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찬 오월이다. 무엇으로 꽉 찼냐 하면 기억으로 꽉 차 있다. 일 년 열두 달의 어느 날이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가슴 아픈 날에 해당하겠지만, 오월처럼 아픈 기억으로 꽉 차기도 힘들 것 같다.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를 짓기 위해 농민들을 몰아낸 강제집행이 있었고,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는 당국의 확정발표가 있었던 오월이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이윤정 님을 떠나 보냈고, 쌍용자동차 22명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자리가 만들어진 오월이다. 파리 꼬뮌이 붕괴된 오월이요, 팔레스타인에 대재앙의 날이라 불리는 ‘나크바’가 있었던 오월이요, 그리고 5.18 광주민중항쟁이 있었다.

수백 년과 수십 년, 또는 수십 일의 차이가 있는 사건들이지만 공통점을 찾으라면, 피해자들의 고통은 선명하게 계속되고 있는데 가해자의 얼굴은 은폐돼있거나 진상규명과 사법적 처벌은커녕 사과와 가책이라는 인간적인 요구마저도 묵살되었다는 것이다.

5.18에 대한 오래된 영상집의 제목은 “기억을 기억하라”고 되어있다. 29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든 전두환의 벽보가 나붙었고 그림을 붙인 이가 즉결심판에 넘겨졌다는 뉴스가 일깨워준 것은 ‘기억은 충분히 기억되고 있는가’였다. 기억은 과거에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다. 기억이 희미하거나 무시되는 곳에서 또 같은 사건이 벌어지며 또 아픈 기억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기억은 무시되거나 왜곡된다. 애써 규명한 진실들이 의도적으로 훼손되고 새로 짜깁기 된다. 기억하지 말고 빨리 잊으라고 재촉한다. 왜 그리됐는지 알려 하지 말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라 한다. 기억될 권리와 기억할 의무가 무시되는 곳에서 어떤 삶인들 의미 있는 존중을 받는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 한창 과거청산에 대한 논의가 일었을 때, 인권운동이 제시한 용어가 ‘불처벌’이었다. ‘불처벌’이란 법률상 또는 사실상 인권침해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말한다. ‘불처벌’을 가르쳐 준 것은 국제인권사회와의 접촉이었다. 비엔나 세계인권대회(1993)의 성과로서 유엔이 작성한 <인권침해자의 불처벌에 대한 투쟁을 통해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하기 위한 원칙들>이란 게 있었다. 인권운동은 그 원칙을 국내에 알리며 그에 걸맞은 과거청산을 위해 노력했다. 그 원칙은 <인권침해 가해자의 불처벌 문제>란 보고서에 담긴 것이었다.

1991년 8월 유엔인권소위는 이 보고서의 필자, 쥬아네에게 인권침해자의 불처벌에 대한 연구수행을 요청했다. 쥬아네는 이 연구를 통해 ‘불처벌’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국제사회가 어떤 단계를 거쳐 왔는지를 검토했고 이 최종보고서를 쓰게 됐다.

첫 단계는 1970년대로, 인권단체와 법 전문가, 그리고 일부 국가의 야당들이 정치적 수인(양심수)들에 대한 사면을 요구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런 노력이 활발했던 곳이 독재 체제하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었다. 양심수 사면은 자유의 상징으로서 여론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고 독재 체제에 대한 저항과 융합됐다.

두 번째 단계인 1980년대에 쇠퇴하기 시작한 군사 독재자들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자기 사면(self-amnesty)법’을 선포했고, 그것은 일종의 비상사태 시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불처벌을 보장한다는 식이었다. 그런 자기 사면법은 피해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고 피해자들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뭉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아르헨티나의 ‘오월광장의 어머니들’이나 ‘라틴아메리카 실종자가족연합’ 등이었다.

세 번째 단계는 민주주의로 이행하거나 회복하는 과정에서 내전을 끝내려는 평화협상 과정에서 벌어졌다. 이전의 압제자들은 모든 것이 완전히 잊혀지길 바란 반면에, 피해자들은 정의를 요구했다. 도저히 균형을 맞출 수 없는 둘 사이에서 ‘불처벌’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네 번째 단계는 국제사회가 불처벌과 맞서 싸우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시작됐다. 가령 미주인권재판소는 획기적인 규정으로서 ‘심각한 인권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사면은 공정하고 독립적인 법원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모든 사람의 권리와 양립할 수 없다’고 했다. 비엔나 세계인권대회는 그 최종 문서인 ‘비엔나 선언과 행동강령’에서 불처벌에 대한 싸움을 지지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국제사회는 불처벌 문제 전반에 적용될 원칙들을 하나씩 세워나갔다. 그 원칙들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피해자의 알 권리, 정의를 추구할 권리, 그리고 보상에 대한 권리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아야 될 것 아니냐? 피해 당사자와 그 주변인들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 일에 대해 알고 있어야,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것 아니냐? 이것이 ‘알 권리’의 내용이다. 권리가 있으면 그에 대응되는 의무가 있어야 한다. ‘알 권리’에 따른 의무는 ‘기억할 의무’라고 했다.

