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까지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시계를 안 봐도 몇 시쯤인지를 아는 순간이 있다. 청소차가 골목을 누비며 쓰레기를 싣는 시간이다. 내 동네는 새벽 3시경이다. 새벽 첫 버스를 타본 사람 또는 늘 타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첫 버스는 의외로 만원이다. 승객의 대부분은 묵직한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다. 제일 먼저 길을 나서는 그들의 일이 최하위 대우를 받는 노동이란 걸 대개 짐작할 수 있다. 그 다음이 흔히 러시아워라고 불리는 시간대이다. 애써 차려입은 정장이 무색하게 문을 닫으려는 버스에 매달리다시피 한 사람들 천지다. 분주한 낮이 지나고 또 저녁이 온다. 방송에서 말하는 퇴근 시간대라는 것도 현실과는 다르다고 느낄 때가 많다. 밤이 늦을수록 붐빈다. 얼마나 늦게까지 일하는지를 경쟁하는 것 같다. 그렇게 24시간 숨차게 노동이 돌아가고 있다.

그 숨찬 노동이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고 자신과 타인의 삶에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권리에서 아랫목 차지는커녕 윗목으로만 밀려난다. 윗목도 아쉬울 만큼 맨 몸이다시피 방밖으로 내쫓기는 일도 허다하다.

이런 형편에서 ‘인간은 자유다’란 말과 ‘노동’을 연결 짓기는 어렵다. 인간이 자유면 인간이 수행하는 노동도 자유여야 하는데 ‘노동은 자유다’란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내몰린 계약이 내 자유의사에 의한 것이라 하니 속 터질 일이다. 자유로운 계약으로 받아들인 것이니 무슨 조건이든 받아 삼키라는 환경에서 노동권은 외계인의 소리다. ‘써먹을 수 없는 권리, 실행 불가능한 권리의 선언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원망을 제일 많이 듣는 게 노동과 관련된 권리들이다. 누구는 노동권의 요구에 욕을 해대고 누구는 그 권리들을 공상이라 비웃는다.

참 이상하다. 욕과 비웃음을 먹어야 하는 쪽은 엄연한 권리를 부인하고 조소하는 쪽이지 엄연한 권리를 부르짖고 보장을 요구하는 쪽이 아니다. 오히려 후자를 손가락질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것, 강자에게 억압받는 것도 억울한데 강자의 논리까지 정당화해주는 것은 할 일이 못된다.

‘노동할 권리’는 세계인권선언 23조를 비롯한 여러 국제인권법과 헌법이 ‘엄연히’ 보장하고 있는 권리다. ‘엄연’하다는 말은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것이라는 의미다. 세계인권선언의 ‘노동권’에는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권리, 공정하고 유리한 조건으로 일할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인간적으로 존엄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을 권리,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 휴식과 여가에 대한 권리 등이 속한다. 여기서 무엇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것이 있는지 나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물론 해가 된다고 여기는 세력들이 있다. 노동권의 요구는 경제를 위기로 몰고 가고 소유와 경쟁에 반대되는 것이고 국가의 개입을 부름으로써 자유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노동권’은 애초에 이런 갈등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모든 사람’의 가면에 은폐됐던 계급의 격차가 맞붙은 대표적 사건이 프랑스의 1848년 혁명이었다. 정치적 질서에서는 주권을 가지는데 경제적 질서에서는 일종의 노예상태로 떨어지는 모순이 맞붙었다. 굶어죽거나 싸우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싸움이 그냥 피억압자나 민중이란 두루뭉술한 이름이 아니라 ‘노동자’란 명백한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모든 시민’이란 말은 노동자가 친 바리케이드와 정부군의 총탄 속에서 부르주아와 노동자로 분리됐고, 그제까지의 민주주의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지적한 것이 ‘노동권’의 구호였다.

‘노동할 권리’란 용어 자체는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루이 블랑이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는 <노동의 조직>이란 글을 진보신문에 연재했는데, 거기서 노동자의 삶이 시장 경쟁체제에 내맡겨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노동자가 안정된 최소한의 일자리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것을 위해 국가의 힘과 노동자의 연합이 조직돼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런 취지를 담아 그가 제안한 것이 ‘사회사업장’의 설치였다. 공상적 사회주의자, ‘순진’하다는 평가를 받은 게 루이 블랑의 입장이었다.


