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끙끙 앓고 있다. 안타깝고 무섭고 미안하고 화나서 어쩔 줄 모른다. 그날의 화마를 떠올리며 다시 아픈 사람들, 동료의 부고와 향냄새에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상처에 세월호 참사를 포개며 아파한다. 짓밟는 데는 그렇게 유능하던 공권력이 구해내고 살리는 데서 보여준 철저한 무능력에 허망해하는 사람들 천지다.

이럴 때 책이 손에 잡힐 리 없고 글씨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런데 ‘담배’를 ‘과부심심초’라 부르는 할매가 평생 살아온 얘기로 말을 걸어온다. 그 말에서 어릴 적 내가 웅크려 울고 있을 때 말없이 다가와 사탕을 쥐어주던 외할머니 냄새가 난다. 슬픔의 한복판에서 출판된 <밀양을 살다>는 15편의 밀양주민의 구술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선 정말 많은 냄새가 난다. 눈물의 짠 내, 고된 노동의 땀 내‧쉰 내‧쩐 내, 분노와 탈진의 침 냄새, 염치없는 돈벌이와 완장질의 썩은 냄새, 큰 솥에 끓인 국물 냄새, 정갈하게 닦고 또 닦은 살림 냄새,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의 청량한 냄새, …….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이런 냄새들을 맡는 능력, 같이 좋은 냄새를 피우고 만드는 능력이 아닐까?

배운다는 것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못 배운 것을 한으로 여긴다. 하지만 배운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명중한 화살처럼 질문한다.

이러다보이 내 한이라 카면 글 많이 못 배운 거. 그기 천추의 한이라면 한이지. 와 내가 그때 엄마 졸라서 나도 공부시켜도라고 말을 못했는지 그기 한이라. 이제 와서는 답답한 것도 서러운 것도 짜다리 없는데, 많이 배우지를 못해 놔노니 말로도 안 되고. 글로 이 속내를 모다 써뿔면 얼매나 좋겠노. 말로 다 못한 게, 억울한 게 너무 많지. 글로 써서 청와대 마당에 국회 마당에 던지놓으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아이라도 누구든지 보면 속내가 쪼매 해소 안 되겠나? 그래 대학 나오고, 배우고 이래 댕기는 여자들 보면 그기 참 부러운 기라. 글을 배웠으면 어디든 나서서 내 더하면 더했지. 지금 이런 꼴을 세상에 알렸을 긴데.

내가 부엉이, 부엉이를 좋아하거든. 밤에 요래 눈이 말게가지고, 밤이면 밤마다 얼매나 열심히 공부를 하겠노 싶은 기야. 내는 꼭 부엉이가 공부하는 것 같애요.(희경)

이게 우리나라 교육이 잘못된 기라. 물질만 너무 강조하다보니까 학교 다니는 아들한테도 공부 잘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 ……, 우리 민족은 어디에서 와가지고 어떻게 살다가 우리가 다음에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역사를 통해서 알 수가 있거든요.…… 국가에서 교육을 안 시키는 이유가 뭔고 하면은 국민들이 다 몰라야 무지해야 …… 국가의 권력자들이 국민을 다스리기 편하다, 정치를 펴기 쉽다, 국민들이 전부 무식해야 일하기가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국민들이 다 똑똑하면 더 어려운 정책을 펴야 하고 요구사항의 수준도 더욱더 높아질 것이니까 국민들이 모르고 하는 게 더 나은 거지예.(안영수, 천춘정 부부)


평생의 노동으로 일군 삶

징글징글하게 일만 해온 삶이다. 그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 고됨에 내 입에서조차 단내가 나는 것 같다. 그걸 하루아침에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 송전탑이다. 그런데 이들 보러 ‘지역이기주의’라 한다. 몇 푼 던져주고 그걸 보상이라 한다. 그럼 돈 많이 주면 괜찮은 건가? 누군가의 평생의 삶을 돈 주고 살 수 있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내가 오만 데 다 댕기며 머리 다 빠져가며 사놓은 거, 저것도 송전탑 땜에 물거품 되다시피 하고, 고게 그리 아깝고. 팔면 돈이나 될 낀데, 아무도 사러도 안 온다.
나무 해다 나르느라 머리 위가 벌겋게 부어가. 내 머리 함 봐봐라. 다 안 빠졌나, 매일 나뭇짐 해다 삯 받아가 살았다.(김말해)

