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주> 미군기지와 연관된 주권문제, 범죄와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대량의 고엽제를 파묻었다는 증언이 나와 파문이 일었다. 어느 나라 못지않게 많은 미군기지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지는 무엇일까? 2007년 에콰도르에서 외국 군사기지의 철폐를 위한 국제회의가 처음으로 열렸다. 이 회의에서 나온 문건과 연설문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관련 내용은 다음 주소에서 볼 수 있다.
http://www.insurgentamerican.net/download/LalitNoBaseReport.pdf


2007년 에콰도르에서 외국 군사기지의 철폐를 위한 국제회의가 처음으로 열렸다. 40여 국가에서 단체 대표들 4백여 명이 넘게 모였다. 이 회의가 열린 시기는 흥미진진하게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라틴 아메리카 순회를 하는 중이었다. 부시가 가는 곳마다 반대시위가 벌어졌다. 회의가 열린 에콰도르에서도 흥미로운 때였다. 새롭게 좌파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Rapahel Correa)가 에콰도르 만타의 미군기지 문제를 놓고 우파 의회와 대결하고 있었다. 회의 중에는 안데스 산맥으로부터 1999년부터 악명 높은 미군기지가 있었던 해안으로 향하는 행렬이 있었다. 기지로의 행진과 기지 폐쇄를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고 그것은 기지가 생긴 이후 8년 동안의 시위 중 최고조에 달했다. 에콰도르 주권에 대한 침해와 콜롬비아에 대한 개입을 부인하고 있는 그 기지는 극심한 고통의 원인을 제공했다. 가령 농민은 땅을 빼앗겼고 어민은 생계를 도모할 자유를 빼앗겼다. 지역 사회는 성매매와 강간 등 군사 기지로 인해 지역사회를 괴롭히는 사회악뿐만 아니라 소음 공해로 고통 받고 있다. 푸에르토리코의 영웅적 투쟁의 결과로 폐쇄된 푸에르토리코 비에케스 기지의 일부 기능이 에콰도르의 만타로 옮겨왔다. 이 사례는 단지 조금씩 기지를 문 닫게 하는 아니라 기지를 폐쇄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조셉 거슨은 <미군기지를 철수해야 하는 열 가지 이유>라는 흥미로운 리플렛을 소개했고, 린시 콜린은 <디에고 가르시아>에 대해 연설했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미국의 외국 군사 기지를 철수해야 하는 열 가지 이유(조셉 거슨, 미국친우봉사회 프로그램국장)

* 군사기지는 전쟁 가능성을 높인다
미국은 전례 없는 시설인 700개 이상의 해외기지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이들 기지는 대이라크 전쟁, 1998년 세르비아전, 미국의 파나마 침공, 그리고 콜롬비아와 필리핀 내의 현행 전쟁에 필수적이 됐다. 일본과 남한에 있는 200개 이상의 미군기지는 북한과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미래의 전쟁 가능성을 높인다.

* 군사기지는 핵 공격의 발사점을 제공한다
많은 방식으로, 미국의 선제 핵공격 전략은 벨기에, 영국, 그리스, 독일, 네덜란드, 터키에 있는 핵무기의 전진 배치로 인해 가능해졌다. 영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있는 미국의 통신기지들은 핵전쟁을 개시할 명령을 통신하고 핵 및 기타의 하이테크 무기들을 조준하는데 필수적이다.

* 군사기지는 국가들의 주권을 해친다
하와이,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 쿠바는 중국, 아시아의 그 밖의 곳, 라틴아메리카의 시장을 점령하는데 필요한 기지로 이상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미국에게 침공당하고 점령당했다. 기지에 대한 미국의 계속적인 접근을 보장하기 위해 식민지와 예속 정부들이 강요되거나 만들어졌다. 그들이 패배한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일본, 독일, 세르비아 등 국가들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군사 기지를 “유치”하도록 미국의 강요를 받았다. 이런 전통에 부합하여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 군사 기지를 “영구화”하는 데 연간 10억 달러를 쓰고 있다.

