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우리 동네에는 판잣집이 많았고, 하루 종일 방치된 일부 아이들은 위험한 놀이를 벌였다. 위험한 놀이란 언덕배기에 올라앉아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을 겨냥하여 딱딱한 고무조각을 총알 삼아 딱총을 쏘는 것이었다. 나도 한번 종아리와 배에 그 고무탄을 맞았는데 너무 아파서 한동안 움직이질 못했고 눈물이 절로 났다. 그 총을 맞아 실명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아프기도 했지만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고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다는 게 더 미칠 지경이었다. 그 아이들을 단도리할 어른들은 그 골목에 전혀 없었다. 선생님에게 호소할 수도 경찰을 찾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내돌리기만 한 불쌍한 아이들이었지만, 그때는 무섭고 징글징글하기만 했다. 먹는 밥도 공부도 사람의 손길을 타지 못한 그 아이들은 자라서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됐을까가 가끔 궁금하다.

용역 폭력에 피투성이가 된 노동자들의 기사를 볼 때마다 그때의 통증이 떠오른다. 직장에서 잘리고 직장이 폐쇄된 것도 모자라 회사가 엄청난 돈을 주고 부른 폭력집단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쥐어터지고 욕설을 들어야 한다니 참 기막힌 심정일 것이다. 어렵게 번 돈으로 세금 내서 키운 경찰은 방관하거나 한통속이 되고, 정부는 노동자를 힐난하는 발표를 내놓고, 법은 폭력을 가한 자들을 너그럽게 대할 때 그야말로 인간샌드백이 된 느낌일 것이다. 한편으론 폭력에 동원된 용역들이 먹고 살기 위해 모여든 ‘이웃사람’이란 보도에 지옥도를 연상하게 된다.

현 정권 들어 더 자주 더 심하게 등장한 것이 용역폭력이다. 하지만 비슷한 일은 계속 있어왔다. 오래전 집회에서 경찰에게 맞아 한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인권단체들은 규탄 기자회견을 하면서 “공정한 법집행이 아니면 공권력은 사적 폭력일 뿐”이란 표현을 썼다. 그와 유사한 기자회견들은 계속됐는데 아마도 일부 세력만을 위해서 봉사하는 공권력은 사적폭력과 마찬가지라고 여긴 것 같다. 용역 폭력이 기승을 부린 현 정권하에서는 트위터에 한 시민이 남긴 말이 큰 공감을 얻었다. “용역은 청부폭력인데 구매된 사적폭력이 공공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국가도 결국 사적폭력 청부집단”이란 지적이었다. 한 신문 사설에서는 그런 폭력이 기승을 부리는 근원적 토대는 현 정권이 “국가를 사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란 표현을 썼다.

폭력에 대한 위기감은 크기만 하다. 인권이란 이름으로 나름 열외 취급을 받았던 인권활동가들도 얻어맞는 일이 늘었다고 자괴한다. 용역 폭력의 기승에 작년 말 인권활동가들이 모여 워크숍을 가졌다. ‘공권력과 사적폭력을 나누고, 경찰이 아닌 사람들이 하는 걸 사적폭력이라고 편의상 말하는데 본질을 따지면 정말 사적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실제 폭력 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민간 기업이고 그들에게 고용된 용역들이다. 하지만 계급적으로 편향된 국가기구들과의 끈끈한 교감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외관은 사적 폭력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공권력의 연장선에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용역 폭력이 아무리 날뛰어도 뭔가 의미 있는 반응과 대응이 없으면, 가해자들은 ‘괜찮다’는 신호로 인식하고 계속하게 되고, 그런 일은 계속 누적되게 된다. 누적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폭력의 정도가 계속 고조된다. 이런 문제 진단을 내리자 참석자들은 우울해졌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까지 놓이게 됐을까?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얘기가 나왔지만 내 귀에 들어온 얘기는 이런 것이었다. 대규모 정리해고, 직장폐쇄, 실업, 빈곤한 복지, 막무가내 국책 사업 등 공적인 무대에서 충분히 논의돼야 할 문제가 내쳐졌다. 그러면서 공공적인 것이 무엇이고 공공적으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념들은 모호해졌다. 그런 가운데 사적영역의 용역들이 끼어들어 폭력의 방식으로 정치를 하게 돼버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공적인 영역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채울 것인가이다. 공적인 영역이 재구성되고 정립되면 공권력과 사적폭력도 재구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대응이 절실하다. 같은 시민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고 생존권을 외쳤다는 이유로 두들겨 맞는 문제를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시민으로서의 무감한 정체성이야말로 진짜 위기이다.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것, 공분하기는 하지만 대응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폭력의 방관과 상승을 불러올 뿐이다. 사적 폭력이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만, 보편적 복지가 향상되면 상당히 해결될 것이다. 공적으로 대안을 주어야 폭력 용역으로라도 살 길을 찾는 비인간화를 막을 수 있다. 무대응을 비웃듯이 상승된 폭력이 쓰나미처럼 덮친 요즘, 작년에 나눴던 얘기들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행히 공분에 그치지 않고 여기저기서 대응 활동이 생겨났다. 대응을 보여줘야 폭력의 연료 공급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국제적 차원에서의 용역 문제를 다룬 글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용역을 국제적으로는 용병이라 한다. 이름과 활동무대는 달라도 하는 일의 성격은 거기서 거기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폭력이 민영화’되면서 심각한 인권침해의 요인으로 떠올랐다고 판단한 유엔은 ‘용병 사용에 관한 실무 그룹’(UN Working Group on the Use of Mercenaries)을 2005년 설립했다. 이 실무 그룹에는 5명의 전문가가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 프라도는 이 글을 쓸 당시에 이 실무 그룹의 의장이었다.

