힘을 집단적으로 기르는 것이 요청된다. 고통이 신체적 정체성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타인 및 외부세계와의 만남을 어떤 방식으로 불/가능케 하는지, 공간적 분리와 고립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 고통에 동참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탐색은 수치심과 죄책감의 형성에 꼭 필요한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