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4월 “얼굴색이 다르고 언어와 종교가 다를지라도 우리는 한국 노동자들과 똑같은 노동자들”이라며 이주노동자노동조합(아래 이주노조)이 창립됐다. 그 후 채 한 달이 못돼 이주노조의 아노와르 위원장은 표적 연행되어 11개월이 넘도록 구금돼 있어야 했고 노조설립신고서는 반려됐다. 그러나 단속과 추방, 뿌리 깊은 인권유린에 맞선 이주노동자들의 싸움은 계속됐다. 그 속에서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아 가쁘게 달려왔던 샤킬 이주노조 (전) 수석 부위원장을 만나보았다. 지난 6월 11일 총회에서 새로 집행부가 구성되었기에 한동안은 아픈 몸을 추스르겠다는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바빠 보였다. >


이주노동자가 보는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가 인간으로서나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따라서 인권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큰 문제는 단속이 워낙 심한 것입니다. 단속과정에서 연행되고 강제 추방되고 그 과정에서 단속에 반대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2월과 4월에도 2층, 3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잃었고…. 건강한 몸으로 돈 벌러 왔지만 단속을 피하다가 단속반원에게 맞아 장애를 안거나 시신으로 돌아가거나…. 단속으로 모든 문제들이 벌어집니다.

일주일 정도 일을 하면서 인간이니까 휴식도 필요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이 필요하고, 토요일 일요일 외출 나가서 이들도 봐야하고 그런데, 토.일요일도 단속이 심해서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인권침해입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몸이 아플 수 있고 병원도 가야 하는데 또 단속 때문에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작은 병들도 키우다가 돌아가신 이주노동자들도 많습니다.
일을 하면서 사람을, 사람인데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쉬면서 자기 몸에 맞게 일을 해야 하는데 정부의 단속정책 때문에 업주들도 그걸 이용하면서 열 몇 시간 일을 시키면서 이주노동자들 피로가 많이 쌓이면서 과로로 돌아가신 경우도 많습니다.


남의 문제 아니잖아요?

사진설명지난 3월 13일 이주노동자 코스쿤 셀림 씨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국가인권위에 강제단속저지 진정을 제기했다. <출처: 이주노조>
저는 한국 와서 처음에 프레스 했어요. 공중전화 만드는 프레스…. 사실 저는 14년 됐지만 14년 전하고 지금하고 인식이 조금씩 많이 나아지는 편이고 젊은 세대들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40대나 50대나 아직까지는 이주노동자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우리 이주노동자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88올림픽 치른 다음부터 조금씩 한국에 들어오고 오랫동안 살았잖아요? 이 사람 들어오면 저 사람 나가고 이런 식으로….

앞으로도 내가 느끼는 건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이걸 할 것 같아요. 인력이 부족하니까. 이주노동자 문제는 사실상 남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 사회에서 살고 노동시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 문제는 남의 문제라고 생각 안했으면 좋겠고, 사람들이 ‘이 문제는 우리 문제다’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한 집에서 이방에는 한국분들 살고 앞방에는 이주노동자 살고, 같은 공장들에서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도 일하고 한국분도 일하고 식사 같은 것도 같은 식당에 가서 같이 식사를 하고, 그거 남의 문제 아니잖아요? 인권문제나 노동문제나 자기 동네에서 이주노동자 살면 동네문제이기 때문에 함께 고민하고 함께 풀어나갔으면…. 이주노동자도 많은 도움이 되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이란 나라의 이미지가 나아지고 좋아지고. 아쉬운 것은 시민분들은 아직까지는 그런 생각 안하는 것 같고 오히려 정부에서 선전하는 그런 것 믿어가면서 한국인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뺏기고 있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아직까지는 많아요.


고단했던 걸음걸음

사진설명지난 6월 25일 종로 탑골공원에 모인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조합원들 <출처: 이주노동자방송국>
저도 사실은 오자마자 운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노동운동 하러 오는 이주노동자는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자기 나라에서 뭘 해야 하는데 할 곳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재정문제도 해결하고…. 저도 마찬가지로 그런 목표로 한국에 오게 됐고, 처음에는 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함께 하는 한국인들도 이주노동자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어요. 언어소통도 안되고 음식도 안 맞고 문화도 다르고 여러 문제들 때문에 쉽게 이해를 하지 않았고, 업주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돼든 간에 저임금에 장시간 일을 시키는 목표로 일을 시키는데…. 저도 처음에 들어와서 8시부터 9시까지 일을 했고 연장 일을 하게 되면 연장수당을 받아야 하는데 연장수당도 없고 다른 수당도 없고 일을 하면서 많은 억압이나 무시당하고 그런 부분이 많았어요. 지금 있으면서 이주노동자들에게 많은 연락을 받았어요. 다치고 치료도 못 받고 보상도 안 해주고, 치료도 간단히 하고 출국시키고, 임금도 달라고 해도 떼이고 이런 모습이 너무 힘들었어요.

