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문헌읽기] 노동자의 불꽃 (조영래, 1977년)

류은숙

 
 
국정원의 선거 유린과 국정조사, NLL(북방한계선) 논란이 얽히고설켜 돌아가고 있다. 국가최고정보기관이 직원들에게 아이디를 돌려가며 댓글을 달게 했단 것도 놀라운데 제 기관의 명예를 위한답시고 할 말, 안할 말 죄다 뱉어내고 있으니 민주 국가의 기본에 분탕질이 아닐 수 없다. 위기를 모면하려는 쇼가 아니라 제대로 된 국정조사 해야 하는 것 당연하다. 그런데 그보다 오래됐고 절박성에 모자람 없는 쌍용차 국정조사와 24시간 인권에 대한 전쟁이 선포되고 있는 대한문의 상황은 어찌하겠단 말이 없다.

‘노동자’란 단어조차 껄끄럽게 여겨지는 까칠한 사회라서, 노동자의 요구는 ‘투박’하고 ‘과격’한 것으로 외면된다. 그런데 ‘세련’되고 ‘온건’한 것들이 지배적인데 왜 그 속엔 곪디 곪은 문제들의 처방전이 들어있지 않은 것일까? 부당하고 조작가능성이 짙은 ‘정리해고’에 ‘노동유연화’니 ‘구조조정’이니 ‘경영효율성’같은 말을 쓰면 ‘해고는 살인’이란 고통이 완화되는가? 자본가와 노동자란 관계는 껄끄럽지만 이 사회에서 대부분이 맺어야 하는 기본관계다. 이 관계조차 인정하길 거부하면서 ‘너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다’, ‘내가 널 고용한 게 아니고 단순 사용자일 뿐’이라 손사래 치는 댁들을 그럼 ‘가짜 자본가’라고 불러야 할까?

민주주의는 평등한 관계의 시민을 전제로 하고, 그 시민들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먹고사는 노동자이다. 이들 노동자가 시민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건 시민의 평등성에 대단한 문제가 생겼다는 적신호이고, 노동자란 단어에 경기를 일으킨다는 것은 노동자란 천대받는 신분의 따로 존재를 용인한다는 의미다. 민주주의를 국회의사당이나 청와대 지붕만 바라보는 곳에 놓고 관망하며 내가 일하며 사람과 직접 부딪치는 삶의 무대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가끔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설 수도 있겠지만 광장을 벗어나는 순간 삶의 무대엔 불빛이 없고 캄캄하다.

그 어둠 속에서 최근 서울구치소 수인번호 111번으로 불리게 된 노동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김정우, 쌍용자동차 노조의 지부장이다.

구속 전 마지막으로 본 그의 표정은 소풍 나온 아이 같았다. 시청광장에서 쌍용차 해고자들이 만든 자동차를 선보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없이 하이파이브를 청해왔고 나도 말없이 힘껏 손바닥을 마주쳐주었다. 세상에 하나 뿐인 차를 배경으로 무릎을 꼬고 머리를 돌려 젖히는 등 노동자들이 한껏 자세를 취했다. ‘우와! 정말 자동차 모델 같다. 광고 많이 봤나봐?’ 터지는 웃음 속에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가 노래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

위 사진:사진출처-민중언론 참세상

그와 동료들이 모처럼 웃어본 지 불과 이틀 만이었다. 노동자 잡으려고 부러 날 잡았는지, 6.10민주항쟁 26주년을 맞는 날 아침이었다.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도 그 건너편 재능 농성장도 박살이 났다. 이미 여러 차례 철거를 겪어 천막도 없고 길바닥에 몸뚱어리로 버티고 있을 뿐인데 그마저도 밀어버렸다. “쓰레기 치우라”는 폭언과 함께 사람의 몸으로 만든 분향소가 짓이겨졌고 저항하는 이들은 사지 들려 끌려갔다.

