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요즘 사람들의 표정에 꽉 찬 물음이다. 이 질문은 성찰일 수도 있고 초조함과 답답함을 뱉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이 되는 질문일 수도 있고 ‘길은 없다’는 탄식일 수도 있다. 꽉 막힌 골목으로 내몰려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낯빛들이 초췌해져간다. 엄청난 권력을 가진 이들은 ‘힘이 없다’는 엄살과 ‘너 때문’이란 회피로만 달아나고, 애써 방향을 잡으려는 이들에겐 무시와 모욕이 일상이다.

이런 때일수록 질문을 잘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가능성과 응원을 담은 질문이 있고 빗장을 건 질문이 있다. 후자의 질문은 질문의 형식을 취한 명령문일 때가 많다. 불행히도 한국의 권력층은 후자의 화법만을 구사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회의 큰 분기점이 있을 때마다 응당 던지는 질문이다. 97년 IMF 구제금융의 폭탄을 맞으면서 87년 민주화의 내용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돈이 최고이고 돈 자랑이 수치가 아니다’란 노골성에 대해, ‘공공성이고 사회적 연대고 필요 없다. 알아서 각자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교리’에 대해 질문했다. ‘같이 살 수는 없는 것인가?’란 질문은 모욕 받았고 ‘더 많은 돈을 위해서라면 민주주의고 인권이고 사치’라는 ‘교리’가 강화됐다.

그리고 질문이 봉쇄된 바다 위에서 ‘세월호’가 터졌다. 한국 사회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사회’로 뭔가 달라져야만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터져 나왔다. 돈에 대한 숭상의 교리가 우리 삶에 추상적인 위기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기를 언제든지 낳을 수 있다는 걸, 우리 눈으로 실시간 학습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질문 앞에 정치색과 입장을 떠나 모두가 몰두해야 할 책임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질문은 곧 오염됐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세력은 강자에 대한 저항을 무질서 또는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무시했다. 약자에 대한 폭력과 모욕을 자유나 권리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부추겼다. 심지어 약자의 고통과 존엄성에 대한 침해를 묘사하는 ‘모욕’이란 단어마저 제 것으로 뺏어갔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반세기 전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던졌다. 이 질문은 그가 암살당하기 몇 달 전에 ‘남부기독교지도자회의 연례총회’에서 한 연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때 그는 시민권 운동의 2막을 열겠다면서 경제 정의를 위한 빈민의 운동을 기획하고 있었다. 앞서 펼쳤던 시민권 운동보다 빈곤에 대한 공격이 훨씬 어렵다는 걸 그는 예감했다. 앞서의 투쟁은 백인과 흑인이 어느 식당에나 들어가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인종분리를 강제하는 법을 깨뜨렸다. 그런데 흑인에게는 식당에 들어가 햄버거를 사먹을 돈이 없었다. 돈 없는 흑인은 여전히 백인과 나란히 식사할 수 없었다. ‘대개의 사람들이 가난에 내팽개쳐있는 한 결코 그들은 자유로울 수 없다’고 킹은 선언했다. 이제 시작하려는 투쟁은 경제적 평등을 위한 것이었다. 킹 목사를 영웅으로 떠받들던 사람들은 이제 그를 빨갱이라 욕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그것을 빌미로 킹 목사와 동료들을 사찰했고 죽음의 위협이 가해졌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킹은 아랑곳없이 나아갔다. 정부가 가난한 이들을 적대시하며 인색하기 그지없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주거와 생활임금의 보장, 특히 기본소득의 보장이라 할 것을 ‘경제적 권리장전’의 내용으로 요구했다. 그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들이 담긴 것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연설이다. 가령 연설은 ‘빵바구니 운동’을 강조한다. 이 운동의 핵심은 기업이 지역사회에서 벌어들인 돈을 지역사회를 위해 쓰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킹 목사는 “나의 돈을 존중한다면, 나의 인격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즉 지역사회에 일자리를 창출하지도 하고 지역신문에 광고를 싣지도 않고 흑인금융기관에 자금을 예치하지도 않는 기업에겐 우리도 돈을 쓰지 않겠다는 거였다. 표적이 된 주요 낙농회사들은 지역 상점의 판매대에 자기 상품을 놓지도 않고 사지도 않는 것에 하나 둘씩 굴복했다. 운동의 대표자들과 기업이 마주앉아 계약서를 작성하게 됐다. 기업들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의 저축은행과 대출협회에 돈을 예치하고 흑인신문사에 광고를 게재하게 됐다. 그것은 “채워지지는 않고 끊임없이 고갈되기만 하는 국내에 있는 식민지”를 벗어나 “우리에게서 벌어들인 돈을 우리가 사는 곳에 환원하라”는 당연한 요구였다. 이 요구에 포함된 정책 계획들은 다양했다. 가령 세입자연합을 조직하여 낡은 건물의 재개발을 건설 이익이 아니라 실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추진하는 것, 세금을 이미 충분히 낸 사람들로서 정부 사업과 정부 관련 계약들을 대기업만이 아니라 소수집단의 작은 사업체들도 따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가 “진보적인 정책을 기획해야 한다.”면서 제시한 것이 기본소득의 보장이었다. “경제적 지위를 개인의 능력과 재능의 척도”로 여기는 것을 비판하면서 “그릇되고 차별적인 시장경제의 운영”을 빈곤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열등하고 무능하다고 낙인찍음으로써, 우리의 양심으로부터 해고시키는 일이 없어지기를 바란다.”며 기본소득을 보장한다면 “개인의 위엄이 번성할 것”이라 주창했다.