94년도에 산업연수생 제도 시작하면서 연수생으로 들어왔잖아요. 연수로 들어와서 노동일 하니까 노동자잖아요. 산업재해를 당해도 산재로 인정을 안 해주니까 농성 시작하고…. 또 한 번 96년도에 ‘우리도 인간이다’, ‘우리를 때리지 말라’ 한 적 있어요. 거기에도 가고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꾸려가면서 난생처음…. 그땐 모든 걸 걸어놓고 활동한 건 아니고 집회나 거리선전에나 결합하면서 98년인가 99년엔가 인식 시작되고 활동하고…. 노동조합은 그때는 없었어요. 2001년도에 가서 평등노조 이주지부가 생기고, 2003년도에 명동성당에서 단속 때문에 농성 시작되고, 그 이후부터 2005년 4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생기고 창립총회를 하면서 수석부위원장 맡아서 하게 되고….


기본을 찾자는 운동인데…

국내노동자들도 노동운동하면 빨갱이다 그런 얘기하는데,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예요. 남의 나라에 돈 벌러 왔는데 무슨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그런 생각 갖고 있을 수 있지만 한국노동자들의 운동하고 이주노동자 운동하고 다른 점 있어요. 원래 있어야 하는 부분을 우리가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노동일을 하기 때문에 노동자로 인정해 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요. 그동안 단속을 계속해 왔잖아요? 그런데 성과가 없잖아요? 미등록 노동자로 계속 남아있고, 단속으로 이주노동자 없어지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합법화 해 달라, 노동일을 하니까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 우리가 일을 하니까 임금도 달라, 우리가 산업재해를 당할 때는 산재로 인정해 달라, 노동자니까 노동3권을 보장해 달라, 원래 이것은 기본으로 있어야 하는 부분인데 해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노동운동을 하고 있지만 한국노동자하고 이주노동자 운동 차이점 이런 부분 있고…. 그런데 시민들이 아직 몰라요. 우리가 왜 투쟁하고 노동운동하는지 모르는 분 많아요. 그래서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많이 알려지면 많은 관심을 가지리라 믿어요. 이주노동자 운동에 대해서.

이주노동자 운동하고 국내 다른 운동들하고 자주 결합이 되죠. 예를 들어서 비정규직 운동.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중에서 또 비정규직 노동자죠. 비정규직 운동에도 이주노동자들이 결합하고…. 현장에 있는 많은 투쟁일정에 그런 사업장도 많아요. 임금도 안주고 부당해고 하고 그런 부분, 한국노동자들도 많아서 그런 문제에 연대투쟁하고 국제연대도 하고….


가지도 못 하고 오지도 못 하고…

아노와르 위원장은 347일 만에 (구금됐다가) 나왔죠, 347일 만에…. 한 달 넘게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지금은 통원치료 받고 있고, 정신과와 정형외과…. 어깨도 다치고 해서 치료하면서 나머지 시간 이주노동자를 위해 활동하고 있어요. 6월 11일 총회하면서 다시 위원장 역할 맡고 있어요. 건강이 많이 안 좋죠.

기쁜 일은 없어요. 거의 없어요. 계속 투쟁하면서 사실 단속을 중단하라, 산업연수생 제도는 사실 노예 제도잖아요. 이름만 산업연수생이지, 사업장 이동 자유 없고 해지를 해달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부분 얘기 안 되고…. 그래도 아노와르 위원장은 연행되고 347일 만에 나오고…. 사실 노동자는 하나지만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여러 갈래로 갈라놨어요. 정부 차원에서 중국 동포나 다른 국가들 구분하고…. 한 가지는 이주노동자들이 4만 명 정도 결혼을 하면서 아이들이 나왔잖아요. 그 아이들이 아직까지 학교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부분 많아요. 부모들이 미등록이라 불안감도 있고…. 94년도에는 산업재해를 당해도 산재인정 못 받았는데 투쟁하면서 그 부분 많이 알려지고 산재를 인정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한계가 남아있어요. 일부는 받을 수 있는데, 미등록 산재를 당하면 업주가 산재를 신청하면 벌금 같은 것 물어야 해요. 그래서 업주들이 벌금 있으니까 산재치료 안 해 줄려고 하게 되고, 이주노동자들도 산재를 똑같이 당하면서 치료를 끝내도 하던 일이 장애가 있으니까 그 이후에는 하지 못하잖아요. 직업을 바꿔야 하잖아요. 직업훈련 받아 나머지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직업훈련 노동부에서 훈련 좀 해 주는데 이주노동자들은 안돼요. 나머지 인생 살아야 하는데…. 아쉬운 점이 되게 많아요.