숱한 탄원과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김정우에게는 덜컥 구속영장이, 원세훈에게는 딸랑 불구속이 떨어졌다. 김정우는 부당한 정리해고의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비명에 간 24명의 죽음을 추모하는 노동자이고, 원세훈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해괴한 일들을 벌인 전직 국가최고정보기관의 수장이다. 이 사건이나 그 책임자는 안개에 싸인 국정조사 전망 속에서 ‘아직까지는’ 무사 항해 중이고, 배에 구멍 났다 소리치며 제 몸으로 물 퍼내던 이들은 패대기쳐졌다.

김정우에게 구속영장이 떨어졌다는 그 밤은 참 무더웠다. 겉은 끈적거리고 속도 답답하여 창문을 열고 자리라 맘먹었다. 그런데 웬걸, 발자국 소리·말다툼 소리·경적 소리…. 새벽이 되도록 도시의 소음은 잠들지 몰랐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어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걸어 잠그다 멈칫했다. “악취와 소음 속 비닐움막생활 참 처참하지. 그래도 포기 못해 우리가 이길 거니까”라던 김정우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이기려고 하는 구호는 “함께 살자”이고 그것을 위해 그는 41일을 굶었고, 그의 동료들은 171일을 송전탑 위에서 보냈다. 쌍용차 해고자들뿐 아니라 재능, 현대차 비정규직 등 길바닥 잠을 자온 사람들이 숱하다. 지금도 경찰의 괴롭힘 속에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거리에서 밤을 보낼 사람들, 도시의 소음과 경찰 폭력은 잠도 꿈도 앗아갔을 터, 낮에 본 그들의 퉁퉁 부은 얼굴이 떠올랐다. 신이 될 수 있다면, 고요하고 평화로운 밤과 잠의 신을 꿈꿀 것이다. 잠까지 빼앗는 지금의 정치는 참 무능하고 썩었다.

그렇게 한밤중에 서성이는 데 한 글귀가 눈에 꽂혔다.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인권변호사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조영래 변호사의 유고집 제목이었다. 그가 쓴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아주 나중에야 『전태일 평전』으로 알려진)이 워낙 강렬한 것이어서, 다른 글을 유심히 본 적은 없었다. “박해를 각오하고 발언할 수 있는 국민은 민주주의를 하기에 필요·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며 “요사이 얼마 동안의 우울한 일들에만 사로잡혀 지나치게 낙담할 것은 없다. 원래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 아닌가.”라고 토닥여준다. 하나 같이 요즘 우리 심정을 정말 잘 알고 쓴 글 같았다. 뒤적이다 보니 변론문과 칼럼만 있는 게 아니라 시도 있었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바로 이 시, “노동자의 불꽃”이다. ‘노동자의 어머니’인 이소선 어머니마저 잡혀가고, 노동자들의 처지가 몰릴 대로 몰린 지경에서 쓴 시라고 한다. 제목이나 문투나 오늘의 세련되고 온건한 기준으로 보면 참 투박하고 과격하다. 하지만 수 십 년의 시차가 난다는 게 별로 실감나지 않는다. 이 시의 구절마다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그대로 대입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청년들은 시급 5천원도 못 되는 시간제 일자리는 나쁜 일자리라 외치다 끌려가고, 소상인들은 포식의 끝을 모르는 재벌 때문에 골목귀퉁이에서 신음하고, 국정원 선거개입 논란을 보도조차 안하는 언론에 맞서 쫓겨난 언론인들이 동분서주하고, 강정부터 밀양까지 소위 국책사업에 절규하는데, 4대강 사업이나 부정축재와 세금도피자들의 뒤치다꺼리까지 우리가 떠안아야 하고 책임져야 할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침묵도 그렇거니와 불난집을 앞에 놓고 장판 밑에 숨겨놓은 제 돈 걱정만 하는듯한 야당의 태도 또한 역겹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시에서 느낀 현재성은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이 비슷해서만은 아니다. 그 현실을 묵인하지도 침묵하지도 않고 계속 맞서는 삶이 있다는 것이다. 이 시의 제목이 노동자의 ‘절망’이 아니라 노동자의 ‘불꽃’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도 실천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 식으로 노동자 전태일과 지식인 조영래의 구분 없이, 그리고 또 다른 구분을 앞세우지 않고도 “악에 대한 공통인식”으로 우린 만날 수 있다. 노동자들의 투박한 구호가 불편하더라도 그들이 내미는 하이파이브에 손 마주쳐 줄 박수의 내용은 다양할 수 있다.