* 군사기지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해친다
미국은 군사기지에 대한 접근권을 얻거나 보존하기 위해 독재자들과 억압적인 정부들을 지지하거나 강요해왔다. 전략적 위치의 공군 및 해군 기지를 보존하기 위해 필리핀에서 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 대통령은 잔인한 마르코스 독재를 10여년 이상 지지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 미국은 석유자원에 대한 특권적 접근과 군사기지를 지키기 위해 억압적 왕정을 사수해왔다. 미군기지의 존재는 하와이와 괌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문화적 대량학살에 기여하고 있다.

* 많은 기지는 강탈한 재산 위에 세워진다
주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미군기지본부를 만들기 위해 최근 남한의 대추리를 불도저로 밀어버린 일은 독특한 일이 아니었다. 군사기지들은 강탈한 사유재산, 즉 기지유치국가가 그 시민으로 하여금 강제로 미국에 “대여”하도록 만든 땅이나 공유재산 위에 건설된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디에고 가르시아(Diego Garcia)이다. 여기서는 2마일 길이의 활주로와 거대한 해군 항구, 기 계획된 미국 무기를 위해 그 섬의 전 주민이 추방됐다.

* 기지는 성폭력의 원천이다
“휴식과 기분전환”을 위해 기지 근처의 마을을 이용하는 것은 지역 아동과 여성, 특히 성 노동자를 성희롱, 강간, 구타 및 살인에 취약하게 만든다. 성폭력의 수준은 기지를 유치한 국가의 권력에 상대적일 수 있다. 2006년 필리핀 여성을 강간한 해군들은 필리핀의 방문국협정(Visiting Forces Agreement)으로 보호받았다. 대조적으로, 석유가 풍부한 걸프 국가들과 미국 사이의 비교할만한 협정에서는 미군에 의한 성폭력으로부터 지역 여성을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보호했다.

* 비번인 군인은 많은 범죄를 저지른다
대부분의 군인은 법을 준수하지만 외국에서 소원해지고 술에 취한 군인들은 과도한 수의 범죄를 저지른다. 더 나쁜 것은, 범죄를 저지른 그들이 미국 군대의 구성원에 대하여 미국에게 우선적인 관할권을 부여하는 불평등 협정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것이다. 남한에서 미군 탱크에 치여 두 명의 소녀가 살해당한 것은 큰 상처였다. 아무도 책임을 갖지 않았다. 2007년 필리핀에서는 미 해군이 필리핀 법정에서 강간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미국은 고위급 수준에서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여 항소 진행과정에 그를 (판사가 그를 보낸 필리핀 감옥이 아니라) 미 대사관으로 이동시켰다.

* 기지는 환경오염을 야기한다
2000년, 미 국무부장관 올브라이트는 필리핀의 미군기지에서 야기된 “심각한 공공적 환경문제”의 유산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녀는 치명적인 잔재를 정화할 법적 책임은 미국에 전혀 없다는 점을 되풀이했다. 미 국방부는 유럽에서 자국의 기지가 심각한 환경오염을 야기한 적어도 70개의 군사 기지를 확인했다. 한 지독한 사례에서는 미군이 남한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에 치명적인 포름알데히드를 직접 방류한 것이 발견됐다.

* 기지는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의 위험을 가져온다
군사적 사고는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할 수 있다. 가장 위험한 사고는 핵무기와 관련된다. 오키나와 해변에서 80마일 떨어진 미 항공모함 타이콘데로가(Ticonderoga)에서 수소 폭탄을 탑재한 전투기가 바다 속 2마일 아래로 이탈했다. 이보다 흔한 사고는 낮은 고도로 날던 해군 조종사가 이탈리아에서 스키 리프트를 받아서 20명이 사망한 일 같은 경우다. 훈련 표적을 벗어난 폭탄은 푸에르토리코의 비에케스 섬에서 민간인을 살해하고 남한의 매향리에서 가옥을 파괴한다. 오키나와의 킨에서 사람들의 가옥과 재산을 공격한 것은 실탄 훈련에서 사용돼 엇나간 총알과 탄피이다.

