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편지도 우울한 노래도 싫지만, 우울한 얘기는 더더욱 싫다. 하지만, 아무리 우울해도 꼭 들어야만 될 얘기일 때가 있다. 돌아오는 4월 26일은 1986년 체르노빌 참사가 난지 26년째 되는 날이다. 핵발전소 사고가 아니었다면, 평생 들어보지도 못했을 그 이름에는 수많은 생명의 흐느낌이 담겨있다. ‘정상적(?)’으로 죽고 싶다는 게 인간의 절실한 소망이 된 상황을 상상하는 건 고통스런 일이다.

여전히 고통 속에 있지만 희미해져가던 체르노빌의 이름이 되살아난 것은 아주 가까운 비극에서다. 올 초 이치우 할아버지께서 분신하신 밀양처럼 송전탑이 지나는 곳 그 어디나 원자력 산업의 거미줄에 걸려있다. 그 어디나 가까운 지인의 고향이거나 삶터요, 나와 관계없다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밀양만 봐도 내 동생과 조카들이 살고 있는 곳이요, 내가 즐겨먹는 청양고추와 얼음골 사과를 자랑하는 곳이요, 내 지인들이 조상 제사를 모시러 가는 곳이요, 대안학교를 세울 꿈을 꾸는 곳이다.

인류 최초의 원폭 투하 피해자들 속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의 경계 나눔이 부질없듯이, 작년 후쿠시마 참사와 지금도 한반도 곳곳에서 불안하게 돌아가고 있는 핵발전소의 우울한 결과를 어제와 내일로 나누는 것 또한 부질없이 느껴진다. 그래서 <민주주의에 反하다>의 저자 하승우는 "나는 당신과 다르다가 아니라 나도 언젠가는 당신의 처지가 될지 모른다는 공통성, 그렇기에 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말한다. 결국 우울한 얘기가 던져주는 깨달음은 ‘너도 당할 거야’란 협박이 아니라 ‘고통에 손 내밀라’는 간절함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인권은 핵의 무서운 파괴력에 맞서고자 재정비되어 부활한 사상이다. 반핵은 현대 인권의 모태이자 출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은 너무 오랫동안 핵에 대해 침묵한 것 같다. 핵발전소 폐쇄 운운하는 것은 과학자나 환경운동의 몫이라고 누가 영역을 나눠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인권규범을 들어 핵을 비판한 사례를 찾아보았다. 후쿠시마 1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와 역시 세계적인 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핵 논쟁: 후쿠시마의 교훈과 인권>이란 주제로 토론을 했다. 앰네스티의 관계자는 인권과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과의 연관성, 그리고 그에 대한 핵발전소의 영향을 부각시켰다. 그린피스는 ‘핵에너지가 에너지 수요에 부응하는 최상의 방법이며, 안전하며, 탄소 방출을 줄여서 기후변화를 늦출 수 있는 대안’이라는 주장에 대해 ‘원자력에 대한 미신’이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토론의 기초가 된 보고서가 그린피스가 올 2월에 발간한 <후쿠시마의 교훈>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이 보고서의 서문에 해당하는 <후쿠시마와 인권>이다.

국제인권법에 근거해 원자력 산업을 비판한 사례도 있다. 저명한 국제법 학자이자 인권활동가로서 미국의 대외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해온 프란시스 보일(Francis A.Boyle)의 경우다. 보일은 후쿠시마 참사를 접한 후, 일본의 원자력 산업은 국제형사재판소의 근거규범인 로마 협약(2002년 7월 1일 발효) 7조에서 규정한 ‘인도에 반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라고 주장한다. ‘인도에 반한 범죄’란 민간인 주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의 일부로서 그 공격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범하여진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민간인 주민에 대한 공격’이라 함은 그러한 공격을 행하려는 국가나 조직의 정책에 따르거나 이를 조장하기 위하여 민간인 주민에 대해 협약에 규정된 행위를 다수 범하는 것에 관련된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그런 행위 중에서 보일이 지목하는 것은 7조 k항의 “신체 또는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대하여 중대한 고통이나 심각한 피해를 고의적으로 야기하는 유사한 성격의 여타 비인도적 행위”이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로마협약의 당사국이기 때문에 그 적용을 받는다. 나아가 보일은 이 협약의 당사국들 뿐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들의 원자력 산업은 ‘인류에 반하는 범죄’라고 말한다. 따라서 일본 시민들이 일본의 원자력 산업을 끝장내기 위해 이러한 법 규정을 이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타 민족들도 자국의 핵 산업에 대하여 마찬가지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반핵평화소설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쓴 히로세 다카시는 이런 말로 책을 맺는다.

“원자력 발전소의 물질적 피해 등은 수치로 나타내면 그뿐이지만, 죽는 것은 어디까지나 단 하나뿐인 생명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것을 알고 용기를 내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이제 그만하라고 말한다면 반드시 현실을 바꿀 수 있다. 요컨대, 희망에 찬 미래를 창조해 나가는 것은 지금부터의 어른들, 바로 그대들인 것이다.”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이끌었던 고 김형률 님은 생전에 한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말한다.

