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현실 사이

198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아동권리협약은 34, 35, 36조에 걸쳐 아동에게 해로운 모든 측면·모든 형태의 착취로부터의 아동 보호를 말하고 있다. 특히 34조는 '성착취'와 '성학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 말만으로도 담을 수 없을 만큼 아동에게 발생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이 제기됐다. 그만큼 상황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새로운 말이 '상업적 아동 성착취'로서 여기에는 아동 성매매, 아동 포르노그라피, 아동 인신매매, 아동섹스관광 등이 포함된다. 1996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회의는 '상업적 아동 성착취' 문제를 전면에 대두시켰다. 이 흐름을 이어받아 2000년 5월 유엔총회는 아동권리협약에 관한 의정서를 채택했는데, 이것이 '아동매매, 아동 성매매 및 아동포르노그라피에 관한 선택의정서'이다. 이 의정서는 아동권리협약 34조를 보다 실질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2004년 9월에 이 의정서를 비준하여 가입국이 되었다.

이외에도 많은 원칙들이 있지만 사실상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은 우리들이 갖고 있는 간단한 상식을 되새김질 하는 것일 뿐이다. 아동이 성학대의 위협 없이 안전하게 어디서건 뛰어놀 수 있고, 가족과 이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당연한 권리, 자신의 안전을 위한 정보와 교육을 제공받고 훈련받으며, 합당한 보상과 치료와 회복을 도모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원칙과는 다른 현실이 잔인하게 펼쳐지고 있다. 아동인권단체들은 다음과 같은 보고를 계속하고 있다:

인권침해는 우선 드러나야 하는데, 아동에 대한 성학대는 감춰지고 보고되지 않는 형태의 폭력이다.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낙인과 수치심 때문에 많은 아동은 자기 자신과 또한 자신과 친밀한 가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학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성학대에 대해 말한 아동은 흔히 비난받거나 아이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 어른에게 무시되거나 학대자에게 위협받거나 매수당한다. 아동에 대한 성학대는 학교, 가정, 지역사회, 쉼터, 종교 및 기타의 시설, 작업장, 경찰서, 감옥 등을 가리지 않고 평화시에나 전쟁시에나 모든 곳에서 벌어진다. 학대자들은 사회 계층과 집단을 불문하고 나타나며 통계적으로는 남성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학대자의 대다수는 아동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18세 미만의 아동이 가해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피해자인 아동은 심리적, 신체적 상처를 받을 뿐 아니라 자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회나 어른들에 의해서 그리고 적절한 지원이 제공되지 않음으로 인해 또다시 더 깊게 상처받는다.

이에 대해 국제인권기준들이 권고하는 바는 아동 성학대 문제를 뿌리부터 다루라는 것이다. 뿌리라 함은 성폭력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하고 수용하는 분위기, 가부장적이며 성차별적인 구조, 어른과 아동간의 불평등한 관계, 이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이런 구조들이 학대자를 대담하게 만들고 그들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성학대에 대한 개입은 철저하게 아동에게 귀 기울이고 아동에게 맞는 친근한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에 대한 책임자가 분명해야 한다. 물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책임을 져야 할 일이지만 정부가 1차적인 책임을 지고 해야 할 일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져야 할 내용들은 아래와 같이 선택의정서에 상세히 나와 있는 대로이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요즘 뜨겁게 지펴지는 대책과 그에 따른 반응들은 범인을 확실히 잡아놓고 족치는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만연된 성폭력의 범인을 잡을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 범인은 성별과 나이로 사람대접을 달리하는 우리 체제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피해자에게 오히려 수치심의 돌을 던지는 수많은 공범들과 함께 하고 있으며, 입으론 대책을 마련해도 실현할 인력이나 시설도 갖고 있지 못하고, 피해자들의 치료와 회복을 도모하는데는 거의 자원을 투여하고 있지 않는 인색함 속에 있다. 어떤 법학자는 국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형벌 보다는 사법제도라고 한 적이 있다.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오히려 두려워하는 사법제도나 기타의 환경 속에서 범인이 제대로 보고 되거나 잡히기 어렵다. 따라서 제대로 처벌하기도 어렵다. 인권침해는 처벌돼야 한다. 그러나 제대로 처벌하는 것과 인권의 보루가 되는 원칙들을 훼손하면서 엄벌과 특단의 조치를 남발하는 것은 다르다. 또한 인권보장은 형벌로 실현되지도 않는다. 아동을 잘 이해하여 대처하는 사람들도 양성하고 시설도 만들고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당장 눈길을 끄는 충격요법이나 만병통치약에 대한 선전은 병에 대한 치료노력을 부실하게 할 뿐이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많은 일들을 그것으로 면피하게 해줄 위험성도 다분하다. 그간 성폭력전문단체 등이 꾸준히 제기해왔으나 외면돼왔던 것들을 다 끄집어 내놓고 총체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단지 무언가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따로따로 경쟁적으로 급조한 대책을 내놓지 말고 아동과 관계되는 일을 하는 모든 당국자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길 바란다. [류은숙] <2006년 2월 24일 인권하루소식 제2998호>

