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장소를 찾아서:

지구화라는 은유와 공간 그리고 젠더화와 장소

 

(<장소와 인권> 1: 2012.03.29 김영옥)

 

1. 장소-만들기의 정치학

 

2009119일은 한국사회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기념일이 될 것인가? 용산의 현장을 하루하루 기록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장호경 감독)의 매 장면 오른쪽 하단에는 119일을 기점으로 흘러간 날들이 숫자로 적혀있다. 우리가 무심하게 달력에서 확인하는 많은 기념일들. 이 날들은 역사의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던 벤야민의 말이 떠오른다. 용산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용산참사만을 기억한다는 것인가? 당시 많은 논자들이 시청 앞 광장과 용산참사의 현장을 비교하며 깊은 패배감과 자괴감을 드러냈다. 왜 시청 앞 촛불집회에는 가는 사람들이 용산에는 오지 않는가, 라는 질문은 먹물처럼 진하고 어두웠다.

2012년 현재 용산관련 다큐를 일종의 순환고리처럼, 혹은 모자이크처럼 연결시켜 보면서 그런 식의 패배감이나 자괴감은 용산을 만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2009119일 이후 용산이라는 장소를 함께 만들어나간 사람들이 사실 적지 않았고 또한 다양했으며, 용산이라는 장소는 단지 용산참사로만 의미화될 수 있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용산관련 다큐를 만든 사람들은 상호 참조적 미디어 활동가/성을 구성하며 용산 철거/민 문제 혹은 상황을 단지 재현할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기존의 주민 및 다른 문화예술인들 그리고 철거반대, -빈곤 활동가들과 함께 나름의 방식으로 생활하며 용산(철거)4구의 장소/성을 만들어 나갔다. 용산으로 간 이 미디어 활동가들은 이미 대추리에서 장소 밀착 활동의 경험을 쌓았고, 그 경험이 용산에서 더욱 힘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용산의 장소/성을 사유하기 - 이것은 용산이라는 지역의 현재를 역사성 속에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용산에서는 철거민 참사가 일어났고, 오랜 시간 성판매를 해왔던 집창촌 여성들의 일상과 일이 새겨있고,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거나 내리던 무수한 군인들이 체현하는 한국군사문화의 강한 기류가 흐른다. 영화 <화차>가 보여주듯이 용산역은 신자유시대 화폐경제체제에 순조롭게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의 숨가쁜 도주와 스쳐 지나감 - transit - 의 지구지역적 차원의 맥락을 체현한다. 용산은 장소이면서 공간인 지역의 정체성을 사유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용산 관련 다큐들을 보면서 새삼 확인하게 되는 몇몇 사실들은 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체성이 장소/성과 공간/성의 중첩 속에서 구성됨을 확인시켜준다. 서로 이웃하면서 식당 등 가게를 운영하던 사람들은 철거라는 폭력적 상황이 일어나기 전까지 관계-없는 사람들로 살아왔다. 2009119일 이후로 그들은 서로를 동네 주민으로 인식하면서 일종의 소속감(belonging)을 얻기 시작한다. 어떤 장소에 귀속된다고 하는 소속감은 상호주관적인 느낌이다. 그 장소에 애착을(attached) 느끼는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는 그 장소에 뚜렷한 문화적 특성, 즉 장소성을 부여한다. 장소에 부착되었다고 느끼는 이 감정이야말로 한 사람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할 뿐 아니라, 공동체적 비전하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주요 동력이다. 주민등록이라는 형식적인 절차가 저절로 주민의 체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주민의 체감이 없는 곳에서 지역운동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라는 슬로건이 전국에 뿌려진다고 해도 마실갈 수 있는곳인 마을은 기획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대추리, 용산, 포이동, 두리반, 명동의 마리 등 일련의 장소 투쟁이 우리에게 가슴 아프게 일깨우는 사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어떤 곳이 (어떤 지역이) 박탈의 위협과 그것을 막으려는 투쟁을 통해 비로소 장소가 된다는 것이다. ‘시골의 경우는 어지 몰라도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경우 특정 지역에서 장소/공간-사회적 정체성을 체감하며 사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한 집(장소)에서도 십대 자녀는 인터넷 공간에서, 부모는 부엌이나 침실 등 젠더화된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산다. (특히 도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가정과 일터에서 심리적 소속감을 느낀다. 그러나 실업률이 높아지고 이전과는 다른 가구형태들이 늘어가는 현 상태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애착되는 특정 장소가 없는 채 거리에서, 혹은 쇼핑몰이나 공항 같은 비-장소에서 익명성으로 흐른다’. 장소/공간-사회적 관계성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 생애사라는 관점에서의 서사를 쓸 수 없다. 시간이 고이지 않는 곳에서 단편들로 구성되는 삶 사이로 불안이 번지고 사람들은 기꺼이 우울증 환자의 정체성에 손을 내민다.