숱한 시민들의 후원 속에 쌍용차 해고자들이 차를 만든 과정을 돌이켜본다. 우리가 해야 할 정치를 그 과정에 비춰 상상해본다. 우리는 그냥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료와 관계가 필요한 사람들이란 것, 삶의 무대에 불을 밝히기 위해 서로 대화해야하는 존재라는 것, 그런 관계에 대한 인정이 우리가 할 정치의 시작이란 걸 말이다. 일을 위해 가지런히 도구들을 정리해놓고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작업을 했다. 그렇게 차를 만드는 과정처럼 지금 수많은 현장에서 곳곳의 거리에서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멈춘 시동을 걸려고 맨손으로 힘 모아 미는 사람들이 있다. 국회도 언론도 법원도 대통령도 다 뛰어나와 같이 밀던가, 아니면 열쇠를 내줘야 한다. 우리의 삶에 시동을 걸게.

그러니 국정원 국정조사에 합의한 여야 정치인들은 노동자 시민들의 질문의 범위를 왜곡․축소하거나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왜곡과 축소는 질문에 아니, 대답한 것보다 못하며 진실의 공개를 가로막는다는 것, 침묵은 문제해결의 의지가 없는 오만임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 특히 오래전에 약속한 쌍용차 국정조사를 빼먹고 갈 생각 마시라.

이 시의 출처는 다음과 같고, 부분 발췌했다. 조영래 변호사를 추모하는 모임 엮음, 『조영래변호사 남긴 글 모음,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창작과비평사, 1991, 286-301쪽

노동자의 불꽃

노동자의 불꽃
- 아아, 전태일



처절한 불길을 보라
저기서 노동자의
아픔이 탄다
저기서 노동자의 오랜
억압과 죽음이 탄다
아아, 노예의 호적은 불살라지고
끝없는 망설임도 마침내 끊겨버린
저기서
노동자의 의지가
노동자의 저항이
노동자의 자유가
불타오른다
……
하늘 땅 열리실 제 삼라만상 생겨나니
모든 생명 귀한 중에 사람이 으뜸이라
한덩어리 지구 위에 한핏줄 타고나니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네
사람이 사람을 학대할 권리 없고
사람이 사람을 억누를 수 절대 없어
이를 두고 예로부터 자유‧평등 일컬었네
땀흘려 일하는 자 일한 몫을 거두고
뜻밖에 불행한 자 모두 도와 함께 사니
인류의 오랜 꿈인 정의‧사랑 참뜻일세

어둡다, 이 땅 위의 오늘 현실 바라보라
민주주의 파괴되니 약자 인권 짓밟히고
자유‧평등‧정의‧사랑 공염불로 타락하네
천하는 천하의 것 1인의 것 아니건만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제멋대로 결정하니
법률도 제멋대로 재판도 제멋대로
언론자유 탄압하고 학원 교회 억누르며
약한 자를 대변하면 반공법에 묶어가고
강자 횡포 비판하면 긴급조치 묶어가니
진리는 철창 속에 거짓은 옥좌 위에
거짓이 진리보고 “뉘우치라” 조롱하고
총칼이 양심에게 침묵을 강요하니
온세상이 캄캄한 어둠 속에 휩싸이고
어용야당 어용노조 어용신문 어용방송
어용종교 어용예술 어용학자 어용교수
제세상 만난 듯이 온갖 잡귀 판을 치며
이 속에서 약육강식 온갖 비극 일어난다