* 군사비는 인간의 필요와 기회를 위태롭게 한다
미 국방부는 외국 군사기지에 수백억 달러를 써댄다. 전투력 비용에 추가하여 미군 가족을 위한 주택, 미군과 그 가족이 특별 할인을 누리는 물자배급소, 천연 골프장이 지출비용에 포함된다. 반면에 미국과 미군기지 유치 국가 사람들의 인간적 필요는 충족되지 않는다. 일본과 여타 기지 유치 국가들에서는 분노가 쌓이고 있다. 자신들의 세금은 침입한 군사기지와 그들의 호화 시설에 지불하기 위해 쓰이는 반면 지역민들은 적절한 주거와 사회적 서비스 없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디에고 가르시아(Diego Garcia): 영감을 주는 교훈(린시 콜린, 모리셔스의 정당 Lalit의 일원)

아름다운 말굽 모양으로 형성된 인도양 산호섬에 거대한 군사기지가 위치한 디에고 가르시아의 역사는 어떤 종류의 투쟁이 제국주의와 맞서 이길 수 있고 어떤 종류가 그럴 수 없고 그러지 않은지를 말해주는 고전적 이야기다.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는 어디에서 왔는가?

영국이 세계적 식민제국으로부터 물러남에 따라 그것은 미국이라는 새로운 제국으로 “팔렸다.” 영국은 1960년대에 뻔뻔한 불법적 독립조건으로 모리셔스(Mauritius, 아프리카 동쪽의 섬나라)에 독립을 양도하면서, 모리셔스를 조각냈다. 조각낸 중의 일부인 차고스 군도에 디에고 가르시아가 포함되는데, 이것은 영국의 해외영토(BIOT)라 불리는 허구 국가를 구성했다. 그 목적은 페르시아만, 아프리카, 중동, 그리고 인도 하부 대륙을 통제하기 위한 군사기지를 미국에게 “주기 위한” 것이었다. 군사기지와 영토의 분절 계획은 또 다른 개념도 포함했다. 그것은 디에고 가르시아를 포함한 차고스 군도에는 인구가 전혀 없으리라는 거였다. 의도적인 ‘제노사이드(집단살해 등을 일컫는 말)’를 명백하게 무시하는 이런 기묘한 문법에 주목하라.

따라서 그 시작부터 세 가지 문제가 유기적으로 얽혔다. (i) 거주자들이 강제로 섬에서 제거되고 그들의 역사는 부인될 것, (ii) 한 국가가 불법적으로 분절됐다는 것, 심지어 국경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이 신헌법이 부여되고 허구의 국가가 창조됐다. 그 결과 (iii) 현존하는 거주민의 정치적 압력이 없는 곳에 외따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군사기지가 자리 잡을 수 있었다.

40년의 투쟁: 성취와 어려움들

모리셔스에서의 투쟁은 처음 15년 동안은 국제적 차원의 투쟁과는 완전히 분리돼있었다.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벌어진 일을 모리셔스 사람들에게조차 알게 하기 어려웠다. 반면에 모리셔스 정부는 외교적 차원에서 유엔, 아프리카통일기구, 비동맹운동에서 “주권 문제”에 대해 형식적인 성격의 운동(무수한 결의안을 채택하는)을 전개했다. 따라서 최고급 정치인들과 유엔 대표자들만이 디에고 가르시아에 대해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외국의 사람들에게 삼중의 범죄(강제 퇴거, 주권, 군사 점령)에 대해 말하면 그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활동가들, 풀뿌리조직들, 좌파 정당들, 여성조직들 모두 우리가 얘기를 지어냈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우스운 사례를 언급할 가치가 있다. 1981년, 우리는 디에고 가르시아 여성과의 연대를 요청하는 전보를 쳤다. 우리는 미국의 아주 큰 여성 조직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그 조직은 디에고 가르시아를 무슨 일부다처제의 종류로 이해했다. 그 조직은 “누가 디에고 가르시아죠? 그게 여성 문제인지 확인해주세요.”라고 답변해왔다.