참 내 자신을 참 많이 써먹었다.
이래 살다 죽으면 조상님들한테도 할 말이 있다, 이래 살았는데 인자는 송전탑이 들어와 다 헛게 됐어요. 논도 팔고 싶어도 못 팔지요. 밭도 안 팔리지요. 짐승도 저것 때문에 병들어가지고 안 된다 카고, 사람도 병든다 하지요. 그게 너무 폭 얹혀가지고 내가 이제 헛살았다 싶은 생각이 듭니더.(조계순)

그라고 반듯한 거, 논 900평 있어요, “그거 막내 너희 해라” 주면 풀씬풀씬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기이 막 “아이고, 아버지. 송전탑 세우면 여 안 올랍니더”.(눈물) 그 말이 들어보니 망한 거라, 망하 …… (침묵) 이야기 더 못하겠습니다.(이종숙)

너무 부지런히 일하다보니깐 지금은 다 허리도 굽고 무릎이 다 아파, 사는 걸 보면 가슴이 아파요. 그렇게 열심히 산 사람들 인생이 이게 뭡니까. 자식들이 다 커서 객지로 나가고, 이제는 내가 손수 지은 농사를 수확해 자식들과 노나 먹는 즐거움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말입니다.

내 허리가 고장이 나도록 그렇게 이룬 살림살인데, 이게 지금 내 집이고 땅이고 제로 상태잖아요. 농협에서 대출도 안 내주는 제로 상태잖아요. 사실 내가 이 나이에도 그걸 포기를 못하겠는데, 나이 드신 분들, 지금 꼬부랑해가지고 허리도 다리도 못 써가지고 찔찔 밀고 다니는 나이고 걸음도 못 걸으시는 그런 분들이, 과연 그 살림살이, 내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내 땅 한 떼기를 포기할 수 있겠어요?
송전탑 5개가 마을 앞에 세워지는데 어느 자식이 부모가 있다고 여길 올 것이며, 지금처럼 고추농사를 지어서 누굴 먹이겠어요.
어느 집 자식이 그랬대요. 엄마야, 내는 여기 땅에서 난 거 안 갖다 먹겠습니다. 보통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죠. 농사를 지어 내가 다 먹고사는 거 아니잖아요. 우리도 누군가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고, 누군가의 밥상에 내가 농사를 지은 것을 올리는 건데.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뺐는, 짓밟는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요.(김영자)


공권력이란

구술을 한 분 중에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도 있고 내가 가본 밀양의 움막에는 태극기가 걸려있었다. 왜 그러셨냐 하니 “우리가 국민임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하셨다. 일제시대도 살아봤고 아들을 월남전에 보내고 잠을 이루지 못한 생애도 있었다. 이들에게 인생의 말미에 찾아온 국가란 공권력이란 무엇일까?

6‧25 전쟁 봤지, 오만 전쟁 다 봐도 이렇지는 안 했다. 이건 전쟁이다. 이 전쟁이 제일 큰 전쟁이다. 내가 대가리 털 나고 처음 봤어. 일본시대 양식 없고 여기 와가 다 쪼아가고, 녹으로 다 쪼아가고 옷 없고 빨개벗고 댕기도 해도 이거 카믄, 대동아전쟁 때도 전쟁 나가 행여 포탄 떨어질까 그것만 걱정했지 이러케는 안 이랬다. … 근데 이거는 밤낮도 없고, 시간도 없고, 이건 마 사람을 조지는 거지. 순사들이 지랄병하는 거 보래이. 간이 바짝바짝 마른다. 못 본다 카이, 못 봐.
아이구 씨. 일본시대부터 내 살아생전에 정부가 도와준 거 하나도 없다. 하루라도 내 나라 싶은 날이 없었다.(김말해)

여군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한테 봉사할 수 있는 직업이잖아예. 마음만 먹으면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게 참 좋아예”한다. 그녀에게 공권력이란 국민에게 봉사하는 힘이다.(김영자)

그게 무슨 국책 사업입니까.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짓밟는, 힘 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과의 전쟁 아입니까. 전쟁이라는 말은 제가 만들어낸 말은 아입니더. 여기서 송전탑, 경찰이 와가지고 그래 캅디더. 원래 지금 전쟁 상황입니다 이랬다고예.