프라도의 글에 나타난 국제 용병의 문제점을 국내 용역의 문제점으로 바꿔 읽어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가난한 사람이 주로 선발된다는 것, 용역회사는 엄청난 돈을 빠른 시간에 벌어들인다는 것, 진짜 안전이나 평화가 아니라 돈벌이가 유일한 목적이라는 것, 하지만 용역들은 비인간적 처우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앞서 말했듯이 워크숍에 모였던 인권활동가들이 내린 진단과 여러모로 맥이 닿아 있다. 그 진단이란 ‘공권력과 사적폭력의 구분이 흐려지고 뒤얽힌다는 것,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비호를 받는다는 것, 따라서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폭력을 민영화・외주화하여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고 일을 처리하려 한다’는 것이다. “오늘 여기서 벌어진 일은 오늘 우리만 안다”는 이라크에서의 용병들의 구호처럼 사적 용역 폭력은 인권 침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 결과적으로 폭력 앞에 인권이 실종될 것이란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회색지대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한 한계선을 긋고 규제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국내외를 따지지 않고 당장 해야 할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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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군사기업과 경비 회사의 활동이 인권에 끼친 영향 (호세 고메즈 델 프라도, 용병 사용에 관한 유엔 실무 그룹, 2008)

지난 20년간 민간 군사기업과 경비 회사(아래 약칭으로 PMSC)가 엄청난 확장을 해왔다. 이들 기업이 활동하는 곳은 아프가니스탄, 발칸, 콜롬비아, 콩고, 이라크, 소말리아, 수단 등 저강도 무력 분쟁지나 분쟁 후 상황 지대이다. 이들 초국적 민간 기업은 교전 지역의 한복판에서 전략적 군사 역량뿐 아니라 병참(*)・전투・전투와 관련된 경비훈련과 첩보를 제공할 수 있다. 세 부류의 국가들이 초국적 PMSC가 수행하는 활동과 연루될 수 있다. 즉 사병과 경비 용역을 공급하는 수출국들, 그런 용역을 요구하는 수입국들, 그리고 PMSC 직원들이 국적을 둔 출신국으로서 주로 싼 노동력을 초국적 PMSC에 제공하는 저발전국들이다.

세계 전역의 발전국과 저발전국 출신의 수천 명 시민들이 징발되어 이들 사기업을 위해 일한다. 이라크에는 180개 이상의 PMSC가 있어서 4만 8천 명의 “민간 경비원”을 고용하는 다국적군에게 용역을 제공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만 8천 명에서 2만 8천 명 사이를 고용하고 있는 60여 개의 PMSC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전쟁이 민영화되는 것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발전국이건 저발전국이건 간에, 국내차원에서도 민간 경비와 재산의 보호에 대한 요구가 늘어왔다. 급속도로 팽창하는 사업으로서 연간 1천억 불에서 1천 2백억 불 정도의 매출이 추정된다.