“입원해 있으면서 저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만’이라고 말해야 ‘삶은 계속될 수 있다’고 새겨듣는다. 오는 주말에 2차 탈핵희망버스가 고리와 밀양을 누빈다고 한다. ‘미어터지되 안전운행을 바란다’고 말하면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하다’는 말과 같은 모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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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와 인권

*그린피스 한국 홈페이지에 가면 이 보고서의 한글요약본과 영문본 전체를 볼 수 있다.


지진이 이 세상 어딘가를 강타할 때, 그것은 오랫동안 땅 밑에 존재해왔지만 지진이 터지는 순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숨겨진 힘과 틈을 가시화한다. 최하층의 바위 속 깊이 있던 단층선이 땅에서 새로운 균열을 내며 우리 발밑에 등장한다. 항시 변하고, 항시 움직이고 있는 우리 지구의 엄청난 힘이 무섭도록 명확해진다.

마찬가지로, 지진, 쓰나미, 홍수, 태풍 또는 화산 폭발이 됐든 어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그것은 사회 및 정치 체제의 표면 밑에 있는 틈을 노출시킨다. 그런 틈들은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우리가 그것의 존재를 언제나 대충은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껏 무시해올 수 있었던 것일 수 있다. 동 일본 지진의 경우에 지진, 쓰나미 그리고 핵사고라는 삼중의 비극이 일본의 사회․경제적 및 정치 기구 뿐 아니라 국제적 기구 속에 있는 전반적인 틈 내지 약점을 드러냈다.

아주 명백하게, 아마도, 지진과 쓰나미는 일본 원자력 산업의 규제와 운영의 약점을 드러냈다. 그것은 정말로 시스템의 ‘숨겨진’ 실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고 경고해왔던 약점이었다. 가령 내 책꽂이에는 35년도 더 된 1975년에 나온 영어 잡지 Ampo의 복사본이 있다. 그 잡지는 ‘핵 원자로: 궁극적 오염을 무릅쓰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의 신규 원자력 발전소의 취약성을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1971년(후쿠시마 다이치 발전소가 허가된 해)에 했던 미국정부의 경고를 지적하고 있다. 그 경고 내용은 비상 노심냉각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후쿠시마 같은 경수로는 ‘치명적인 핵 폭발과 광범위하게 퍼지는 방사성 낙진’을 겪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그러한 치명적인 폭발이 인간에게 끼친 결과를 후쿠시마현 언덕의 아름다운 고원에 있는 여관촌에서 끔찍하게 볼 수 있다. 잘 가꿔진 농장과 작은 상가가 마을 중심에 나란히 열을 지어있다. 지역 쇠고기와 산나물을 제공한다는 광고판을 내건 식당들이 행인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자전거의 대열이 끊임없이 길을 스쳐가지만 그들 중 아무도 멈춰서지 않는다. 주차장은 텅 비었고, 들판에는 작물이 없다.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도 전혀 없다. 재난이 난지 거의 1년이 지났지만, 여관촌의 온실에는 키 큰 잡초들만 무성하다. 후쿠시마 제1호 원자력 발전소에서 40km 떨어져 있는데도, 여관촌은 유령마을이다.

여관촌 마을 회관 바깥에서 내 동료 중 한명이 가져온 방사능 측정계가 시간당 13.26 마이크로시버트(microsievert)를 가리킨다. 이것은 자연 배경 방사능의 약 백배 수준이다. 그가 측정계를 회관 앞 하수구 위에 대자, 측정계는 아예 멈춰버렸다. 방사능 수위가 측정계의 용량을 넘어선 것이다. 여관촌 같은 장소에서 재빨리 배울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작은 장소 내에서 방사능 수준이 엄청나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관촌은 운 나쁘게도 해안에서 부는 바람이 산과 만나는 지점에 있어서, 순식간에 방사능 투하의 위험지대가 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핵사고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소개되어진 15만 명에 속하게 됐고,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현재 후쿠시마현의 사고 영향에 대한 조사의 상당부분은 전문적인 과학자들이 아니라 전혀 과학적 훈련을 받지 않은 지역의 보통 사람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절실하게 자기 주변 세상에 대해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 가령, 미하루 마을에서는 지역 농부들(대부분이 노인이거나 여성인)이 작물을 기르면서 마을회가 제공한 방사능 측정 장비를 갖고 작물 테스트를 하고 있다. 그 결과는 깜짝 놀랄만하다. 일부 작물은 아주 높은 수준의 방사성 세슘으로 오염되어 있는 반면 어떤 작물은 전혀 오염을 보이지 않으며 협력하는 자원자들의 지원으로 전국의 소비자들에게 팔릴 것이다. 당국은 시장에서 팔리는 다양한 상품, 특히 식품의 방사능을 정확히 통제하고 규제할 능력이 없다.