보통의 영국 시민 또는 미국 시민들은 전적으로 우리를 믿지 않았다. 끔찍한 “대량 납치”와 국가의 분단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그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동안 모리셔스에서의 시위는 주권, 배상, 미군 기지의 폐쇄라는 세 가지 문제의 조합으로 전 방향에서 거대한 성취를 이끌었다. 승리는 두 가지 형태였다. (i) 군사적 점령과 기지의 폭로, (ii) 불법적 분단의 폭로, (iii) 쫓겨난 사람들에 대한 협상과 보상의 성취, 영국의 보상금을 다루는 선출된 신탁자금위의 구성.

그 후 문제는 1998년까지 잠복해 있다가 8개의 모리셔스 조직들이 함께 공동 대응을 시작하게 됐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사건을 가져가도록 유엔총회에서 행동을 취하라는 압력이 모리셔스 정부에 가해졌고, 기지 폐쇄와 주민 귀환의 권리를 요구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렇게 투쟁이 부활하는 와중에, 영국의 한 로펌이 사건을 발견하여 영국 법원에 귀환권을 요구했다. 영국 고등법원에서 2000년에 큰 승리를 거두었다. 법원은 귀환권을 인정했다. 영국은 그 판결로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영국 정부는 디에고 가르시아 섬 출신과 기타 섬 출신의 차고스인을 금지하는 여왕의 칙령을 의회에서 즉각 통과시켰다. “여왕”에 의한 포고들은 사실상 토니 블레어의 것이고 영국 대법원을 겨냥한 것이었다. 차고스인은 이겼지만 영국 정부는 항소했고 우리는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현재 차고스 군도의 지도력은 법적 절차가 만들어내는 모순을 감당할 수가 없다. 차고스인은 법정에서의 제소권과 법적 원조를 구하기 위해 자신들이 “영국민”이었다는 데 호소해야만 했다. 그리고 영국은 차고스인을 이민을 통해 통합하는 과정을 시작했다. 당연히 많은 차고스인은 여왕의 사진을 갖고 있고 영국 국기를 흔들었고 시위에서도 그랬다. 최근에는 디에고 가르시아가 아니라 “여타 차고스 군도”에만 정착하겠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것은 기지의 “영구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국의 주권과 기지의 영구화를 수용함으로써 전체 운동은 약화됐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정치적인 진전도 있었다. 법정에서 다뤄짐으로써 디에고 가르시아 문제와 강제이주문제, 그런 방식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하는 데도 사용됐다는 것이 비밀에 묻어두려는 정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영국 시민에게 처음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런 과정은 ‘국가 훔치기’라는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더 고조됐다.

그 사이, 국내에서의 정치적 압력으로 모리셔스 정부는 2004년, 영국 정부를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겠다고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위협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당시 총리는 모리셔스를 영연방에서 탈퇴시키겠다고 했다. 영국은 비영연방 국가들과의 분쟁만을 국제사법재판소의 관할사항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런 조치는 필수적이었다. 곧 토니 블레어는 유엔 대표를 보내서 영국이 수용하는 국제사법재판소의 관할사항을 바꿔버렸다. 이제 영국은 이전에 영연방이었던 국가들과 관련된 분쟁사항에 대해서도 국제사법재판소의 관할권을 수용하길 거부하고 있다.

상황은 언제나 변화하고 있다. 항상 싸워왔고 투쟁은 여전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디에고 가르시아의 기지를 폐쇄하려는 희망이 모든 기지에 맞선 세계적 운동의 운명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