이런 새로운 사업의 팽창으로 인해,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에 속한 사람의 활동과 기능 간의 구분이 흐려지게 됐다. 공적활동과 사적활동이 뒤엉켜서 구분하기가 아주 어렵고, 특히 본래 정부의 활동이라고 전통적으로 간주됐던 영역인 ‘안보’(security)에서 그렇다. 안보는 두 가지 국가적 차원에서 이해된다. 국내적 차원에서는 경찰이 안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외적으로는 군대로 영토와 국가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유엔 헌장에 명시된 “집단 안보”는 주권 원칙, 그리고 유엔이란 세계 조직의 192개 회원국 각각의 정당한 무력 사용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와 규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만 한다.

세계적으로 폭력의 민영화의 급속한 전개 원인은 세계 경제의 지구화, 중앙 정부로부터 산발적으로 흩어진 “거버넌스” 혹은 “비-거버넌스”로의 전환, 국가 정규군의 축소 등이다. 오늘날 “실패한 국가들”과 경제의 지구화는 “밑으로부터의” 폭력의 민영화와 손잡고 작동해왔다. … 전통적으로 국군이나 경찰력이 수행해왔던 기본적 기능들의 외주화는 “위로부터의” 민영화로 알려져 있고, 이것은 국가의 공적 서비스와 민간 상업 부문 간의 경계를 흐리며 위험한 “회색지대”를 만들고 있다. …

이런 상황에서 인권 침해의 잠재성은 언제나 현존하는 위협이며, PMSC의 피고용인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많은 사건에서 목격됐듯이, PMSC의 피고용인들은 과도한 무력을 사용할 수 있고 무차별적으로 발사하여 민간인을 살해했다. 국제법으로 금지된 무기를 사용하거나 실험용 무기를 사용해왔다. … 보고서들이 지적하기를 이라크에서의 PMSC 직원들의 괴이한 행동은 “오늘 여기서 벌어진 일은 오늘 우리만 안다”란 구호와 함께 자행됐다. 민간용역이 허가도 없이 이라크인을 구금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

군사와 안보 기능을 외주화하는 것은 무력 사용에 대한 국가의 통제 상실이란 내재적 위험을 안고 있다. PMSC는 흔히 국가 통제의 바깥에서 국가기관의 효과적 감시가 제한된 가운데 활동한다. PMSC는 전쟁 수행의 핵심적인 분야인 심문에서부터 전략적 첩보활동에까지 이르는 용역을 제공하면서, 고문과 비인간적인 처우를 유발할 뿐 아니라 이동과 프라이버시의 자유 등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범죄 또는 인권 침해와 연루될 때, 이들 민간 경비 용역들은 제재를 받지도 않고 재판에 회부되지도 않아왔다. 그런 보기는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한 고문과 저격에 연루된 용역들이었다. 2003년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의 인권 침해에 연루된 PMSC 용역들은 외부의 조사도 전혀 받지 않았고 법적으로 제재 받지도 않았다. …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의 고문은 주로 미 헌병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지만, 민간 용역들 또한 고문 혐의가 있었다.

“민간 용역” 또한 인권침해의 피해자일 수 있다. 왜냐하면, 변칙적인 계약, 착취, 자의적 감금 및 그들의 인권과 노동권에 대한 기타의 제약 등 그들은 흔히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는 유엔 실무 그룹의 조사를 통해 얻은 것이다. 또한, 저발전국 출신자에 대한 사기 모집과 착취가 있다. “민간 용역” 또는 “용병”으로 계약서에 서명할 때 그들은 일반적으로 상당수 권리를 포기한다. 그들이 포기한 권리에는 그들을 선발하고 계약한 하청 회사 또는 그들과 계약한 회사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할 권리가 포함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회사에 의해 야기되거나 회사의 과실로 볼 수 있는 손실, 손해, 부상 또는 사망이 발생한 경우까지가 포함”된다. 서명하는 그들은 그런 구절이 가질 효력, 그리고 보상과 법적 불확실성에서 발생할 어려움 등을 판단하지 못한다.

