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국사 시간이었다. 교과서에서 기아, 민란, 삼정문란 등의 얘기가 계속 나왔다. 당시 국사 선생님은 그런 문제가 왜 계속되었는지 이유를 아냐고 질문하셨다. 부정부패, 신분제도, 불평등 같은 대답에 대해서 선생님은 코웃음을 치셨다. 결과적으로 선생님이 내놓은 답은 “가난은 나라님도 못 고치는 거야”였다. 난 가난한 사춘기 소녀였고 내 친구들도 대부분 가난했다. 선생님의 그런 설명은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인권운동을 하면서 “가난은 나라님도 못 고친다”의 다양한 표현을 접하게 됐다. 자원부족, 시기상조, 가치 있는 빈민과 인간 말종의 구분, 복지병 환자, 자유가 주어 졌는데도 지가 못나서 못사는 걸 어떻게 하라구 등등.

1993년 비엔나에서 ‘세계인권대회’라는 게 열렸다. 유엔 차원에서 인권을 화두로 연 대규모 국제행사였다.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준비하면서 ‘인권 보장’을 중심으로 한 세계를 꿈꾸자는 대회였다. 인권을 주제로 성찬이 차려졌다. 한국의 인권운동도 그 세례를 듬뿍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야 한다는 귀동냥,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핵심적인 국제인권기준과의 대면, 불처벌과 과거청산 운동․성소수자 운동 등과의 만남 등 한국 사회가 알지 못했던 인권의 의제가 봇물처럼 밀려든 기회였다.

특히 오랜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소위 정치범, ‘양심수’가 없는 나라를 인권보장 국가로 알고 꿈꾸었던 우리에게 큰 충격은 ‘인간답게 먹고 살 권리’가 ‘인권’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라 부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곳도 비슷한 상황이었나 보다.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는 시민․정치적 권리만을 인권인양 떠받들고 수많은 사람을 비인간적인 삶으로 몰아넣는 경제사회적 침해에 대해 인권침해로 인정하지 않는 현상을 비판하고 인권의 불가분성과 총체적 접근에 대한 외침이 있었다.

그중 잘 알려진 것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대표적 연구자인 필립 알스턴(Philip Alston, 현재 비사법적 처형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 교수의 연설이었다.

“사회권의 침해에 대한 우리의 관용 수준은 너무 높다. 그 결과, 우리는 사회권의 침해를 체념하고 받아들이거나 유감의 표현으로 침묵했다. … 사회권의 침해가 일정 정도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하다는 듯 사회권의 대규모적 침해를 다루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

위 사진:유엔 총회에서 2008년 12월 사회권선택의정서를 채택했다.

세계인권대회에 내놓은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의 성명도 마찬가지 내용이다. 이 성명이 지적하는 것처럼 사회권의 침해에 대한 대응은 소위 자유권의 침해에 대한 대응과는 대조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고문당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았다면 자연스럽게 인권침해라 하고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도시빈민이나 농촌 주민이 살던 곳에서 내쫓기거나 노동자가 무턱대고 해고되는 일 등을 대할 때는 ‘경제’위기나 ‘개발’의 불가피성 또는 ‘가난’의 불가피성을 탓한다. 더 나쁜 경우는 책임자들이 아니라 피해자들을 탓한다. 오죽 못났으면, 보상 받았으면서 더 받으려고 딴소리라는 둥.

먹을 것이 없고 아이를 제대로 교육시킬 수 없고 일할 직장이 없고 살던 곳과 장사하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내쫓기는 것이 인권침해가 아니라면 무엇이 인권침해이고, 경쟁에서 뒤처진 못난이들이 아니라 명백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로 인정받으려면 도대체 얼마나 무엇을 증명해야 할까?