사진설명지난 1월 19일 서울 목동 출입국사무소 앞에서 단속추방 반대 집회 모습 <출처: 이주노동자방송국>
신분 때문에 고향에 잘 못 가잖아요. 신분불안 때문에 14년 동안 한 번도 못 갔어요. 가족들하고 전화연락하고 처음에는 편지를 쓰면서 주고받고 많이 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집에서도 많이 부담이 되고, 너무 맘이 안됐으니까….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고, 재작년에 엄마 돌아가시고…. 가지고 못하고 오지도 못하고…. 엄마도 전화할 때면 ‘어서 와라, 보고 싶다. 빨리 와라’. 그래도 가지도 못하고, 갔다가 오지 못하면 불안하니까.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지금 상태 아주 안 좋아요. 가야 하는데 갔다가 다시 오기가 참…. 보고 싶은 사람 못 보고 가족들이 돌아가시고…. 저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그런 문제 갖고 있고 합법화를 해주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가고 싶을 때 가고 가족이랑 부모님 보고 인사하고 와서 일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아쉽죠.

한국 사람도 일하러 다른 나라로 떠나잖아요.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한테는 인정하지 못 하잖아요. 누구나 필요에 따라 이주를 할 수 있고 이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리 와서 뭐를 하고 있는지 왜 떠나는지 왜 남아있는지, 정부에서 그렇게 선전하기 때문에 시민들도 인식이 박혀있어요. 한마디만 하고 싶은데, 사실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는 공장들 있잖아요? 사실 월급이나 임금을 1.5배, 두 배를 줘도 한국노동자들이 그런 일들 거의 안 해요.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는 공장에는 거의 내국인 노동자 없고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이 더 나가게 되면 작은 공장들이 운영하기 힘들어져요. 사실 작은 공장, 중소기업공장 대기업이 연결이 돼있어요. 제품들이나 물건들이 납품하면서 대기업으로 가거든요.

또 하나는 한쪽에서 시민들의 의식을 그렇게 만들어가면서, 떠나야 하는데 남아있는 것으로 그렇게 선전하면서 또 한쪽에서 이주노동자 새롭게 계속 투입을 하고 있어요. 올해도 10만 5천명? 새로 투입하고 있고 이미 시행하고 들여오고 있어요. 왜? 인력이 필요하니까. 인력이 필요하면서 인력 필요 없다. 다 나가야 한다. 그러면 이주노동자들이 나가야 하는데 한쪽에서 기술 있고 언어, 의사소통되는 이주노동자 추방시키면서 또 한쪽에서는 기술 없거나 언어 소통 안 되는 이주노동자들을 투입하면서 일을 시키잖아요. 이유는 뭐예요? 아예 모든 것 모르고 있는 과정에서 그 사람한테 뭐든지 시킬 수 있어요. 임금도 적게 주고 야근도 시키고 뭐든지 일을 시킬 수 있어요. 그런 것 때문에 그렇게 선전하면서….

한 가지 더 이야기 하면 고용허가제 시행되고 나서 합동단속이 시작됐잖아요. 2003년하고 2004년, 그때 고용허가제 시행 전에 이주노동자 평균임금, 시행 이후에는 오히려 낮아졌어요. 어떤 제도가 시행되고 나면 제도에 따라서 사람들 삶이 나아져야 하는데 안 좋아졌잖아요? 한국시민들도 유럽이나 미국이나 가까운 일본에 가서 일을 많이 하고 있잖아요. 누구나 필요하니까 나라를 떠나서 일을 하거나, 그런 문제가 있으니까 떠나게 되고 남의 나라 가서 일하게 되는 건,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 정도가 자기 나라를 떠나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문제예요. 시야를 넓혀가면서 폭넓게 생각했으면….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욕 듣고 반말 듣고