초국적 PMSC들, 그들의 국가별 자회사들, 하청 회사들이나 민간 고용 기관들이 세계 곳곳으로부터 전직 군인과 경찰을 “경비원”으로 선발・모집・훈련하여 저강도 분쟁 지대로 보낸다. 자신들의 “염가 군인”들을 찾아내기 위해 PMSC들은 저발전국들에 네트워크를 수립했다. 미국무부나 국방부와의 계약을 따낸 PMSC들은 일반적으로 그 일을 할 제휴회사들 중 하나와 하청계약을 맺는다. 그때부터 PMSC의 제휴사는 인건비가 싸고 전문적인 저발전국의 네트워크 회사들을 찾는다. PMSC는 그런 거래에서 “서류가방 징병관”(지역의 준군사조직과 연결된 개인들)으로 알려진 자들과 비공식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이런 자들은 신입자를 찾아내어 먹이사슬을 뒷받침하는 깔때기로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나란히 배치돼있다. 일련의 계약 단계가 해체하기 어렵게 세워져 있다.

일반적으로 계약서에 서명한 개별 용역들은 자기 모국에 등록돼 있지 않은 회사와 계약하는데 그 사실을 그는 분쟁 지대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다. 민간 용역의 상해 또는 사망에 대해 보상을 받으려면, 이런 얽히고설킨 계약에 보험 브로커와 보험회사라는 복잡한 층이 추가적으로 끼어든다. … 보험 브로커들은 보험청구의 30%만을 당장 지불할 뿐이며, 그 나머지는 행정법원이 강제할 때까지는 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돼왔다.

또 다른 경우에, 계약에 대한 서명은 국내 사법을 피하기 위해 사기 치는 조건에서 이뤄진다. 목적지 국가로 출발하기 직전이나 도착해서 이뤄진다. 이라크에서 일단 일을 시작하자, 상당수 제3국 출신자들은 변칙 계약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경험했다. 과도한 노동시간, 봉급을 일부만 주거나 아예 주지 않고, 의료조치 등 기본적인 필요에 대한 무시와 나쁜 처우 등이 포함됐다. 일부 경우에 보험은 사기였거나 오직 미국에서만 집행될 수 있었다. 어떤 경우에 “민간 경비” 또는 “민간 용역”은 다쳐서도 목발에 의지한 채로 업무를 계속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다치거나 살해됐을 때, 민간 용역이나 그 가족들이 낸 청구는 흔히 무시되거나 의료 보호나 보상을 얻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이라크에서 다친 상당수 제3국 출신자는 그들에게 약속됐던 보상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민간용역들은 흔히 이라크 반군의 표적이며 무력 분쟁의 엄청난 희생자가 된다. 2007년 8월 현재로, 미 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3년 이래 사망한 민간 용역은 천 명이 넘고 8천 명 이상이 다쳤다.

국제적 차원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본래 정부의 기능이었던 것이 외주화되어 민간 기업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 것은 인권의 향유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상황을 모호하게 만든다. 불분명한 상황 속에서 투명성, 모니터링, 의무와 책임 등 중대한 문제와 관련된 활동을 비-국가 행위자들이 벌이고 있다.

이처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비-국가적 실체들은 정부의 권력을 초월하며 주권의 전통적 개념과 무력 사용의 독점을 부식시키고 있다. PMSC들의 주목적은 돈 버는 것으로 장기간 안정을 위한 건전한 기초를 제공하지 않는다. 전직 영국 대테러부대원으로서 이라크에서 민간 군사 기업에서 일했던 사람이 자세히 설명했듯이, 이라크가 혼돈에 빠져들수록 더 많은 재건 기금이 민간 군사 기업들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 …

국가들은 군사 및 보안 활동에서 외주계약이 절대 금지돼야만 하는 유형과 외주 계약 가능한 유형에 대해 적합한 한계선을 그어야만 한다. 일단 외주 계약하는 기능들이 한정되면, 그런 활동을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입법과 장치뿐 아니라 국내적 규제가 수립돼야만 한다. 규제 장치에는 인가 규정과 등록 체계가 포함돼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인권과 국제인권법에 대한 존중을 확인하는 조항을 담은 제재 장치 그리고 인권 기준에 대한 훈련을 포함하여 직원에 대한 양질의 훈련을 제공할 의무를 포함해야만 한다. 계약 용역의 선발과 조사를 위한 효과적인 체계에는 의무적인 정기 심사를 포함해야만 한다. 그러나 PMSC들의 활동이 초국적 성격을 가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역적 및 국제적 차원에서도 원칙과 조치가 채택될 필요가 있다.

(*)병참 : 군사 작전에 필요한 인권와 물자를 관리, 보급, 지원하는 일