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12월 10일은 세계 인권의 날이다. 1948년 이날의 세계인권선언 채택을 기념하며 거기 담긴 약속의 실현을 온 인류가 다짐하는 날이다. 그러나 인권의 날을 눈앞에 둔 지금, 서울의 거리에는 스산한 바람만 몰아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선 소위 '북한인권대회'라는 것이 열리고 있고 이라크파병재연장동의안의 국회통과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인권보장의 필수조건인 평화와 정의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연일 죽어나가고 있고 매서운 바람이 가난한 이들의 신음소리를 할퀴고 있다. 이들을 위한 인권대회는 어디에 있고 언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참담한 물음 속에 우리보다 앞서 같은 일을 겪었던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침묵은 곧 배반을 의미하는 때"임을 절감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이다. 킹 목사는 잘 알려진 대로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다. 그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으며 갈채를 보냈던 사람들이 그의 생애 말년에는 그를 외면한다. 그건 베트남 전쟁에 대한 그의 입장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 백인 자유주의자들, 유명 흑인 인사들의 압력으로 베트남전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던 그는 "자신의 양심이 다른 선택을 허락지 않기 때문에" 발언하기 시작한다.

1967년 4월 4일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에서의 "베트남 너머"라는 연설을 통해 그는 미국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며 미국이 자국내의 불공정을 외면하고 세계 평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신의 저주와 분노가 떨어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연설이 있은 지 꼭 1년 후인 1968년 4월 4일에 그는 암살당했다. 의문에 싸인 죽음이지만 그의 목소리를 두려워하고 싫어한 자들의 소행이라 여겨지고 있다.

양심 있는 인간으로서 우리도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범죄의 증거가 속속 들어났는데도 파병연장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한반도 한복판에서 대북적대선동행위가 벌어지도록 좌시하는 일은 정신 나간 짓이다. 인권을 빙자하여 무고한 어린이들을 포함한 시민을 학살한 이라크 침략전쟁의 당사자가 북한을 상대로 한반도 한복판에 와서 소위 인권대회를 갖는 것은 위선이다.

북한과 이라크가 처한 상황은 다르지 않다. 둘 다 인권을 빌미로 한 미국의 전쟁책동의 희생물이고, 그에 동조하는 세력은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이러한 선동에 동원하고 있다. 북한인권대회와 이라크파병연장동의안이 출현하고 있는 이 현상을 눈앞에 보는 듯이 킹 목사는 말하고 있다. 왜 우리가 이 둘에 대해 반대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베트남에서의 전쟁과 우리가 미국에서 전개해 오고 있는 시민권 투쟁 사이에는 아주 명백하면서도 알기 쉬운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우리의 시민권 투쟁은 빛나는 순간을 맞았습니다. 그때는 빈곤퇴치 프로그램을 통해서, 흑인과 백인을 불문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약속해 주는 듯했습니다. …그러다가 베트남에 군대가 파병되면서, 저는 이 빈곤퇴치 프로그램이 마치 전쟁에 미쳐버린 사회의 정치적 노리개마냥 무산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베트남 전쟁과 같은 모험들이 일종의 마력을 지닌 파괴적인 흡혈귀처럼 사람들과 기술과 돈을 계속적으로 빨아들이는 한, 미국은 가난한 사람들의 재활에 필요한 자금이나 에너지를 결코 투자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이 전쟁을 가난한 사람들의 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의미에서 이 전쟁에 반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인구의 나머지 집단들과 비교해 볼 때, 전혀 비율이 맞지 않게 턱없이 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남편들을 전쟁터로 보내서 싸우다 죽게 하는 행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던 흑인 젊은이들을 8천 마일이나 떨어진 동남아시아로 보내, 그들에게 남서부 조지아나 동부 할렘 지역에서도 찾지 못했던 자유를 수호하라고 하고 있습니다.…저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토록 잔인하게 조종당하는 현실 앞에서 도저히 침묵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전쟁은 인권을 송두리째 날려버린다. 경제제재는 피를 흘리지 않지만 무고한 어린이와 여성과 노인과 시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에너지를 비롯한 필수자원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총성없는 전쟁이다. 그리고 그런 책동에 동원당하는 사람들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다.