 

2. 은유로서의 지구(적인 것), 지역(적인 것)을 너머서: 지구지역적인 것

 

- 지구인, 지역인, 이동인

세계화/지구화는 우리가 지난 10 여 년간 가장 많이 들어온 말 중의 하나다. 그리고 지구화와 이동성은 거의 같은 말로 사용된다. 2006UN의 이주보고 (Report on Migration)에 따르면 세계 이주자들의 수는 1990-2005년까지 16600만 명에서 19100만 명으로 증가했으며, 이 수치는 세계인구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주/이동은 주로 이미지, 통신, 기술, 소비상품, 패션 아이템 등을 통해 이루어지면서 지구 위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질적 장소들에서 동질적 (소비)욕망을 생산해낸다. 인구 이동의 물리적 지도 뿐 아니라 심리적 지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심지어 가장 고된 생산라인조차도 지역인들을 이동인으로 만든다. 방글라데시 촌락의 주민들을 직물공장으로 이동하게 하는 그 희망은 중국 농민들을 환태평양 지역으로, 브라질 농민들을 상파울루로 가게 하는 것과 동일한 동력이다. (하름 데 블레이, <장소의 힘: 지리학, 운명, 세계화의 울퉁불퉁한 광경>) 국가는 지역별로 갈라지고 세계는 불균등 발전에 따라 분리된다. 이러한 분리 너머로 하나의 지구라는 공간적 은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초국적 자본과 (소비)욕망의 힘이다. 이질적 장소에서 동시적으로 생산되는 동질적 (소비)욕망은 세계화를 이동성과 동일한 의미에서 이해하는 사고방식과 함께 지구화의 울퉁불퉁한 광경(Globalization's Rough Landscape)’을 은폐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저임금 국가의 노동착취적인 직물산업이 그곳 여성들에게 사회 환경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인지, 아니면 착취 기업의 횡포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지 않다. 거칠게 말해서 지구화의 시대에 사람들은 지구인이거나 지역인이거나 이동인으로 산다. 이동인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며 이중에서도 초국적 이주자야말로 변화의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우대받는 비자를 들고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지구인, 즉 엘리트 유목민들은 유목민이라는 용어가 한때 불러일으켰던 환상과는 달리, 어떠한 변화에도 기여함이 없이 오히려 지역/성의 황폐화에 기여한다. (컨설턴트들이 그러하듯) 이들은 어떤 실질적인 변화나 변혁에도 관심이 없으며 따라서 그 어떤 부정적인 변화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 장소와 공간

 

사전적 정의:

place: 구체적인 장소나 자리 : There's no place to park here. 주차장에 흰 선으로 구획을 정해놓은 주차 자리가 없다.

space: 어떤 물건이 이미 차지하고 있거나 새로운 물건을 놓을 공간’ : There's no space to park here. 막연하게, 차를 세울만한 공간이 없다. (동네 골목에 주차할 곳이 없을 때)

 

 

장소

공간

the local

the global

place-based

spatial

referential knowledge

off-ground, abstract knowledge

Henri Lefebvre

place

space

representational space (사실적인 공간)

representation of space (공간의 재현)

product and work

product, the geographical equivalent of the commodity

time and space

timelessness (Benjamin -empty, homogeneous time)

continue to be consigned to the margins, as a subcategory of the spatial

acquire a new respectability with the reconfiguration of global economies

Laura Chernaik

network

system

Arturo Escobar

noncapitalism

capitalism

postdevelopment

development

 

지구적인 것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는 지역적인 것에 직면해:

1) ‘지구지역적인 것the glocal' / ‘지구지역성glocality’ 이라는 개념을 통해 돌파구를 찾거나 (Dirlik)

(‘지구적인 것의 지역화’ - 글로벌 자본주의: 초국적 기업들의 거래 대부분은 장소들에서, 장소에 기반을 둔 우연성과 고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 지역적인 것의 지구화’.),

2) ‘탈발전이라는 개념을 통해 지역적인 것을 지구적인 것으로부터 방어하기(Escobar)