그런 구상에 담긴 것은 찔끔 보조금을 늘리고 생색용 개발사업을 유치하자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을 감옥에 안전하게 감금시켜 놓은 채 음식의 질만 조금 높여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킹 목사는 “정당한 자긍심”의 토대 위에서 경제적 권리가 추구돼야 함을 강조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이 “우리의 존엄과 가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라 했다. 그런 존엄성의 힘 위에서 “우리를 억압하는 가치관을 만들어내는 체제에 대해 끝까지 버티고 싸워야 한다.”고 했다.


‘빈민의 운동’은 수도 워싱턴으로의 행진을 계획했다. 정부 수도의 일상 기능을 흔들어 놓는 게 계획이었다. 백악관과 의회가 빈민의 사안을 진지하게 다룰 때까지 그 앞에서 농성하기로 했다. 빈민의 행진에 대한 참여를 촉구하는 것이 킹의 마지막 과업이었다. 워싱턴의 한 성당에서 그의 생애 마지막 연설이 있었다. 그 연설에서 그는 “인종주의, 빈곤, 그리고 전쟁”을 미국 사회의 3대 악이라고 불렀다. “빈곤에는 새로울 것이 전혀 없지만 빈곤을 제거할 기술과 자원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새로운 것”이라 했다. “진정한 문제는 우리에게 그럴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그 연설을 한 닷새 후 그는 살해당했다.

하지만 빈민의 행진은 취소되지 않았다. 3천여 명 이상이 전국에서 워싱턴으로 모였다. 흑인만의 운동이 아니라 존엄성의 가치에 동의하는 다양한 인종과 계급의 사람들이 모였다. 농성촌을 짓고 “부활의 도시”라 이름 지었다. 무자비한 비가 내리고 농성촌은 진창이 됐다. 언론과 정부는 그들을 철저히 무시했다. 절망과 혼란의 6주가 지나고 운동은 정리됐다. 빈민의 운동은 1968년 6월 19일 농성촌을 접었다. 누구는 철저한 ‘실패’라 평가했다. 또 누구는 ‘처음으로 다인종이 조직화된 경험을 맛봤다’고 했다. ‘우리들 자신의 해방 운동을 헤쳐 갈 만남을 경험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농성촌은 사라졌어도 참가자들은 영감을 받아 워싱턴을 떠났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에겐 몇 달이건, 몇 주건, 단지 하루건 그건 중요치 않다’고 했다. 그로부터 긴 세월이 흘렀다. 오늘 읽어 볼 인권문헌, ‘빈민 권리장전’은 2003년에 ‘빈민의 운동’을 재건한 사람들이 작성한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의 한 축은 ‘존엄과 안전 위원회’이다. ‘존엄’과 ‘안전’이 같이 가야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작명이다. ‘존엄 없는 안전’은 많다. 형사법과 공권력의 강화, ‘무전유죄 유전 무죄’의 차별적 사법체계 운영, 부자감세와 경제정책 등이 그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자기 돈 주고 사설경비 쓰고 폐쇄회로에 둘러싸인 특권지대에 사는 것도 물론 안전하다. 가난한 우리에게 안전이란 존엄과 같이 고려돼야 진짜 안전이 된다. 공권력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통제가 가능해야 안전하고, ‘경제적 권리장전’의 내용을 담은 것이어야 진짜 안전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하면, 혹은 가난해지면 당장 맞닥뜨리는 건 사회적 지원이 아니라 경찰이다. 해고되거나 공장이 폐쇄되거나 임대료 상승으로 쫓겨나거나 만성적 고용불안과 생계비 상승에 시달리거나 차별과 성폭력에 노출되거나 가난한 처지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빌미를 제공했고 너의 책임이란’ 힐난을, 항의와 저항에는 ‘손 좀 봐주라’는 공권력의 폭력을 대면해야 한다. 우리의 안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존엄과 안전 위원회’가 존엄과 안전의 권리선언을 기획한다고 한다. 선언을 만드는 것은 그냥 말을 짓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실천을 종합하는 것이다. 킹 목사의 말대로 “신조의 고혈압과 행동의 빈혈”에 걸리지 않도록 우린 계속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무리 오래 걸린다고 해도 말이다.