유엔의 용어에서 ‘인권피해자’란 용어의 의미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신체적 또는 정신적 손상, 정서적 고통, 경제적 상실 또는 기본적 권리의 상당한 손상을 포함하는 위해로 고통받아온 사람들”로서 여기에는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피해자의 가까운 가족이나 부양가족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를 지원하거나 피해자가 되는 걸 방지할 목적의 개입에서 위해를 겪은 사람들이 포함된다.”(UN.Doc.A/Res/40/34/Annex 1985)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사회권 침해에 대해 ‘인권침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주저하거나 반대한다. 이에 대해 국제인권사회는 사회권 침해의 성격과 의미를 다듬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중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고의적으로 역행하는 조치는 안 된다. 가령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위원회는 “국가의 정책 및 입법적 결정에 의해 직접적으로 기인하며, 그에 동반되는 보상조치가 없는 가운데 생활 및 주거 조건의 일반적인 후퇴는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규약의 의무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최소한의 핵심 의무’라는 게 있다. ‘인간 존엄성의 문턱’을 지키는 절대적인 최소한의 권리보장이 없다는 것은 국가의 의무위반이라 한다. 이 최소한의 권리보장에 대해서는 자원의 부족 따위는 전혀 변명거리가 못된다. 이에 대해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위원회는 “쓸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활용하려는 모든 노력을 강구했는지를 먼저 국가가 증명해야 한다”고 했고 “구조조정이나 경제후퇴의 과정에 의해서건 다른 어떤 이유에서건 심각하게 자원이 제약된 시기에도 목적이 분명하며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드는 계획을 채택함으로써 사회의 취약한 구성원들을 보호할 수 있고 사실 보호되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2009년 한국 사회에 몰아닥친 태풍은 인권피해자를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와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을 불순세력척결로 닦달하고, 인간의 기본적 생존의 요구에 코웃음치고 있다. 피해자들의 고통에는 매정하면서 가해자들의 책임에는 관용이 넘치고 있다. 인권침해를 침해라 부르고, 인권피해자가 마땅한 구제조치를 찾고,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일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기 까지는 우리는 영원히 2009년에 살게 될 것이다.

세계인권대회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위원회 성명(UN Doc.E/1993/22, Annex III.)

2.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이 두 범주의 권리가 평등하다는 원칙은] 지켜지기 보다는 위반하는 쪽으로 훨씬 더 존중되어왔다. …

5. 놀라운 현실은 국가들과 국제사회가 전체적으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침해를 아주 흔히 계속해서 관용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런 침해가 시민․정치적 권리와 관련해 발생했다면 공포와 격분의 표현을 불러일으켰을 것이고 즉각적으로 구제 조치를 취하라는 한 목소리의 요구를 낳았을 것이다. 요컨대, 듣기 좋은 수식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대규모의 직접적 침해보다는 시민․정치적 권리 침해가 훨씬 더 중대하고 훨씬 더 확실하게 참을 수 없는 문제인 것처럼 취급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7.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박탈 또는 위반의 정도를 보여주는 통계적 지표들은 아주 흔히 인용되어서 그 충격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 박탈의 규모, 심각성, 불변성은 체념하는 태도, 무력감, 연민의 피로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입 다문 반응들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대규모 침해로서 존재하는 문제들을 보지 않으려 주저하는 것으로 더 심해졌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다른 방식으로 그 상황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을지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8. 세계 인구의 1/5이 빈곤, 굶주림, 질병, 문맹, 불안으로 고통 받는다는 사실은 그런 사람들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가 대규모로 부인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기에 충분한 근거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자신들의 관심사에서 완벽히 배제하는 것이 인권 옹호자들(개인, 집단, 정부들)에게 견고한 태도인 것은 계속된다. 인권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은 비인간적이며 국제인권기준을 왜곡하고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이다. 또한 궁극적으로 자멸적인 것이다.

9. 민주주의와 안정과 평화는 만성적인 빈곤, 강탈, 방임의 조건에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최근 수년간 계속 늘어나는 숫자의 민족들이 정치적 자유, 자유 시장, 다원주의를 열성적으로 받아 들여왔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이것들을 기본적인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성취하기 위한 최상의 전망으로 봤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탐색이 효과 없는 것으로 증명된다면 많은 사회에서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회귀하라는 압력이 엄청날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실패는 새로운 대규모의 민족들의 이동을 양산할 것이다. 즉 난민, 이주자, 소위 ‘경제적 난민’이 그에 동반된 비극과 문제들을 안고 범람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