송전탑 싸움을 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긴데, 싸움을 하다보니까 국가가, 한전이, 권력가들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정의가 아니고 불의를 내세워가지고 하는 거예요. 참 일찍이 몰랐다. 나는 그래도 우리나라가 법치에 의해서 민주적으로 잘 움직이는 줄 알았더만, 이 송전탑을 들여다보고 나서는 불의의 세력들이 엄청 많다는 것을 제가 알았습니다.(안영수, 천춘정 부부)


이웃이 좋아

이분들은 “울력”으로 살았다는 말을 잘한다. 여러 사람의 힘, 이웃의 힘으로 살아왔다는 말이다. 이웃이 좋고 어울리기가 좋단다. 그래서 송전탑으로 인한 제일 큰 고통은 그 이웃 사이를 이간질하고 찢어놓는다는 것이다.

‘한 집이 되어사는’ 이 상태는 다른 어디에서도 누리지 못하는 기쁨이다.(김사례)

사람이 아무리 부자라도예 남의 도움 없이는 못 삽니더. 꼭 돈 가지고 집에만 들어앉아 사나? 그 돈을 활용을 해야 되는데 돈 쓰는 것도 서로 의지를 해가지고 쓰는 것도 있고, 모을 적에도 그 집이 참 그만큼 노력해가지고 그만큼 잘살아야지, 그 마음이 안 큽니꺼?(조계순)

부녀회장을 하면서 봉사활동 가고, 참 즐거웠어요. 그런 거 참 하고 싶었거든요. 지금도 그렇고 예전부터 내한테 돈이 많이 생긴다면은 나보다 못한 옆의 사람을 돌보고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항상 하고 살았는데 내가 가진 것이 없어 그렇게 살진 못했고. 좀 밥 먹을 만할 때는 나이든 사람 밥 한 끼 사드리고 목욕도 가드리고 그래요. 목욕 모시고 가서 때 밀어드리고 하면, 나이든 분들이 참 좋았던가 봐요.
나는 이웃이 최고라예. 내가 교통사고가 났을 때,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어예. 동에 다리가 불편한 새댁이 있어가지고 우리가 목욕탕 갈 때 돌아가며 가서 씻겨주고 그랬는데, 내가 교통사고가 나가지고 집에 꼼짝을 못할 때가 있었어요. 집에 있는데 몸성치 않은 그 새택이 다리를 이렇게 절뚝임면서 옆에다가는 음료수를 끼고는 걸어오는 기라예. 내가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어예.
내 이웃이 있어줘서 내는 참 감사한데, 송전탑 싸움하면서 참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이웃과 다퉈야 하는게 너무 힘들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나름대로 충전할 수 있는, 자동 충전이 된다니까요. 내 혼자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외롭겠어요.

내가 내 돈 벌 때 내 혼자 한거 아니다. 이웃이 도와줬기 때문에. 대가를 드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분들 없으면 그 농사를다 지을 수 없었거든예. 내가 다 되갚을 순 없다.(김영자)

마늘 알지요? 지금은 이 쪼그만 동네가 열두 쪼가리야.(이종숙)


사람은 다 똑같아

이분들은 인간 존엄성이니 평등이니 자존감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말의 의미를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그때 내가 참 잘못 살았습니다. 내가 왜 청와대에 들락거리는 사람들만이 신사라고 했을까? 그게 아니었네. 그 사람들하고 이 사람들(농부들)하고 바뀌어야 하네, 농촌 사람들이 청와대 들락거리는 사람들이었네. 와, 이 사람들이 진짜 신사였네. 내가 왜 이렇게 철이 없고 어리석었어. 내가 와 그렇게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이사라)