 

지구지역적인 것은 그러나 물론 동일하지 않다. 따라서 각각의 장소에 기반을 둔 사고나 상상력에서 무엇이 독특한지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지구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이 서로 동등하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이러한 고려 속에서 새로운 권력 구조, 즉 지구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이 서로를 질식시키지 않는 구조를 창조하기 위해 장소를 공간에 투사하여아래로부터 공간을 재조직하는 것이 요청된다. 이때 장소를 현재 자본과 근대성의 영역인 공간에 투사하지 않고서는 자연과 사회를 재전유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 글로벌시티와 장소

지구화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경제주의적 관점은 글로벌 시티를 거점으로 삼음으로써 초국적 기업의 지배와 그에 공모하는 국민국가의 역할을 어느 정도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국민국가의 특정한 레짐은 초국적인 경제행위자, 자본가 행위자들을 통해 압박되는 것으로 재현된다.) 공간적 스케일과 담론적 실천 사이의 이러한 상호작용은 결과적으로 현재의 세계와 지역적 변화에 대한 방관적 태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동안 지구/적인 것은 초국적 자본을 중심으로 한 거대 구조를 가리키는 공간으로 은유화되었고, 그에 반해 지역/적인 것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자본의 힘에 대항하는 행위자를 강조해왔다. 지구/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을 이러한 이분법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방식은 그러나 지역/적인 것에 대한 국소적 관점으로 수렴되기 쉽다. 예를 들어 하비는 지역에서 국소적으로발생하는 대항 행위들은 지구적 차원의 구조는 해체하지 못한 채 지역적 행위성의 자기만족에 빠질 위험이 많다고 경고한다. 이렇게 볼 때 지역/성을 지구적 종족 경관(global ethnoscape)’의 네트워크로 파악하는 방식은 (자연주의적, 혹은 본질주의적으로 이해된) 지역의 경계를 질문하면서 장소에 대한 구성주의적 인식을 유도한다.

장소를 권력관계들의 결합에 따라 구성되는 것으로 보는 재현 방식은 지역의 현재적 상태뿐 아니라 미래의 형성에도 적용됨으로써 정치적 함의를 띠게 된다. 이러한 시각을 통해 지역은 단일한 주관성의 저장소가 아닌 의미와 권력을 둘러싼 논쟁의 장(site)’이 된다.(마이클 피터 스미스, <초국적 도시 이론>) 이러한 관점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그동안 단일한 행위자로 상정되었던 초국적 자본 또한 지구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행위자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자연주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권력관계들의 작동방식에 주목하는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장소에 주목하면서 다양한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초국적 변환을 드러내는 것은 기존의 경제주의적 지구화 논의를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즉 정치경제적 접근으로 보편화되는 역사적 맥락에 특수 지역의 민속지적 분석 및 해석을 통합시키는 방식은 인간의 실천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변형되는 문화적 요소들과 정치경제 양자를 모두 역사화함으로써 특정 시공간에서 작동하는 역학들의 이해로 이끈다.

 

특정 지역의 문화와 거주자들의 사고체계를 파악하는데 몰두하는 민속지는 지역/토착민들이 기거하는 공간으로서의 장소를 공동체의 본성이 기원하는 정체된 속성으로 본질화하는 위험에 지기 쉽다. ‘뿌리내린다’, ‘뿌리뽑힌다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과 지역, 장소를 연결시키는 사고방식은 지극히 일상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집/땅을 지키는 여자들과 연결됨으로써 장소의 여성화 현상을 강화한다. 장소와 그 장소에 거주하는 지역민들의 공동체를 이런 식으로 본질화, 자연화, 여성화 하는 현상은 지구화 시대에 지구/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의 이분법을 영구히 만들 뿐만 아니라 여성주의가 그동안 해체하려 시도해온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젠더정체성의 연결을 다시 공고히 한다. 따라서 땅에 밀착되어 있는 장소 이미지를 탈각시카고 초국적 네트워크가 다층적으로 횡단하는 장소를 인식하는 것이 요청된다. ‘장소 기반적 정치학혹은 장소 만들기 정치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관점은 행위자들이 장소에 존재한다는 표면적인 관찰에서 벗어나, 다양한 행위자들의 개별적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상호작용의 공간으로 장소를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장소는 각 행위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의 장으로서, 점거되기도 하고 탈환되기도 하면서 변화하는 장소성과 시간의 역사성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