권력은 돈을 낳고 돈은 다시 권력 낳아
힘센 자와 살찐 자가 부패 속에 총화단결
역대정권 경제정책 한마디로 표현하면
서민대중 고혈 빠는 특권경제정책이라
……
특혜받는 대재벌들 반사회적 거동 보소
신문에 이름 내는 성금낼 땐 후하면서
노동자 임금에는 어찌 그리 박하던가
……
수단방법 안 가리고 부당폭리 추구하니
아이스크림 화장품에 호텔까지 손을 뻗쳐
중소기업 목조르고 자원낭비 조장하기
은행이란 은행돈은 모조리 제 차지라
싼 이자로 융자받아 비싼 이자 사채놀이
국내시장 독점하여 초과이윤 거저 먹기
중소기업 해외시장 덤핑으로 가로채기
부동산에 투자하여 집값 땅값 올려놓기
하청기업 농락하여 도산시켜 잡아먹기
수입하며 외화도피 수출하며 외화도피
밤낮으로 생각느니 탈세와 외화도피
……
형제자매 노동자여 억울하다 우리 실정
멸시와 핍박 아래 기계취급 당해가며
노예처럼 혹사받고 병들어가면서도
경제정책 모든 실패 우리에게만 전가되니
수출상품 경쟁력도 저임금 바탕 위에
물가인상 억제책도 저임금 바탕 위에
불경기 땐 대량해고 실업자 신세 되고
호경기 땐 철야작업 삭신이 병이 드네
……
민중의 몽둥이 경찰권력 거동 보소
노동자들 몇이 모여 수군수군했다 하면
사냥개 냄새맡듯 정보형사 떠다니고
임금인상 요구하며 농성 한번 했다 하면
개밥에 보리알 튀듯 기동경찰 끼여드네
어느샌가 나타나는 사복 입은 형사님네
밥 먹고 사람 패는 연습만 하였던지
유도 당수 태권도로 노동자를 후려치니
가뜩이나 중노동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이
골수에 병이 들어 폐인이 되어가네
……
노동자를 위한 법률 그 얼마나 된다기에
그나마 단 하나도 지키지 않으면서
노동자 잡는 법은 수도 없이 만들고서
꼬투리만 있다 하면 제까닥 묶어가니
이 나라의 법질서는 누굴 위해 있는 건가
돈 없고 배경 없는 우리네 노동자들
기업주 하나만도 상대하기 힘겨운데
국민의 혈세로 유지되는 국가권력
기업주들 편들어서 노동운동 억누르니
이 정권은 과연 누굴 위한 정권인가
……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하기 마련이고
참새가 죽을 때도 짹소리는 하고 가니
하물며 만물영장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토록 짓밟히고 어찌 조용할까보냐
70년도 11월에 평화시장 앞길에서
노동자의 불꽃 하나 폭탄처럼 튀어나와
“노동자도 사람이다. 기계취급 하지 말라”
땅속에 울부짓는 전태일의 핏소리가
억눌린 억만 가슴 뒤흔들고 울려퍼져
노동자의 생존투쟁 곳곳에서 일어나니
이 위대한 역사흐름 그 무엇이 막을소냐
……
우리를 거부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자!
우리 생존 거부하는 저임금을 거부하자!
젊디젊은 우리 목숨 죽음으로 몰아넣는
장시간 중노동과 살인환경 거부하자!
가진 자의 오만과 횡포를 거부하고
노예사상 강요하는 저들 손길 뿌리치자!
노동자의 인간다운 존엄성을 파괴하는
욕설들과 폭행들과 인권유린 거부하자!
노동운동 탄압하는 업주횡포 경찰폭력
해고와 체포 앞에 굴복하길 거부하자!
노동자를 짓밟는 특권경제 거부하고
외국자본, 대재벌의 횡포를 거부하자!
우리를 얽어매는 모든 법률 모든 조치
모든 거짓 모든 위선 모든 구호 모든 선전
그 앞에서 무릎꿇는 노예 되길 거부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