유엔아동권리협약(1989) 제34조 성적 착취

당사국은 모든 형태의 성적 착취와 성적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당사국은 특히 다음의 사항을 방지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국내적, 양국간, 다국간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가. 아동을 여하한 위법한 성적 활동에 종사하도록 유인하거나 강제하는 행위
나. 아동을 성매매나 기타 위법한 성적 활동에 착취적으로 이용하는 행위
다. 아동을 외설스러운 공연 및 자료에 착취적으로 이용하는 행위


아동의 상업적인 성적 착취에 반대하는 제1차 스톡홀름 세계회의 선언문과 행동과제(1996)

3. 모든 아동은 형태를 불문하고 모든 아동 성착취나 성학대로부터 온전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국가는 아동을 아동 성착취나 성학대로부터 보호해야 하고 피해아동에 대해서는 정신적, 육체적 회복과 사회로의 복귀를 장려할 의무가 있다.
7. …부패와 결탁, 법의 부재 또는 부적절한 법률들, 느슨한 법 집행, 그리고 아동에게 미치는 해로운 충격에 대한 법집행자들의 인식부족, 이 모두가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아동에 대한 상업적 성착취를 유도하는 요인들이다. 이는 개인의 행위나 소규모(예컨대 가족이나 안면있는 자들) 또는 대규모(예컨대 범죄망)로 조직된 행위를 수반한다.
8. 사회 모든 계층의 광범위한 개인 및 집단들이 이러한 착취 실행에 기여하고 있다. 착취자의 부류에는 중개인들, 가족구성원들, 비즈니스 부문, 서비스 공급자, 수요자, 지역사회의 지도자, 공무원이 포함된다. 이들은 모두가 무관심과 피해 아동이 겪는 해로운 결과에 대한 무지, 혹은 아동을 경제적 상품으로 간주하는 태도와 가치판단의 영속화를 통하여 착취에 기여할 수 있다.


아동매매, 아동성매매 및 아동포르노그라피에 관한 선택의정서(2000)

제8조 1. 당사국은 형사절차의 모든 단계에서 이 의정서에 의하여 금지된 행위의 피해자인 아동의 권리 및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조치에 의한다.
(a) 아동 피해자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아동증인에 대한 특별조치를 포함하여 이들의 특별한 필요를 인정하는 조치를 채택한다.
(b) 아동 피해자에게 그의 권리, 역할과 그 범위, 절차의 개시기간, 진행 및 그 사건의 처분을 통지한다.
(c) 아동 피해자의 개인적 이해가 영향받는 절차에서는 국내법의 절차규칙에 일치되는 방식으로 그의 견해, 필요 및 관심사항이 제시되고 고려되도록 허용한다.
(d) 법절차 전반을 통하여 아동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e) 아동 피해자의 사생활 및 신원을 적절히 보호하고, 아동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질 수 있는 정보의 부적절한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국내법에 따라 취한다.
(f) 필요한 경우 아동 피해자는 물론 그의 가족 및 이들을 위한 증인에 대한 위협 및 보복으로부터 안전조치를 제공한다.
(g) 사건의 처리 및 아동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부여하는 명령이나 결정의 집행에 있어서 불필요한 지연을 막는다.

3. 당사국은 이 의정서에 기술된 범죄의 피해자인 아동을 형사사법제도를 통하여 다룰 때 아동의 최선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도록 보장하여야 한다.
4. 당사국은 이 의정서상 금지된 범죄의 피해자들과 함께 작업하는 이들에 대하여는 적절한 훈련, 특히 법률적 및 심리적 훈련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5. 당사국은 필요한 경우 이러한 범죄의 피해자들의 예방 및 또는 보호와 재활에 관여하는 자 및 또는 조직의 안전과 통일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채택하여야 한다.
6. 이 조의 어떠한 내용도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를 해하거나 이와 합치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지 아니한다.
제9조 1. 당사국은 이 의정서에 규정된 범죄들을 예방하기 위한 법률, 행정조치, 사회정책 및 계획을 채택 내지 강화, 시행 및 보급하여야 한다. 이러한 조치에 특히 취약한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특별한 관심이 기울여져야 한다.
2. 당사국은 모든 적절한 수단에 의한 정보제공, 교육 및 훈련을 통하여 이 의정서에 규정된 범죄의 예방조치 및 그 악영향에 대하여 아동을 포함한 일반대중의 인식을 제고시켜야 한다. 이 조의 의무를 이행할 때 당사국은 국제적 차원의 것을 포함하여 정보제공, 교육 및 훈련 계획에 대한 공동체, 특히 아동 및 아동피해자들의 참여를 장려하여야 한다.
3. 당사국은 이러한 범죄의 피해자들에게 이들의 사회로의 완전한 재통합 및 완전한 육체적 및 심리적 회복을 포함하여 모든 적절한 지원을 보장하기 위하여 실행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제10조 1. 당사국은 아동매매, 아동성매매, 아동포르노그라피 및 아동 섹스관광과 관련된 행위에 책임 있는 자들을 예방, 적발, 조사, 소추 및 처벌을 위하여 다자간, 지역적 및 양자간 협정을 통한 국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당사국은 또한 당국, 국내 및 국제적 비정부기구 그리고 국제기구 사이의 국제적 협력 및 조정을 증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