세월이 지났는데 새삼스럽게 이 옛 문서가 떠오른 것은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원칙들 중 첫 번째조차 잘 실현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에 대해 알 권리는 통제와 왜곡, 명예훼손의 위협에 시달리고, 스스로 기억을 지운 자들이 기억을 조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연애드라마 속의 기억상실증은 애틋할지 모르지만, 인권침해자들의 의도적인 기억상실증은 복장 터질 노릇이다.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내가 누군가를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알고 기억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버림받은 사람보다 잊혀진 사람이 더 불행하다’는 신파조 대사가 정말 맞는 것 같다. 지금도 숨 가쁘게 달력을 채워가고 있는 가슴 아픈 일들, 그 속의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불의에 싸우기 위한 기본적인 일임을 옛 문서를 들추며 다시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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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침해 가해자의 불처벌 문제

I. 전체에 걸친 원칙들

A. 알 권리
17.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권리, 진실에 대한 권리는 개별 피해자 또는 그와 밀접하게 연관된 사람들만의 권리가 아니다. 알 권리는 또한 집단적인 권리로서, 장차 피해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역사에 다가가는 것이다. 알 권리에서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것은 ‘기억할 의무’로서, 국가가 당연히 취해야 할 의무이다. 그 목적은 수정이나 부정의 이름으로 역사가 왜곡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겪어냈던 억압에 대해 아는 것은 한 민족의 역사적 유산의 일부이며 그런 것으로서 보존돼야만 한다. 이것이 집단적 권리로서의 알 권리의 주요 목적이다.

18. 두 가지의 일련의 조치들이 이런 목적을 위해 제안되었다. 첫 번째는 가능한 빨리 비사법적 조사위원회를 설립하는 것이고, … 두 번째는 인권침해와 관련된 기록을 보존하는 것이다.

B. 정의에 대한 권리
1. 공정하고 효과적인 구제에 대한 권리
26. 이것은 모든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기회와 그 가해자들이 재판을 받고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것을 보장하는 공정하고 효과적인 구제를 받을 기회를 가져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 정의에 대한 요구에 효과적으로 부응하지 않고는 어떠한 정당하고 지속하는 화해도 있을 수가 없다. 화해의 요소로서 용서란, 그것이 사적인 행위에 국한되는 한, 피해자가 침해의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아야만 하고 가해자가 참회를 보일 위치에 있어왔다는 걸 의미한다. 용서가 있기 위해서는 이것이 먼저 추구돼야 한다.

27. 정의에 대한 권리는 국가의 의무를 포함한다. 침해를 조사할 의무, 가해자를 기소하고 그 유죄가 성립된다면 처벌할 의무이다. …

C. 보상에 대한 권리
40. 보상에 대한 권리는 개별적인 조치와 전체적, 집단적 조치 둘 다를 포함한다.

41. 개별적으로, 피해자(친척과 부양가족을 포함하여)는 효과적인 구제를 받아야만 하며 적용되는 절차는 가능한 한 널리 공표돼야 한다. 보상에 대한 권리는 피해자가 고통받은 모든 상해를 포괄해야만 한다. 유엔인권소위의 특별보고관, 테오 반 보벤이 기초한 ‘대규모 인권침해의 피해자에 대한 보상에 관한 권리의 기본 원칙과 지침’에 따르면 세 종류의 행위가 보상에 포함된다.
(a) 회복(피해자의 이전 상태로의 회복을 추구)
(b) 보상(신체적 및 정신적 상해에 대한 보상, 상실한 기회, 물리적 손상, 명예의 훼손, 법적 비용 등이 포함)
(c) 사회복귀(의료적 치료, 심리적 및 정신적 치료를 포함)

42. 집단적으로는, 도덕적 보상을 제공하기 위한 상징적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가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 피해자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공식적인 선언을 하는 것, 기념하는 의식을 갖는 것, 공식적으로 기념거리를 명명하거나 기념비를 세우는 것, 기억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돕는 것 등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1940년과 1944년 사이의 비시 정권이 자행한 인권침해 범죄에 대해 프랑스 국가의 책임을 국가의 수장이 1996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데 50년 이상이 걸렸다. …

D. 재발방지의 보장
43. 같은 원인이 같은 결과를 유발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존엄성에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침해를 감당해야만 할 것을 피하기 위한 세 가지 조치가 취해져야만 한다.

(a) 준 무장집단의 해산…
(b) 모든 비상조치법의 철폐, 비상 법원의 폐지, 인신보호영장의 불가침성과 절대훼손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
(c) 심각한 침해와 연루된 상급 공무원들을 공직에서 퇴출…

맺는말
51.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현재까지, 불처벌의 역사는 영구적인 갈등과 이상한 모순의 하나이다. 억압자와 피억압자간의 갈등, 시민사회와 국가와의 갈등, 인류의 양심과 야만과의 갈등, 구속에서 풀려난 억압자들이 다시 국가의 책임을 넘겨받고 국가적 화해라는 메커니즘에 사로잡히는 모순, 이것이 불처벌에 대한 애초의 약속을 약화시키는 모순”(E/CN.4/Sub.2/1993/6) 1993년 유엔인권소위에 제출된 준비 보고서의 도입부에 담긴 정서가 이랬다. 그런 정서는 아직도 유효하며 지금 이 보고서에 적합한 맺는말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