북한인권대회를 위해 안락한 신라호텔에 머물고 있는 미국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조국을 사랑했고 동시에 인권을 사랑했던 킹 목사의 말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대들이 북한적대정책을 선동하려고 쳐들이는 돈은 가난하고 일자리가 없는 미국 시민들을 위해 쓰여져야 할 돈이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쓰여져야 할 돈이다. 그대들이 외치는 북인권을 진정 위한다면 미국 정부의 반평화 공세를 중단시키는 일이 먼저이다. 당신 정부의 정책 때문에 북한의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다. 그대들이 주입시키고 싶은 자유는 '주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결권 존중과 안전보장을 통해 확보될 수 있다. 이라크에 침략군을 계속 두면서 재건을 말하지 말고 차라리 그 비용을 이라크인들이 재건비용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저는 무엇보다도 먼저, 오늘날의 세계에서 가장 큰 폭력의 행사자인 바로 우리 정부를 향해 분명히 말하지 않고서는, 흑인 거주 지역에서 억압받고 있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비판하는 저의 목소리를 결코 높일 수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들을 위해서, 이 정부를 위해서, 우리의 폭력 아래 떨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저는 침묵할 수가 없습니다.…전 세계인들의 가장 깊은 희망을 파멸시키는 한, 미국의 영혼은 구제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야흐로 미국이 되리라'라고 결심한 우리는 저항과 반대의 길을 감으로써, 이 나라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힘없는 이들, 발언권이 없는 이들, 우리 나라에 의해 희생된 이들, 이 나라가 '적'이라고 부르는 이들, 인간이 기록한 어떠한 문서에도 우리의 형제가 아니라고 언급되어 있지 않은 이들을 위해서 말하고자 저는 이곳에 온 것입니다."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수행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스스로 선언한 것은 '생명·자유·재산'의 권리도 '자결권'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었다. 식민지 예속 하에서 참된 인권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의 역사가 증명했다. 그런데 베트남의 자결권을 부인했듯이 오늘날 이라크와 북한의 그것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베트남)이 미국 독립선언서의 내용을 자신들의 선언에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인정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이전의 식민지를 다시 정복하려는 프랑스를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베트남인들이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고,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오랜 세월 세계의 정서에 치명적인 독을 입혀왔던 서구의 오만함의 희생자로 또다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우리는 베트남인들에게 그들이 독립할 수 있는 권리를 부정했습니다.…재식민지화하려는 이러한 비극적 시도에 따르는 거의 모든 비용을 우리는 머지않아 치러야만 할 것입니다."

진실한 인권 기준은 상대방에게 적용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약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자신을 '선'으로 주장하는 것은 지배와 다를 바 없다. 공동선의 관점에서 자신을 먼저 고치는 것이 진정한 인권의 주장이다. 상대방의 차이에 대해서 '존중' 수준까지는 못가더라도 적어도 '인정'하고 '관용'하는 것이 인권대화와 인권증진노력의 출발점이다.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지 않는 인권은 힘의 횡포요, 강자의 위선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비폭력적 공존이냐? 폭력적 공멸이냐? 우리는 과거의 우유부단함을 떨치고 행동으로 옮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베트남의 평화와 함께,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모든 개발도상국들에 있어서의 정의의 확립을 위해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분명히 동정심이라고는 없는 힘, 도덕성이 결여된 힘, 통찰력을 갖추지 못한 힘을 소유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길고 어둡고 수치스러운 시간의 복도를 따라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다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소란스러운 불협화음들을 형제애의 아름다운 교향곡으로 바꿔 연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녕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미국과 전 세계에서 정의가 홍수처럼 흐르고 공의가 힘찬 물살로 흐르는 그날을, 우리는 그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류은숙] <2005년 12월 8일 인권하루소식 제2954호>

* ◎ 이 연설의 전문은 http://www.stanford.edu/group/King/publications/speeches/Beyond_Vietnam.pdf (영어)에서 볼 수 있다. 한국어판은 위드북스에서 출판된 『마틴 루터 킹의 양심을 깨우는 소리』에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