일상적으로 불리한 문제들 되게 많아서 너무 많아서…. 사실은 요즘은 조금 좋아졌지만 전세나 월세나 방 한 칸 얻을려면 집주인들이 거의 다 안 해 줄라고 해요. 생활하면서 큰 문제죠. 사람이 방이 있어야 생활을 하는데…. 나라는 언어나 문화가 다르잖아요. 음식, 밥 다르죠. 냄새도 다르죠. 아직까지 되게 많아요. 먹지 못하는 음식이 있는 걸 보면 이해도 못하고….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앞집에서 살면서 한국분들 음식 해먹잖아요.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음식을 해먹는데 냄새가 나면 뭐라고 말을 많이 하거든요. 무시를 하고…. 음식 같은 건 할 때도 창문 닫으면서 되게 조심스럽게 해먹게 되고….

누구나 아플 수 있잖아요. 이주노동자 대다수가 의료보험이 없어요. 일반치료, 비용이 만만치 않잖아요. 되게 고달프고 부담되죠. 치료를 안 받게 되고…. 또 공장에서 노동하잖아요. 똑같이 일을 하는데 누구는 퇴근하고 누구는 계속 일하고 누구는 휴가가고 누구는 계속 일시키고, 한국인 노동자들이 퇴근하고 우리는 일을 하고, 한국노동자들이 휴가가고 일 시키고…. 그런 회사 있어요. 2-3달에 한번 그 회사 가는데, 물어봤어요. 그 사람들 365일에 쉬는 시간이 사흘밖에 없대요. 한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거리 다니거나 어딜 가거나 이야기를 할 때는 한국분들이 처음 얘기하는 거, 처음 만날 때는 나이를 떠나서 존댓말 해야 하는데 이주노동자 보면 무조건 반말하고…. 되게 많아요.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예전엔 지하철 탈 때 밤이 되면 무서워서 지하철 못 탔어요. 술 마시면 이상한 행동하고…. 우리가 피부색이 검잖아요, 동남아시아에서 오기 때문에. 버스나 지하철 타면 앞에 자리 비어있고 그런 일 많아요. 공장에서도 반말, 심한 욕 많이 하거든요. 마찬가지로 단속을 하면서 연행할 때도 직원들이 가스총이나 전기봉, 무기들 있잖아요? 그런 것 사용하고 우리가 범죄자가 아닌데…. 잘못한 건 미등록밖에 없잖아요? 단속을 하면서 수갑을 채우고 20대? 나이도 얼마 안 된 사람들이 반말하고, 존댓말 해도 되지만 반말하고 욕하고 때리고…. 이주노동자들은 들어올 때도 반말 듣고, 일하면서도 반말 듣고 욕 듣고, 나갈 때도 출입국직원들한테 반말 얻어먹고 욕 얻어먹고…. 들어온 날부터 나가는 날까지 계속 그런 고통을 받고 나가는 거죠. 사실 고통스런 일들이 많아요. 얘기하게 되면 너무 많고….


…좋겠고, …좋겠고, …좋겠고

앞으로도 이주노동자 동지들이 (문제를)어느 정도 해결할 때까지 인권보호를 받을 때까지, 한 시민으로 한 사람으로서 똑같은 사람이면서 함께 웃으면서 살아갈 때까지, 좋은 일 있을 때 같이 웃고 안 좋은 일 있을 때 같이 함께 울면서, 그런 날 올 때까지 계속 같이 해야죠.

마지막으로 제가 한국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어요. 치료 못 받거나 단속 피하다가 자살하거나…. 이제라도 없어졌으면 좋겠고, 이제 와서 ‘이주노동자 문제가 뭐’ 그렇게 생각 안 하셨으면 좋겠고,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다’, ‘사회문제다’, ‘이주노동자들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이고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보호를 해줘야 한다’는 그런 의식을 한국 시민들이 많이 갖게 됐으면 좋겠고, 한국 시민들도 우리 문제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빨리 이런 문제들이 없어졌으면 좋겠고, 정부 차원에서도 제대로 정책을 마련하면서 이주노동자 억압받고 있는 것 그런 부분들 개선해나갔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정리/류은숙] <2006년 7월 4일 인권오름 제11호>

<편집자주> [외침]은 한국사회의 인권현장, 바로 그곳에 있었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공 없이 그대로 담는 기획이다. 지식인이나 활동가 등은 글쓰기 등을 통해 자기 얘기를 남기지만 인권현장에서 그 원인과 결과를 고스란히 삶으로 받아내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외침’은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