국무총리 빨가벗겨놓으면 여느 남자고, 오륙십 킬로 나가는 그거뿐입니다. 사람은 다 똑같아요. 그 옷을 입히고 인정하고 훈장 붙이고 보호해줘야 사람이지, 똥 덩어리 취급하면 아무것도 아입니다, 그지예?(이종숙)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양심껏 살아야 그기 사람 가치가 있지. 돈이 지금 인자 내 벌어놓은 것만 해도 다 못 쓸건데, 절대 돈 거는 추접은 돈이고 필요 없는 돈입니다. 돈 모할낀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 똑바로 살아야 합니다.(권영길)

나는 평생 자존심만은 지키면서 살았으면 좋겠거든요. 이게 무너지면 살면서도 나는 죽은 거 같거든요. 끝까지 하자. 끝까지 해서 조그만 희망이라도 있으면 그 틈을 비집고 가서 어떻게 해서든 안 세우게 해보자.(성은희)


죄다 우리 일 같아

이들이 송전탑 싸움 속에서 얻은 게 있다면 ‘관계’이다. “이 관계는 아마 평생 이어질 거 같애요. 굉장히 아픔 속에서 생겨지는 관계니까요.”라고 말하는 그 관계는 밀양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송전탑 문제가 어디 이 전기 한 가지 문제입니까. 모든 사회문제가 완전히 종합돼서 나타내지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 또 분개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전에는 내 주변만, 내 주변의 어떤 문제, 그냥 신문을 통한 문제 그렇게 봐오다가 현장을 직접 다니고 철탑 우에 올라앉으신 분을 보게 되고, 또 실지로 쌍용 같은 경우는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 이야기를 듣게 되고, 또 용산참사 문제도 있잖아요.

사실 그때도 그 사건을 알았지만 깊이 생각하기가 싫었어요. …… 그게 피한다고 편해진 게 아니더라고요. 그거에 대한 관심이 내 안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있었고, 이제는 내 안 속으로 들어오게 된 거죠. 그래서 실지로 그런 참사가 밀양에서도 벌어지게 됐고, 내 자신도 공권력에 어느 날 끌려나오는 그런 사람이 된 거죠.

전국 갈등 현장에 가서 우리 다 힘내자고. 한진중공업을 시작으로 해가지고 서울에 평택, 유성기업도 갔고 용산참사 추모 행사를 하는 대한문 앞에도 갔던 것 같고 곳곳을 다녔어요. 용기가 생기더라고예. 서로서로 손잡고 하면 되겠다. 너무나 많은 곳에서 힘든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우리 다 손잡고 서로 기운내고 그렇게 다시 일어서자.(구미현)

이건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잖아요. 그 사람들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고, 탈핵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내 지역의 미래를 보면 우리 지역에 송전탑이 안 들어서는 게 맞죠.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면 탈핵이 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이 싸움이 끝이 나도 ‘나는 함께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이어요.
우리 아들이 ‘이 싸움이 끝이 나도 엄마는 끝이 안 날 거 같습니다’ 해요. 나는 못 잊을 거 같아요. 우리 사회에 아파하는 곳이 많다는 걸. 이 순간들이 영원히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우리 싸움이 끝나도 그곳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요, 작지만. 우리도 이렇게 많은 분들 도움을 받으며 싸우고 있잖아요.(김영자)


우선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이계삼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책 뒤에 붙인 글에서 왜 우리가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한마디로 이렇게 얘기한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업이란, 이 싸움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것은 어르신들의 생애와 이 싸움의 소회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법과 제도의 모순을 폭로하고, 저들에 의해 저질러진 무간지옥의 폭력을 증언하는 과업일 것이다.

주민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배워야 한다. 아픈 이야기 속에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너무 많다. 그 절절한 이야기들에 우리는 귀를 활짝 열어 듣고 코도 활짝 열어 냄새 맡으려 해야 한다. 그것이 이후 우리가 만들 가능성 있는 모든 사건의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