위 사진:[사진 설명] 영화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은 1848년 2월 혁명을 보여준다. 1848년 2월 혁명은 '7월 왕정'이 점진적 개혁을 내세우며 상층 부르주아지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 전국적 실업난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생활조건이 약화되며 1만여명의 노동자시민이 거리로 나서며 시작되었다. 당시 광장에는 20m의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었고,국민방위대 일부가 시위대에 합류 하였다.


루이 블랑의 활동 배경이 바로 1848 혁명의 프랑스였다. 1789년 프랑스 인권혁명은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이란 가치를 내세웠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람’속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철저한 구분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그 드러남이 폭발적으로 터진 것이 1848년이었다. 그해 2월 노동자들의 봉기로 루이 필립의 입헌군주제를 타도하고 공화정을 쟁취했다. 2월 봉기로 생겨난 임시정부의 각료 대다수는 부르주아지의 대표였고 노동자 대표는 단 두 명뿐이었다. 그 중 하나가 루이 블랑이었다. 보통선거권이 확장됐지만 허울뿐이었고 벼랑에 몰린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사회사업장이 설치됐다. 하지만 그 사회사업장은 루이 블랑의 구상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거리에 설치된 노역장’에 불과하다는 악평을 받았다. 그마저도 6월에 폐쇄가 결정됐다. 사회사업장 폐쇄를 접한 노동자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봉기에 나섰고 그 내용은 노동권에 대한 요구였다. 정부군은 총공격을 강행했고 노동자 수천 명이 죽고 만여 명 이상이 재판 없이 유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이 때 노동권을 요구하는 이들을 때려잡는 일에 동의하지 않는 쪽을 지목하려고 ‘빨갱이’란 말이 처음 등장했다고도 한다.

노동권에 대한 요구가 공상이고 순진하다는 비웃음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그러나 1848년 이래로 노동자의 투쟁은 그 ‘순진’한 입장을 ‘진짜’로 요구했다. 노동자의 순진함은 ‘만인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 믿음을 저버린 것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약점인 것을 지적했다. 말뿐이 아니라 진짜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의 실현에는 노동권이 당연히 요구된다는 것을 바리케이드에서 흘린 피로 증명했다. 인권의 대전환은 그런 순진한 믿음과 실천 속에서 이뤄졌다. 계약과 영업의 자유, 소유의 자유에 안주하려던 인권이 오늘날 교육권, 건강권 등 ‘사회권’이란 인권으로 전환한 데에는 앞장선 노동권이 있었다.


 

위 사진:[사진 출처] 콜트콜텍 공동행동


‘노동’이란 프랑스어 단어(travail)의 어원은 tripalium으로 징을 박기 위해 짐승을 고정시키는 다리 셋 달린 기구였으며 고문 기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고 한다. 그런 단어였기에 18세기까지 가장 천하다고 간주되는 인간의 활동만을 가리켰다. 물론 오늘날 노동의 의미는 그런 게 아니다. 각기 다른 입장에서 노동을 찬양하는 한편 노동을 독려하고 이용한다. 하지만 실제 노동에 대한 대접에서는 18세기의 자취를 지워냈다고 말하기 어렵다. 노동자가 길거리 잠을 자며 농성하고 굴뚝에 올라야 하고 급기야 목숨을 끊어도 유명인의 공항패션보다 못한 언론의 대접을 받는다. 노동의 요구가 다급하고 당연한 민주주의의 의제가 되지 못한다. 그냥 시민이 아니라 ‘노동자-시민’의 목소리가 진지하게 여겨져야 인권은 ‘말 뿐’이라는 굴레를 벗을 수 있다. 노동의 의미를 무엇으로 만들고 노동을 어떻게 대접하느냐가 우리 사회 인간다운 삶의 척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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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조직(루이 블랑, 1840)

질문이 제기돼야만 한다. 경쟁이 빈민에게 일을 보장하는 수단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다. 노동자에게 경쟁이란 뭘 의미하는가?
경쟁이란 일을 최고 입찰자에게 주는 것이다. 계약자는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세 명이 지원한다. “보수를 얼마나 받길 원하나요?” “3프랑, 아내와 아이가 있어요.” “2.5프랑이요. 애는 없고 아내만 있어요.” “훨씬 낫군. 아, 그리고 당신은요?” “난 2프랑이면 돼요. 난 독신이에요.” “이 일은 당신 꺼요.” 이로써 문제는 해결됐고 거래는 끝났다. 그럼 이제 나머지 두 명의 프롤레타리아는 어찌 되는가? 그들은 굶주릴 것이다. 그게 바라는 바다. 하지만 그들이 도둑이 된다면? 염려마라. 왜 우리에게 경찰이 있겠는가? 그게 아니라 살인자가 된다면? 흠, 그들에겐 교수대가 마련돼 있다. 운 좋은 이는 세 사람 중 하나 뿐인데, 그의 승리(일자리)도 단지 일시적일 뿐이다. 네 번째 노동자가 나타난다. 이틀에 하루는 굶어도 될 정도의 노동자다. 임금을 줄이려는 욕망은 최대한으로 행사될 것이다. 새로운 부랑자, 아마도 노예 노동의 신입자가 …