후쿠시마 시내의 작은 쇼핑가에서는 벨로루시(체르노빌 사고로 최악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 중 하나)에서 수입한 전신 방사능 측정기(내부피폭 측정기)를 포함하여 방사능 측정 장비의 강력배터리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사에 대해 지역 시민들이 답변을 도와왔다. 하지만 기부로 재정을 충당하며 과로에 지친 자원 활동가로 인력을 꾸린 ‘시민 방사능 측정소’는 자문을 구하려고 끊임없이 몰려드는 질문과 요청에 고전하고 있다. 2011년 말 현재, 후쿠시마 시 일각의 외부 방사능 수준은 자연 배경 방사선의 10배에 이른다. 하지만 그 수준은 여전히 정부가 공식적으로 ‘안전’하다고 선언한 범위 내에 있다.

이런 불확실성에 당면해 많은 가족들이 흩어졌다. 배우자와 아이들은 일본의 다른 지역이나 심지어 외국에 가서 살도록 보내진 반면 생계부양자는 후쿠시마에 남았다. 위험이 아무리 적다할지라도, 결국 부모들이 원하는 건 제 때 움직이지 않으면 아이들이 암에 걸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가?

그러나 그런 피난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별과 장소변화의 부담을 포함하여 명백한 심리적 부담이 있다. 학교를 바꿔야 하고 친지와 친구들로부터 멀리 보내진 아동에게 특히 그렇다. 재정적 부담 또한 높으며 그 부담은 광범위한 사회가 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도쿄전력의 현행 보상 체제는 정부가 지시한 피난을 기준으로 한다. 이것의 의미는 오직 강제적으로 이주한 사람들만이 보상을 청구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정된 소개 지역민은 전력 회사 또는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겠지만, (특정한 소개 지역 바깥에선 일체의 건강 위협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시를 자발적으로 떠나길 선택한 사람들의 비용에 대해서는 지원을 거부했다.

2011년 12월 정부는 강제 소개 구역 바깥에 있지만 방사능 수준이 높은 23개 시 거주자들에게 한정된 액수의 지원을 주라는 자문단의 권고를 마침내 받아들였다. 하지만 거주자가 그 지역을 떠났거나 남아있거나에 상관없이 지불되는 이 지원은 오염지역에서 멀리 이동하여 발생하는 비용의 단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십만 명이 넘는 후쿠시마의 핵 피해자가 자신들의 청구가 처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보상받을 자격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청구를 해결하기 위해 재판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전혀 받지 못할 것이다. 변호사와 독립적인 관측자들은 후쿠시마 피해자들에게 보상청구를 최대한 제한되고 관료적이고 어렵게 만듦으로써 청구를 억제시키는 것이 도쿄전력과 정부의 전략이라고 말한다.

2011년 5월 설립된 ‘코모도 후쿠시마’란 지역 민간단체의 한 자원활동가는 재난의 인간적 차원을 웅변적으로 묘사한다. 여관촌에서 세 개의 학교에 다니던 240명의 아동 중 상당수가 공식적으로 안전하다 선언된 후쿠시마 시로 피난하게 된 반면, 학교 캠퍼스는 여관촌 언덕 아래(소개된 지역 바로 바깥에 있는) 가와마타시 근처로 옮겨졌다. 피난하여 지금은 후쿠시마 시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려면 아침 6시에 떠나 오후 늦게 돌아오는 학교버스를 타야만 한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 아이들은 방사능 공포 때문에 바깥에서 놀거나 운동을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후쿠시마 시에 있는 가족들의 피난처로 돌아와도 아이들은 여전히 정상 수준보다 10배 높은 방사능 수준에 노출돼있다. 많은 아이들이 피로 증세와 낮은 면역수준을 보이고 있다. 비록 그 누구도 그것이 아이들이 감당해온 사회적 붕괴 또는 높아진 방사능 수준의 결과라고는 말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코모도 후쿠시마’는 지역 아동을 지원하는 수많은 민간단체들 중 하나로, 일본의 다른 지역과 외국에도 요양소를 세우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 요양소란 특히 취약한 아동(여관촌처럼 소개된 지역 출신 아동을 포함하지만 그에 국한되지 않는)의 방사능 수준을 낮추고 정신적 및 신체적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두 달 여 동안 아동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이 단체 회원들은 재난에 대한 반응이 다양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어떤 가족은 피난을 원하는 반면, 어떤 가족은 그렇지가 않다. 후쿠시마현의 많은 이들은 방사능의 위험을 정말로 무시할 수도 있는 반면, 걱정을 ‘과잉반응’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그만 걱정하라’는 되풀이되는 지시로는 달랠 길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도달 가능한 최상의 건강 기준을 향유할 아동의 권리를 인정할 것’을 정부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에 책임져야 할 회사인 도쿄전력, 일본의 지역 및 중앙 정부, 그리고 세계 공동체는 후쿠시마의 아동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이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