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났어도 얼어붙은 날씨다. 매서운 날씨야 곧 지나가겠지만 꽁꽁 얼어붙은 삶들에 언제쯤에야 햇볕이 들지는 기약이 없다.

어렸을 적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내일’이었다. 내일이면 돈이 생긴다는 말, 그래서 내일이면 밀린 학비를 주겠다는 말, 내일이면 찢어진 운동화나 가방을 바꿔주겠다는 말…. 하지만 그 내일은 그 다음날이면 또다시 내일이 되기만 했다. 요즘도 ‘언젠가는 또는 조만간 좋아지리라’는 막연한 약속이 참 싫다. 그 막연함에는 지나간 약속조차 무시하는 뻔뻔함과 정치를 놓아버린 정치인들의 무책임이 담겨 있다. ‘미래지향적’이란 말은 자본의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자르고, 미리 입을 막고, 미리 공공재를 넘겨주겠다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정리해고는 늘 정당하고 청소노동자는 대자보도 붙여선 안되고 민영화에 반대하는 행동 같은 건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

위 사진:[사진 설명]: 1월 7일 오전, 텅 빈 기륭전자(현 렉스에이앤지) 사무실에는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이 9일째 철야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출처: 참세상

설 직전 대한문에서 집회가 있었다. ‘기륭전자, 약속을 지켜라’는 집회였다. 기륭전자는 6년이 넘는 긴 투쟁 끝에 노사합의를 얻어냈다. 대 사회적 약속으로서 그 합의 내용을 선포하고 사진도 찍어댔다. 국회에서 조인식까지 했다. 그런데 정규직화와 복직을 약속받은 노동자들은 일 한번 못해보고 또 버림받았다. 지난 연말, 회사가 노동자들 몰래 이사를 해버리고 사장은 사라졌다. 집회에서 노래를 한 ‘꽃다지’는 “다시 기륭 집회에서 노래를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며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냐?”고 했다. 기륭만이 아니다. ‘희망버스’란 사건을 낳은 한진중공업에서도 사회적 합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엄청난 손해배상청구가 노동자들의 뒷덜미를 잡았을 뿐이다. 정의를 앞장서 부르짖어도 모자랄 판에 대자보 한 장에 1백만 원을 배상하라는 발상을 내놓은 것이 대학이다. 이런 사안은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살인적 노동조건과 열악한 처우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다루는 방식은 국내에서 하던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람이 없다. 한국기업이 수출하는 최루탄이 민주주의와 삶의 동반 궁핍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쓰러뜨리는 일은 또 어떤가. 하루하루 살아가기 버거운 시민들의 관심이 되기 어려운 가운데 한반도 주변의 심상치 않은 조짐들은 악화되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문제의 사슬은 연결돼 있고 궁핍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걸 해결할 길은 더 두터운 민주주의와 더 강한 인권과 더 깊은 평화일 뿐이란 말은 굶주린 배속에선 의미 없는 소리를 내는 단어일 뿐이다. 우린 참 허기지고 고단하다. 한 동료는 주변에서 잦아지는 삶의 몰락 때문에 정말 우울하고 두렵다 한다. 우린 삶을 누리는 게 아니라 삶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

위 사진:[사진설명: 빈곤에 저항하는 포퍼먼스]

“이 정부는 빈곤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 전쟁을 하고 있다.” 이 말은 지난 연말 총파업 집회에서 나온 발언 중 많은 호응을 받은 것이었다. 이 말을 바꿔보면, 우리가 바라는 진짜 전쟁은 빈곤과의 전쟁이다. 이 말 그대로 국제시민사회에는 ‘빈곤과의 전쟁(War on Want)’이란 이름을 가진 조직이 있다. 2011년 창립 60주년을 맞은 저명한 단체로 ‘빈곤은 정치적이다’란 선언을 내걸고 있다.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1951년에 창립됐는데, 그 발단은 한 통의 편지였다.