자유 경쟁의 지배 밑에서 임금의 지속적인 삭감이 예외 없는 일반법이 돼가는 것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나? … 얼마간의 노동자의 제거로 귀결되는 체계적인 임금 저하는 자유 경쟁의 불가피한 결과이다.

정부는 생산의 최고 감독자로서 간주돼야만 하고 그 의무 때문에 큰 권력을 부여받았다.

정부의 과제는 경쟁과 싸우고 마침내는 경쟁을 극복하는 것이다.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그것으로 국가 산업의 가장 중요한 지점들에 사회사업장(social workshops)을 세워야만 한다. …

도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모든 노동자는 이들 사회사업장에서 일할 것을 요구받는다. … 사회사업장의 모든 구성원은 재량에 따라 자기 노동의 이익을 사용할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런 공동체적 삶의 명확한 경제와 명백한 우수성은 노동자의 필요와 즐거움에 따른 노동자들 간의 자발적인 연합(association)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자본가들도 또한 연합에 들어가고 투자금에서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이자는 예산으로 보장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노동자인 한에서만 이윤에 참여할 수 있다.

사회사업장이 이런 원칙에 따라 일단 설립되면, 결과가 어떨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견직이나 면직 산업 같은 모든 대 산업에서, 인쇄기 같은 기계류에서 사회사업장은 사적 기업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 싸움이 오래가겠는가? 아니다. 사회사업장은 다른 산업을 능가할 이점이 있다. 더 비용이 안 드는 공동체적 삶의 결과와 모든 노동자가 예외 없이 훌륭하게 빨리 일을 해내는데 관심을 가지는 조직을 통한 이점이다. 싸움이 파괴적이겠는가? 아니다. 정부는 사회사업장의 생산품 가격이 너무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언제나 노력할 것이다. 오늘날 아주 부자가 덜 부유한 자와 경쟁을 한다면, 그런 불평등한 싸움의 결과는 재난이 될 것이다. 사적인 사람은 자기 개인의 이익만을 보기 때문이다. …

같은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의 공통된 이익으로부터 우리는 같은 산업의 모든 사업장의 공통된 이익을 추론할 수 있다.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산업의 연대를 수립해야만 한다. 따라서 각 산업이 낳은 이익을 떼어 비축하여 그것으로 국가가 예외적이고 예측 못한 상황으로 고통 받은 모든 사업에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게다가 우리가 제시하는 시스템에서는 위기가 드문 것이 될 것이다. 무엇이 위기를 오늘날 그렇게 자주 일으키는가? 실제로 살인적인 이익간의 경쟁, 정복당한 자들을 전장에 내버리지 않고는 어떤 승리자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경쟁이다. 경쟁은 모든 전쟁과 마찬가지로 승자의 전차에 노예들을 매단다. 경쟁을 파괴하는 동시에 우리는 경쟁이 낳은 악을 없앤다. 더 이상의 승리도 더 이상의 패배도 없다. …

우리가 사는 산업 세계에서 모든 과학의 발견은 재난이다. 첫째는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필요로 하는 노동자를 기계가 대체하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것들은 그런 권리와 권력을 갖지 못한 모든 이를 향해 기계를 사용할 권리와 능력을 가진 산업에 제공된 살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계”라는 게 경쟁 시스템에서 뭘 의미하는가? 독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연합과 연대의 새 시스템 속에서는 발명가에게 어떤 특허도 어떠한 개인적 착취도 없다. 발명가는 국가에게 보상받을 것이고 그의 발견은 모두를 위한 서비스에 배치될 것이다. 오늘날 전멸의 수단인 것이 보편적인 진보의 도구가 될 것이다. 오늘날 노동자를 굶주리게 하고 절망하게 하고 봉기로 몰아가는 것이 노동자의 과제를 더 가볍게 하고 지식과 행복의 삶을 영위할 충분한 여가를 만드는데 복무할 것이다. 한마디로 폭정을 관용했던 것이 우애의 승리를 원조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