-----------------------------------------------------------------------

‘빈민의 운동’의 ‘빈민 권리장전’(The Bill of Rights for the Poor, Poor People's Campaign)

1. 모든 형태의 인간 억압은 제거돼야만 한다. 모든 사람, 특히 빈민에게는 제도적 장벽 없이 생명,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빈민이 빈곤을 벗어나려면,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 계급주의, 제국주의가 다뤄져야만 하고 제거돼야만 한다.

2. 빈민에게는 비인간적인 상태에 투입되는 공공 정책 의제에 대한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역사적으로 방임되고 경제적 분리와 배제가 있어왔던 곳에 ‘기회의 공동체’를 창설할 것을 요구한다. 중앙과 지역의 자원들은 지역사회에서 경제적 기회를 만드는 지역사회 집단들과 시도들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가장 없는 지역’에서 기회의 문을 열고 투자를 한 기업과 지역사회 집단 간 협력이 장려되고 보상받아야 한다. 기업의 탐욕스런 이익보다는 궁핍한 사람들의 이익을 우위에 두는 전국적이며 지역적인 차원에서의 포괄적인 경제정책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기업을 규제해야만 하고 일자리의 해외이전을 끝내야 한다. 공공의 의견 청취 없이 공장과 기업 본부를 폐쇄하는 일을 금지하며 일자리 상실로 고통 겪는 사람들에 대한 보상과 재훈련, 대체 직업을 보장하는 법률이 통과돼야만 한다.

3. 미국에서 6명의 아동 중 1명은 빈곤의 피해자이다. 비-백인 아동 3명 중 1명은 가난 속에서 자란다. 모든 아동은 양질의 건강 보호, 교육, 주거에 접근하고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4. 모든 사람은 ‘법 앞에 동등한 보호’를 받아야 하며 빈민은 사법 체계의 부정의로부터 보호받아야만 한다. 빈민은 흔히 이 나라의 감옥 산업 단지 창고에 처박혀진다. 이것은 노예제의 21세기 버전이 됐다. 빈민은 적절한 변호와 평등한 사법을 보장받아야 한다. 빈민은 민사와 형사 법정에서 정의를 보장받아야 한다.

5. 빈민은 경찰 폭력의 형태로 국가가 지원하는 테러리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빈민은 학대받고 착취 받는 것과는 반대로 보호받고 대접받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지역에 대한 분명한 민간의 통제, 그리고 경찰의 남용과 비행을 다스릴 힘을 가진 시민의 심사위원회를 요구한다. 빈곤 지역에서 경찰과 지역사회에 근거한 집단들 간에 범죄와 폭력 철폐를 위한 지역사회 협력이 수립돼야 한다.

6. 빈민은 완전 고용, 그리고 빈곤선을 넘어서도록 하는 보장 소득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 우리는 일자리를 만들어낼 지역사회에 기반한 협동조합의 제휴에 대한 정부 투자를 요구한다. 실업이 집중된 지역이 있는 곳마다 일자리와 기회를 일으키는 집중된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7. 빈민은 기회의 불평등에 희생돼서는 안된다. 여성과 비-백인에게 동등하게 지불하라. 여성은 직장에서의 성적 괴롭힘과 폭력, 또한 가정폭력으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돼야만 한다.

8. 우리는 전 세계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과 힘을 믿는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장했듯이 “어느 곳에든 불의가 있다면 그것은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 우리는 미국의 외교 정책이 정의와 자유로 규정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신념에 뿌리를 둔 도덕적 권리 장전이다. 이 권리 장전의 이행은 “신 앞에,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와 정의를 가진, 나눌 수 없는 하나의 나라”로 우리를 더 가깝게 데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