영국의 출판인인 빅토 골란즈는 가디언 신문에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당시 한국전을 계기로 고조되는 전쟁과 군비강화의 기류에 반대하며 두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는 전쟁종식을 위한 즉각적인 협상을 하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경쟁과 표적이 다른 전쟁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 편지의 끝부분에서 골란즈는 자기의 제안에 동의하는 시민들에게 “좋습니다(yes)”란 한마디를 적은 엽서를 보내달라고 한다. 한 달 안에 만 통이 넘는 엽서가 왔고 그 힘으로 ‘빈곤과의 전쟁’이 태어났다. ‘빈곤과의 전쟁’은 그 다음해에 ‘세계발전을 위한 계획’이란 보고서를 내놓는다. 그 보고서는 빈곤과의 전쟁이 부자로부터 빈자로의 생색내는 자선이 아니라 정의를 위한 운동이어야만 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한 나라 안에서만이 아니라 부국으로부터 빈국으로의 이전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빈곤의 증상이 아니라 빈곤의 원인과 싸운다는 것이 이 전쟁의 원칙이었다.

‘빈곤과의 전쟁’의 60주년을 평가하는 자료들에선 다른 많은 국제원조활동과의 차별성을 지적하고 있다. 국내에선 진보적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을 표방하며 국제적으론 현지의 저항운동단체들과 제휴한 연대활동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간 해온 활동 중에 스스로 꼽는 것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974년 분유 기업들의 잘못을 폭로하여 세계보건기구로 하여금 분유마케팅의 국제규범을 채택하게 했다. 가난한 나라의 부채청산을 요구하거나 금융기업과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부여하는 소위 ‘로빈후드세’를 주창했다. 2005년에는 영국정부로 하여금 해외 원조시에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를 조건으로 내건 정책을 폐기하도록 했다.

‘빈곤과의 전쟁’의 자기 소개문을 읽어본다. 그냥 어느 단체의 소개문으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싸움의 다짐으로 바꿔서 읽어본다. “빈곤은 정치적이다. 부자들 편에선 정치인의 결정이 빈자에겐 삶과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 우리에겐 정의롭고 평화로운 삶을 위해 지구적 지형을 바꿔놓을 힘이 있다. 우리는 농촌사회, 노동착취공장, 분쟁지역, 사회의 소외된 주변부에서 진정하고 지속적인 변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막연한 내일의 행복을 반복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신, 지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 누군가가 보내온 제안의 편지에 함께 하겠다는 엽서를 쓰는 것, 설이 지난 진짜 새해에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삶과의 전쟁이 아니라 누리는 삶을 위해서.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평화를 위한 노력을

… 우리는 재무장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너무 막대해서 그것에 대한 몰두는 평화 성취에 필수적인 정신적 참신함과 에너지를 우리에게서 더욱더 많이 빼앗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 우리가 전쟁을 막기 위해 새롭고 보다 적극적인 종류의 거의 초인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전쟁은 지금 아주 불가피한 것입니다. … 저는 제안합니다. …

우리는 월터 로이터(Walter Reuther, 미국 자동차노조위원장을 지낸 노동운동가)가 이미 제안한 계획의 다양한 변형을 위해 즉각적인 토론을 제안하는 일을 주도해야만 합니다. 즉, 긴급한 생사의 문제로서, 굶주리고 가난하고 절망에 빠진 수많은 동료 인간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국제 기금을 창설해야만 합니다. 나는 내 나라가 제시하는 기여의 크기로서 새로운 종류의 경쟁으로 세계에 도전하는 걸 보고 싶습니다. 그 도전이란 평화를 위한 노력에서의 경쟁입니다. 그래서 국제적 토론이 무익한 주제 대신에 보람 있는 주제를 발견하는 국제적 정부를 초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국제적 이익에 반하여 자국의 이익에 집중하는데서 초래된 전쟁을 향한 경향이 역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침내 칼이 쟁기로 바뀔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이 편지에 동의하는 분은 누구나 단지 “좋습니다.”라고 한마디를 쓴 엽서를 제게 보내주십시오. 어떤 종류의 행동을 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큰 반응이 있다면 뭔가 가능한 것이 나올 것입니다.

1951년 2월 7일 빅토 골랑즈(Victor Gollacz)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